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cdn-9chat-fun.9cache.com/media/photo/aj167XVw3_840w_v1.jpg 그리스어 : Στάση του Νίκα 영어 : Nika riots '니카 폭동'이라고도 한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재위하던 시기 [[동로마 제국]]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반란이다. [목차] == 녹색당과 청색당 == 동로마 제국은 [[고대 로마]] 후기 진행된 전제군주정의 전통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전제 제국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전통이 완벽하게 확립되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렸다. 자유시민의 전통 역시 천 년을 지탱한 강력한 전통이었고, 이 힘을 온전히 억누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전통을 대표하는 사례가 바로 동로마 제국 초기 존재했던 녹색당과 청색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당파의 기원 자체는 [[히포드롬]](hippodrom), 즉 그리스-로마 시기의 문화 시설을 대표하는 전차경기장의 응원단에서 찾아볼 수 있다. 히포드롬에서 벌어지는 전차경주에서 각 전차는 자신의 소속을 색깔로 나타냈고, 이 색깔을 응원하는 데에서 청색당과 녹색당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두 당파는 본질적으로 응원단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없는 단체였다. 동로마 제국에서 히포드롬은 고대 로마의 포룸이나 [[아테네]]의 [[아고라]]처럼 민중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내세울 수 있는 장소였다. 이 장소를 장악한 두 당파는 현대와 비교하면 [[정당]]과도 같은 존재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청색당과 녹색당은 기본적으로는 상호간에 대립을 이어가는 조직이었다. 청색당은 대토지를 보유한 고위 귀족층의 비호를 받았고, 녹색당의 경우 상공업자들과 궁정 관료들의 지지를 얻었다. 바꾸어 말하면, 청색당은 [[고대 로마]] 서부의 전통을 이어받은 자들의 정당이었고, 녹색당은 [[고대 로마]] 동부에서 새로 발흥한 이들의 정당이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양자는 산업 진흥책에서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이들이 갈등을 빚은 부분은 산업 분야 정책만이 아니었다. [[종교]], 특히 [[단성론]]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를 놓고 양자는 치열한 갈등을 벌였다. 청색당의 경우 [[칼케돈 공의회]]에서 공인받은 소위 정통 교리를 지지했고, 녹색당의 경우 [[오리엔트]] 지역에서 세가 강성했던[* 실제로 [[단성론]]이 이단으로 공인받은 이후 교회는 분열되었고, 그 결과가 현대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오리엔탈 정교회]]이다.] [[단성론]]을 지지했다. 보통의 경우, 양 당 중 한 당이 정부의 비호를 받고 정부의 비호를 받지 못한 당은 반정부적인 기류를 형성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실제로 녹색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아나스타시우스 1세의 재위 당시 청색당의 폭동이 빈발했고, 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이 폭동들의 와중에 제위를 상실할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두 당이 공동 전선을 펴는 경우도 있었는데, 중앙권력의 절대주의적인 지배가 나타나려 할 때 양 당은 손을 잡고 정부에 공동으로 대항하기도 했다. 양 당은 자유시민의 전통을 이어받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 반란의 시작 == 532년 1월, 드디어 [[콘스탄티노플]]에서 반란이 폭발하게 된다. 당시 재위하고 있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숙부인 [[유스티누스 1세]]가 재위하던 당시까지만 해도 아나스타시우스 1세의 지지를 받던 녹색당 대신 청색당을 비호하던 인물이었고, 청색당은 그런 황제에게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제위에 오르게 된 [[유스티니아누스]]는 즉위와 함께 양 당 모두를 강력하게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양 당은 강력한 형사적 처벌 조치와 탄압을 받았고, 이는 양 당의 불만을 동시에 촉발시키기에 충분한 정도였다. 거기에 더해서 [[유스티니아누스]]의 고토 수복으로 대표되는 대사업은 필연적으로 제국의 주민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안겨주었고, 콘스탄티노플 전역에서 황제에 대한 반발심이 들끓고 있었다. 양 당은 서로 연대하여 황제의 절대권력에 대항할 것을 선포했다. 532년 1월, 양 당은 자신들의 근거지이자 정치적 의사를 전통적으로 표출해 온 히포드롬에 집결했고, 거대한 외침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자비로운 녹색당과 청색당이여, 부디 영속하라!"''' == 진압 == 반란의 기세는 뜨거웠다.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화염에 휩싸였고, 양 당은 [[유스티니아누스]]의 폐위와 새 황제의 즉위를 선포했다. 아나스타시우스 1세의 조카가 새 황제로 선포되는 지경에 이르자 [[유스티니아누스]]는 수도를 떠나 도망칠 준비를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런 그를 가로막은 것이 황후 [[테오도라]]였다.(이 때 '황제의 옷은 가장 좋은 수의'라고 함) [[테오도라]]의 단호한 만류에 정신을 다잡은 [[유스티니아누스]]는 반란에 대항할 것을 결의했다. 그리고 그런 [[유스티니아누스]]에게 주어진 두 칼이 있었다. 바로 제국 제일의 명장 자리를 놓고 겨룰 수 있던 장수들, [[벨리사리우스]]와 [[나르세스]]가 있었던 것이다. 우선 [[나르세스]]가 노회한 책략가다운 면모를 확실히 발휘했다. [[나르세스]]는 반란 세력의 연대를 해체하는 게 선결과제라고 보았고, 청색당의 지도부와 접촉을 시도했다. [[유스티누스 1세]]와 [[유스티니아누스]]의 공동통치기에 청색당에 베풀어진 은혜를 상기시킨 [[나르세스]]는 청색당의 지도부와 담판을 짓는 데 성공했고, 강력한 연대를 이루고 있던 양 당은 결국 분열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시점에 제국 최고의 용장이자 전술가라고 할 수 있을 [[벨리사리우스]]가 나섰다. [[벨리사리우스]]는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던 병력들을 지휘하여 반란의 진원지였던 히포드롬으로 진격했다. 공격은 신속하고 기습적이었다. 허를 찔린 봉기자들은 [[벨리사리우스]]의 지휘를 감당하지 못했고, 수천여 명이 이 공격에서 학살당했다. 최종적으로 [[유스티니아누스]]는 이 반란을 진압하면서 자유시민의 전통을 확실히 꺾고, 절대적인 황제권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이 반란의 와중에 불타오른 [[하기아 소피아]]는 [[유스티니아누스]]의 손에 의해 재건되었고, 그는 완공된 성당을 보고 '''"솔로몬이여, 짐은 그대를 능가했도다!"'''라 했다고 전해진다. 절대적인 황제로 자리매김한 [[유스티니아누스]]에게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다만 이 일로 황후 테오도라의 인기는 폭락했다(...)] [[분류:동로마 제국]] 니카의 반란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