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목차] == 일반적인 의미 == * 等數 : 등급에 따라 정한 차례. [[등수놀이]]가 예시 단어다.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오나라와 서진의 인물 == ||||||||||||||<tablealign=center><#73d1f7><:> {{{#000000 '''『'''}}}[[서진|{{{#000000 '''진서'''}}}]]{{{#000000 '''』'''}}} '''{{{#000000 「나헌등전(羅憲等傳)」}}}''' || ||<:> [[나헌]] ||<#dcdcdc><:> '''등수''' ||<:> [[마륭]] ||<:> [[호분#s-1|호분]] ||<:> [[오언(삼국지)|오언]] ||<:> [[장광(삼국지)#s-1|장광]] || 滕脩 (? ~ 288)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오나라의 관료이자 [[서진]]의 인물로 자는 현선(顯先). 별명은 등순(滕循). 남양군 서악현 출신으로 [[손호]]의 대에 광주자사가 되었으며, 서악후에 봉해졌고 웅목을 대신해 광주자사가 되었다가 중앙으로 와서 집금오를 지내다가 279년에 사공에 취임할 예정이었지만 수윤의 부하였던 [[곽마]]가 하전, 왕족, 오술, 은흥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가절을 받아 진남장군, 광주목이 되어 출정했다. 그러나 시흥에서 왕족의 군대에 막혀 나아갈 수 없었는데, 그 사이에 곽마의 세력이 더욱 강해져서 남해태수 [[유략#s-3|유략]]이 살해되거나 광주자사 서기가 축출되자 [[도준]], [[도황]] 등이 파견되었다. 파구에 이르렀을 때 손호가 항복하자 흰 비단을 매고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갔고 광주자사 여풍, 창오태수 왕의와 각각 인수를 보내 진나라에 항복했다가 조서로 안남장군, 광주목, 가절이 되어 벼슬을 그대로 유지했으며, 무당후에 봉해져 여러 해 동안 남방을 지켜 소수 민족들이 그를 따랐다고 한다. 시호는 성후(聲侯)였다가 그의 아들인 등병이 표를 올려 시호를 바꿀 것을 청하자 충후(忠侯)가 되었다. === 미디어 믹스 === || http://kongming.net/11/i/p/port_lg/245-Teng-Xiu.jpg || || 삼국지 9,10,11 || || http://san.nobuwiki.org/pic/sancg/13/0697.jpg?width=400 || || 삼국지 13 || [[삼국지 시리즈]]의 일러스트는 무슨 [[백하팔인]]에 들 것 처럼 생겼으나 정치가 70을 넘는 등 그냥저냥 평범한 문관. [[삼국지 9]]에서는 전법이 있긴 하나 전투용 전법이 없는 안습한 꼴로 등장한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35/무력 22/지력 44/정치력 72/매력 62에 특기는 겨우 기술 1개. 정치력이 70 넘는 장수 중 지력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낮은 장수는 등수뿐인데, 그 극단적으로 낮은 지력에 기술 특기가 있어봐야 의미가 없다. [[삼국지 11]]에서도 전작과 큰 차이 없이 총 능력치 합이 240으로 전작보다 조금 올랐다. [[분류:동오의 인물]] [[분류:서진의 인물]] 등수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