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鄧芝 (? ~ 251) [목차]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촉한|촉나라]]의 인물. [[등량]]의 아버지. 자는 백묘(伯苗).[* [[덩샤오핑]]이 주장했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의 그 백묘와는 한자 표기가 다르다. 그의 자가 맏이 백이란 글자를 쓴 것으로 보아 등지는 형제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음을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의양군 신야현 출신. 후한의 사도 [[등우]]의 후손.[* 위나라의 [[조상]]의 심복 [[등양]]도 마찬가지다.] == 정사 == === [[유비(삼국지)|유비]]의 눈에 뜨인 인재 === 일찍 [[촉한|촉]]으로 들어가 활동하였지만 [[듣보잡]] 인재 정도로 취급당해 중용되지는 못했다. 이 시기 익주종사 장유가 등지의 관상을 보고는 그가 70줄 넘어서 대장군 지위에 오르고 또한 후에 봉해질 것이라 평하였다. 이후 파서태수 [[방희]]가 인재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찾아가 의탁했다. 전체적으로 유비의 입촉 전에는 별다른 행적이 남아있지 않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자 비저각독에 임명되었으며, 유비와 대면한 자리에서 잠시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 때 유비가 등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비현 현령으로 임명했다가 곧 광한태수로 승격시켰다. 인물평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유비가 등지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점을 보면 역시 보통 인물은 아니었던 듯. 나중에는 중앙정부로 불려가 상서에 임명되기도 했다. === [[촉한|촉]]·[[오(삼국시대)|오]]의 외교관 === 유비 사후 [[제갈량]]은 [[손권]]이 딴 마음을 먹고 촉에 위협을 가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등지가 찾아와 촉오동맹을 굳건하게 해야된다고 주장하자 제갈량은 등지를 적임자로 보고 오에 사신으로 파견하였다. 등지는 후주 [[유선(삼국지)|유선]]의 능력의 의구심을 품고 있던 손권을 설득시켜 오가 위와 관계를 끊고 촉과 공수동맹을 맺도록 주선하였고 더불어 오에 붙잡혀있던 [[장예]]의 석방 협상도 성사시켰다. 손권은 등지의 변설과 외교관으로써의 역량에 감복하여 제갈량에게 별도의 서신을 보내 등지를 칭찬했다. 그 이후로도 손권은 몇 차례 편지를 보내 등지의 안부를 묻고 예물을 보내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종예]]가 사신이 되어 손권에게 나아가서 당당하게 맞받아치자 손권이 감탄하며 '''"경은 예전에 왔었던 등지만큼 대단한 사람이오."'''라고 말한 바 있다. === 무관으로서의 면모 === [[제갈량의 북벌]]이 시작되자 중감군, 양무장군으로 임명되어 종군하였고 1차 북벌에서는 [[조운]]의 부장으로 활약하였다. 제갈량 사후에는 전군사, 전장군, 연주자사에 임명되고 양무정후로 봉해졌으며, 나중에는 거기장군으로 승진하였다. 248년에 부릉국 사람이 도위를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키자, 등지가 군대를 인솔하여 토벌하였다. 화양국지에 따르면 등지가 부릉을 정벌할 때 활 쏘기를 좋아했던 등지는 검은 원숭이에게 화살을 맞히었다. 그런데 원숭이가 그 화살을 뽑고 나뭇잎을 말아 상처를 감싸자 등지가 탄식하며 "아~! 내가 사물의 본성을 어겼으니 장차 죽게 되겠구나!"라고 말했다. 일설에 따르면 등지가 새끼 원숭이를 안고 있는 어미 원숭이에게 화살을 맞히었는데 새끼가 어미에게서 화살을 뽑고 나뭇잎으로 어미의 상처를 감쌌다. 등지가 마침내 탄식하며 활을 물 속에 던지고는 스스로 마땅히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 죽음 === 등지는 251년에 죽었다. 등지는 오랫동안 촉의 중직을 맡았지만 생활은 관에서 주는 녹봉에만 의존하였고 재산을 모으는데도 영 관심이 없다보니 가족들은 끼니를 걱정해야 될 정도로 가난했고 죽었을 때 남은 재산이 없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강직했지만 나름대로 모난 성격이었던지 다른 신하들과 어울리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나마 [[강유]] 정도만이 등지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등지 사후에는 아들 [[등량]]이 뒤를 이었다. == 연의 == 연의에서도 정사처럼 촉오동맹을 놓고 고뇌하고 있던 [[제갈량]]의 눈에 들어 따로 회동을 가지게 되었고, 이때 제갈량의 인정을 받아 오의 사절로 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손권]]은 촉에서 사신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펄펄 끓는 기름을 담은 솥을 준비하고 무장한 병사들을 잔뜩 세워놓은 채 맞이한 것으로 나온다. 다음은 연의의 내용이다. || [[손권]]이 군사를 움직인다는 소식을 듣자 제갈량은 등지를 보냈고, 손권은 이에 어떻게 대응할 지를 의논하였다. 이에 [[장소]]가 손권에게 간했다. "[[역이기]]가 제나라를 설복하려다 튀겨져 죽은 일화를 얘기해 겁을 주십시오." 이에 손권은 등지를 맞이할 때 무사들을 줄세우고, 큰 북을 울리며 솥에 기름을 팔팔 끓였다. 하지만 등지는 웃음까지 지으면서 그 모든 것을 무시한 채 손권에게 나아갔다. 등지가 절을 하지 않자 손권은 왜 절을 하지 않냐 따졌고, 등지는 이에 간단하게 대답했다. '''"[[촉한|큰 나라]]에서 온 [[사신]]은 [[오(삼국시대)|작은 나라]]의 [[손권|왕]]에게 절하지 않는 법입니다."'''[* 이희재 화백의 만화 삼국지에서는 [[유선(삼국지)|유선]]은 촉의 황제이고, 손권은 아직 왕이니, 동오가 그만큼 작은 나라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이에 손권이 장소가 말한대로 기름솥에 쳐넣으라며 겁을 줬지만 등지는 오히려 웃음을 터트리며 '''"무사들을 모아놓고 기름솥을 내걸고 맞이하는 게 사신을 접대하는 태도가 맞냐? 설령 나를 겁주려고 한들, 이래서야 동오가 일개 사신에게 잔뜩 겁을 먹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가?"'''라고 반박했으며, 이에 손권은 무작정 화만 낼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무사들을 물린 뒤 등지를 맞이했다. 손권은 등지에게 "나는 촉주 유선과 함께 힘을 합쳐 위나라를 치고 싶은데 촉주가 어려서 걱정이다."라고 하자 등지는 "대왕께서는 오나라의 영걸이고 제갈량은 천하의 기재인데 어찌 힘을 합쳐서 치지 못하겠습니까? 제 말이 틀리다면 저는 이 기름솥에 몸을 던져 세객이란 이름을 씻겠습니다."라며 '''진짜로 기름솥에 몸을 던지려 하자''' ~~자해공갈~~ 손권이 얼른 그를 말렸고 그의 말을 따랐다. || == 미디어 믹스 == * [[등지/기타 창작물]] 항목 참조. [[분류:촉한의 인물]] 등지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