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항목 : [[류현진]] [목차] = 개요 = [[파일:attachment/ryuddal1234.jpg]] 동산고등학교 시절 류현진의 [[청룡기]] 및 [[고등학교]] 시절 기록. ==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 1학년 ==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 입학은 [[박경태(야구)|박경태]]와 같이 했고, 둘 다 주축 투수로서 동산고를 이끌었다. ~~그러나 지금은 류현진>>>>>>>>>>박경태~~ 고등학교 1학년 당시 준결승까지 역투하며 팀을 제1회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에 올렸지만, 준결승에서 많이 투구한 나머지 [[최정]], [[배영섭]], [[배장호]]가 있던 수원유신고와의 결승전 [[선발 투수]]는 [[금민철]]이 되었다. 그러나 [[금민철]]은 결승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결국 류현진이 완전히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다시 등판하게 되지만, 류현진도 털리게 되면서 결국 팀은 준우승에 그치게 된다. ==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 2학년, [[토미 존 서저리]] == 이 대회 이후로 류현진의 팔꿈치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는데, 팔꿈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I 대학병원에서는 2개월 동안 쉬어보라는 진단을 내렸고 류현진은 2개월간 공을 놓게 되었다. 그러나 2개월간 휴식 후에 다시 야구를 재개하자 통증이 재발했고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는 2개월을 더 쉬어 보라는 진단을 내린다. 이런식으로 병원을 세 번 찾았고, 6개월간 휴식을 취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대학병원 대신 개인병원[* 이름만 들으면 아는 사람은 아는 모 병원으로 프로 선수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을 택했고, 그곳에서 '''수술이 불가피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잘못된 진단으로 중요한 고교 시절 때의 긴 시간을 날려 버렸으니 화가 난 류현진의 아버지는 그같은 진단을 내렸던 대학병원에서 항의를 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류현진의 아버지가 깡패출신이어서 성질이 더럽다' 라는 루머가 돌게 되어 SK와 롯데가 류현진을 외면하였다는 설도 있지만 사실 '''큰 부상 & 수술 경력 있는 어린 선수'''라는 점이 가장 컸다.] 팔꿈치 부상은 투수의 부상 중에 그나마 위험성이 적은 편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신체가 완전히 자라서 자리잡힌 성인의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고 류현진은 수술 당시 아직 성장중인 청소년이었기에... 결국 류현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아야 했고, 3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공을 잡을 수 있었다. ==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 3학년 == 이후 열린 청룡기 대회에서 또 다시 예선부터 준결승전까지 3경기를 내리 던지면서 전부 무실점으로 승리를 이끌어 냈다. 특히 8강전때 성남고와 맞붙었을때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1022349|무려 17개의 탈삼진을 잡아내어 스카우터들의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최동원]]이 홀로 갖고 있던 전경기 무실점 승리 기록을 노릴수도 있었던 터라 관심은 더해졌다. 그러나 지나친 무리로 인해 결승전에서는 1회만에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결국 최우수 선수상도 팀의 역전에 큰 공헌을 한 현천웅에게 내어주게 되었다. 하지만 청룡기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한기주]], [[김광현]]등과 함께 청소년 대표팀에 출전하여 준결승전에서 대만을 상대로 6이닝동안 10탈삼진을 잡는 등 호투하였다. == 신인 드래프트 == [[류현진/프로지명]], [[한국프로야구/2006년/신인드래프트]]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참고할 것. 류현진/청룡기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