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항목 : 류현진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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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고등학교 시절
1.1 동산고 1학년
동산고 입학은 박경태와 같이 했고, 둘 다 주축 투수로서 동산고를 이끌었다. 그러나 지금은 류현진>>>>>>>>>>박경태
고등학교 1학년 당시 준결승까지 역투하며 팀을 제1회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에 올렸지만, 준결승에서 많이 투구한 나머지 최정, 배영섭, 배장호가 있던 수원유신고와의 결승전 선발 투수는 금민철이 되었다. 그러나 금민철은 결승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결국 류현진이 완전히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다시 등판하게 되지만, 류현진도 털리게 되면서 결국 팀은 준우승에 그치게 된다.
1.2 동산고 2학년, 토미 존 서저리
이 대회 이후로 류현진의 팔꿈치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는데, 팔꿈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I 대학병원에서는 2개월 동안 쉬어보라는 진단을 내렸고 류현진은 2개월간 공을 놓게 되었다. 그러나 2개월간 휴식 후에 다시 야구를 재개하자 통증이 재발했고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는 2개월을 더 쉬어 보라는 진단을 내린다. 이런식으로 병원을 세 번 찾았고, 6개월간 휴식을 취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대학병원 대신 개인병원[1]을 택했고, 그곳에서 수술이 불가피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2]
팔꿈치 부상은 투수의 부상 중에 그나마 위험성이 적은 편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신체가 완전히 자라서 자리잡힌 성인의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고 류현진은 수술 당시 아직 성장중인 청소년이었기에...
결국 류현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아야 했고, 3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공을 잡을 수 있었다.
1.3 동산고 3학년
이후 열린 청룡기 대회에서 또 다시 예선부터 준결승전까지 3경기를 내리 던지면서 전부 무실점으로 승리를 이끌어 냈다. 특히 8강전때 성남고와 맞붙었을때는 무려 17개의 탈삼진을 잡아내어 스카우터들의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최동원이 홀로 갖고 있던 전경기 무실점 승리 기록을 노릴수도 있었던 터라 관심은 더해졌다. 그러나 지나친 무리로 인해 결승전에서는 1회만에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결국 최우수 선수상도 팀의 역전에 큰 공헌을 한 현천웅에게 내어주게 되었다.
하지만 청룡기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한기주, 김광현등과 함께 청소년 대표팀에 출전하여 준결승전에서 대만을 상대로 6이닝동안 10탈삼진을 잡는 등 호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