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세계 7대 불가사의]] ||<:><-4><tablealign=center><#FFEA92><table bordercolor=#FFEA92> '''{{{+1 [[안티파트로스]]의 [[세계 7대 불가사의]]}}}''' || ||<-4><:><#ffffff>https://65.media.tumblr.com/f655c56442a8f678c3591be32d70b3bc/tumblr_o9dezvBpOA1sqk8veo7_r1_1280.png?width=800|| ||<:><rowbgcolor=#ffffff> [[쿠푸왕]]의 [[피라미드]] [br](이집트) ||<:> [[바빌론의 공중정원]][br](이라크) ||<:> [[제우스 상|올림피아의 제우스 상]][br](그리스) ||<:> [[아르테미스 신전]][br](그리스) || ||<:><rowbgcolor=#ffffff> [[마우솔로스 영묘]][br](터키) ||<:> [[로도스의 거상]][br](그리스) ||<:> [[알렉산드리아의 등대]][br](이집트) ||<:> || Mausoleum http://fc02.deviantart.net/fs70/f/2011/142/d/6/the_mausoleum_of_halicarnassus_by_pervandr-d3h093q.jpg?width=700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2/The_maussolleion_model_dsc02711-miniaturk_nevit.jpg?width=500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실물 크기의 24분의 1로 축소된 복원 모형. [목차] == 소개 == 마우솔로스의 영묘는 할리카르나소스(현재는 터키의 남서쪽 해안 도시 보드룸)에 있었던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특이한 모양과 복잡한 장식 때문에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혔으며, 그 때문에 오늘날 마우솔레움은 무덤건축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참고로 이곳의 유물들 상당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있다. 유명한 유물중 하나가 그리스인과 아마존족의 전투장면을 새긴 프리즈와 마우솔로스 상으로 보이는 높이 3m의 조각상 등이 있다. 마우솔로스의 영묘에는 기원전 350년 무렵 할리카르나소스의 통치자였던 소아시아의 페르시아인 총독 마우솔로스와 그의 아내[* 이전 항목에는 '왕비' 라 되어 있었으나, 마우솔로스는 왕이 아니라 총독이었으므로 왕비라 할 수 없다.~~사실상 왕이긴 했지만~~]인 [[아르테미시아]]가 안치되었었는데 그 당시에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뺀다면 무덤 건축물 중엔 최대 규모였다. 무덤 주인의 이름을 따서 마우솔레움이라고도 하는데, 대규모 무덤 건축물의 대명사가 되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아우구스투스 영묘|마우솔레움 아우구스티]]. == 건설 == 전설에 따르면 마우솔로스가 죽자 그의 누이이자 아내인 [[아르테미시아]] 2세는 비탄에 잠겨 그를 화장한 재를 [[포도주]]에 넣어 마시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겠노라 맹세했으며 본인도 결국 죽은 뒤 이 무덤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건축가는 피티우스(또는 피테오스)였고 4명의 뛰어난 그리스 예술가 스코파스·브리악시스·레오카레스·티모테오스 등이 조각을 맡았다. 로마의 저술가인 대(大) 플리니우스(23~79)에 따르면 이 영묘는 거의 정사각형으로서 그 둘레가 125 m에 이르렀다고 한다. 36개의 기둥이 둘러싸고 있고 24단의 계단식 피라미드로 꼭대기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4두마차가 올려져 있었다고 한다. ~~크고 아름답군~~ 건설을 추진한 당사자인 마우솔로스는 공식적으론 소아시아에 있는 페르시아 제국령 카리아의 사트라프였지만, 사실상 군사와 내정권을 모두 장악해서 그 지방에선 왕이나 다름없었다. 마우솔로스는 헬레니즘 국가였는데, 할리카르나소스로 천도한뒤 헬레니즘식의 건축물을 많이 건축하였다. 그가 죽기 전 영묘를 건축하기 시작하였으나 완공되기 전에 죽고, 그의 아내이자 여동생이였던 아르테미시아가 계속 진행하였으나 영묘는 그녀가 죽은 뒤인 기원전 350년 후반쯤에 완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 파괴 == http://3.bp.blogspot.com/-KgytK-qZpro/TmYX4Yn_xgI/AAAAAAAAARI/3yv13OK_Bmg/s1600/bodrum-halicarnassus-mausoleum.JPG?width=500&height=350 ~~망했어요~~ 마우솔로스의 영묘는 11~14세기에 [[지진]]으로 파괴된 것으로 보이며, 1409년 [[십자군]]이 여기 처음으로 도착했을 때는 이미 폐허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굴러다니던 돌덩이들은 1494년 십자군 원정 때 보드룸 요새를 짓고 보수하는데 사용된다. ~~지못미~~ 그렇게 1900년간 원형이 보존되었던 영묘는 완전히 사라지게됐다. 일부 파편들은 남겨져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었다. 사실 마우솔레움 지상의 유적이 소멸된 후에도 지하 부분은 1507년경까지 지하는 비교적 온전히 남아있었다. 이 곳을 방문했던 [[프랑스]] 리용의 클로드 기샤르는 1581년 발간한 책에서 이렇게 적었다. >"여러 방을 연결하는 복도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흰 대리석으로 장식된 무덤을 발견했다. 그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간이 없어 다음날 뚜껑을 열기로 하고 철수했다. 그러나 다음날 다시 와서 보니 무덤은 열려져 있고 황금 조각과 옷 조각이 사방에 떨어져 있었다. 이것들은 우리가 철수한 후 약탈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누군가 밤에 와서 관을 열고 매장품을 도굴했을 것이다. 그 무덤 속에는 엄청난 보물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 기록을 가지고, 도굴한 범인은 [[기독교]]인이며, 이는 기독교인들의 탐욕을 나타낸다고 규탄하는 주장이 있었지만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헛소리. 애초에 할리카르나소스의 영묘는 십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도굴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체는 유골항아리에 보관되어 있었기에[* 참고로 남편의 유해는 발견해서 연구 중인데 아내인 아르테미시아의 유골은 잃어버렸다고...--남편 유골은 술에 타서 마섰다면서? 먹다 남겼나보지. 사람 뼈 술에 타서 다 먹으려면 알콜중독으로 죽을듯--] 관에 대해 기록하고있는 저 기록은[* 고대사를 보면 페네키아나 그리스 같은 해양민족은 항아리, 이집트나 히타이트 같은 농경민족은 관, 스키타이나 이스라엘같은 유목민족은 천이나 가죽에 시체를 넣는 경향을 보인다. 즉 해양민족은 교역품을 보관하는 커다란 도자기--물론 배의 재료인 나무도 흔한 편이지만 바다 한 가운데서 사람이 죽었을때 배를 뜯을 수는 없잖아--, 농경민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 유목민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가죽을 택하는 식으로, 할리카르나소스는 민족이고 문화고 그리스였으므로 유골항아리에 망자를 집어넣는 건 당연하다.] 신빙성이 없다. 생각해보면 거대하고 복잡한 피라미드들이나 왕가의 계곡의 파라오의 묘들도 도굴꾼에게 뻥뻥 털렸는데, 눈에 잘 띄고, 내부구조도 별로 복잡할 수가 없는 마우솔레움이 1700년간 멀쩡히 봉인되어있다가, 하필 잠깐 그 지역을 점유했던 십자군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털렸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그간 할리카르나소스가 포함된 이오니아 지방을 점령했던 세력만 10개가 넘을 텐데(…). [[분류:건축물]] 마우솔로스 영묘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