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분류:제2차 세계대전/군인]] [[분류:한국전쟁/군인]]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6/Mark_Clark.jpg Mark Wayne Clark 마크 웨인 클라크 1896년 5월 1일 ~ 1984년 4월 17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 전선]]을 지휘했던 [[미국]]의 [[장군]]. 사실 처음부터 해당 전선을 지휘했던게 아니라 도중에 [[아이젠하워]]와 [[몽고메리]]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하기 위해 옮겨가자 대타로 지휘를 이어가게 되었다. [[이탈리아]] 전선은 한때 [[몬테카시노 전투]]와 같은 격전을 치루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전선이 평온한 상태였는데, 이는 우선순위에 따른 차이에서 기인했다. 태평양보다 유럽쪽에 우선순위가 가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전선은 2부 리그 취급. 그래서 물자와 병력이 노르망디에 비해 많이 뒤쳐져 적극적인 공세에 임하지 못했는데, 이에 대해 연합국내 [[높으신 분들]]조차 가차없는 비판을 가했다. 이유야 어쨌건 책임자인 마크 클라크 장군이 덤탱이를 씌울 수 밖에. 그런데 맥아더는 일본군과 1:1 수준의 병력을 이끌고 공세에 나서 못해도 거의 10:1수준의 전사자 교환비를 보여주었다. 점점 전사자 교환비가 높아져서 1:1 수준의 병력으로도 필리핀 탈환전에서 40:1에 육박하는 전사자 교환비까지 보여주었다. 물론 상대가 [[일본군]]이었으니까 가능했겠지만. 후에 [[6.25 전쟁]]에서 1952년 [[8월 15일]] [[나토군]]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매튜 B. 리지웨이]] 장군을 대신해 3대 유엔군 총사령관을 맡아 전선을 지휘하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당시 유엔군 대표로 휴전 협정에 서명했다. [[김영옥(군인)|김영옥]] 대령과의 일화가 하나 있는데 [[이탈리아 전선]]에 있었을 때 당시 이 방면군 사령관이었던 클라크 장군은 로마 점령 이후 그를 보고 계급이 고작 중위라는데 놀라서 왜 겨우 중위냐고 물었다. 그는 진급 신청을 5번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클라크 장군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당장 옆에 있는 전속부관의 대위 계급장을 떼다가 붙여주면서]] 즉석 진급시켰다고 한다.~~전속부관 [[안습]]~~ ~~불란서 츤데레 황제 폐하보다 낫다~~ 마크 클라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