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 Wayne Clark
마크 웨인 클라크
1896년 5월 1일 ~ 1984년 4월 17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 전선을 지휘했던 미국의 장군. 사실 처음부터 해당 전선을 지휘했던게 아니라 도중에 아이젠하워와 몽고메리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하기 위해 옮겨가자 대타로 지휘를 이어가게 되었다.
이탈리아 전선은 한때 몬테카시노 전투와 같은 격전을 치루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전선이 평온한 상태였는데, 이는 우선순위에 따른 차이에서 기인했다. 태평양보다 유럽쪽에 우선순위가 가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전선은 2부 리그 취급. 그래서 물자와 병력이 노르망디에 비해 많이 뒤쳐져 적극적인 공세에 임하지 못했는데, 이에 대해 연합국내 높으신 분들조차 가차없는 비판을 가했다. 이유야 어쨌건 책임자인 마크 클라크 장군이 덤탱이를 씌울 수 밖에.
그런데 맥아더는 일본군과 1:1 수준의 병력을 이끌고 공세에 나서 못해도 거의 10:1수준의 전사자 교환비를 보여주었다. 점점 전사자 교환비가 높아져서 1:1 수준의 병력으로도 필리핀 탈환전에서 40:1에 육박하는 전사자 교환비까지 보여주었다. 물론 상대가 일본군이었으니까 가능했겠지만.
후에 6.25 전쟁에서 1952년 8월 15일 나토군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매튜 B. 리지웨이 장군을 대신해 3대 유엔군 총사령관을 맡아 전선을 지휘하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당시 유엔군 대표로 휴전 협정에 서명했다.
김영옥 대령과의 일화가 하나 있는데 이탈리아 전선에 있었을 때 당시 이 방면군 사령관이었던 클라크 장군은 로마 점령 이후 그를 보고 계급이 고작 중위라는데 놀라서 왜 겨우 중위냐고 물었다. 그는 진급 신청을 5번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클라크 장군이 당장 옆에 있는 전속부관의 대위 계급장을 떼다가 붙여주면서 즉석 진급시켰다고 한다.전속부관 안습 불란서 츤데레 황제 폐하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