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파일:attachment/만파식적/manpa_002.jpg]] --[[삐리리 불어봐 재규어|삐리리 불어봐]] [[신문왕]]-- 물론 이런 거 아니다. [목차] ||||||||||||||<:><width=400><table bordercolor=black><bgcolor=black>'''[[고사성어|{{{#white 고사성어}}}]]'''|| ||<:><width=100>{{{+5 '''萬'''}}} ||||<:><width=100>{{{+5 '''波'''}}} ||||<:><width=100>{{{+5 '''息'''}}} ||||<:><width=100>{{{+5 '''笛'''}}} || ||<:>일만 만 ||||<:>물결 파 ||||<:>쉴 식 ||||<:>피리 적 || == [[신라]] 시대의 전설에 나오는 신비한 힘을 가진 [[피리]] == [[파일:/image/022/2011/07/18/20110718001401_0.jpg]] 사진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중인 두 옥피리. 대나무의 모양을 본땄기에 자료사진으로 넣었지만 만파식적은 아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2287611|#]] 관련글 [[http://veritasest.egloos.com/1603542|하나]], [[http://blog.daum.net/kinhj4801/15960458|둘]] "만파식적"이란 세상의 파란을 없애고 평안하게 하는 피리라는 뜻. 속뜻은 안정을 꾀하려 했던 것과 모든 정치적 불안이 진정되고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소망하는 염원 [[삼국유사]]에 많은 내용이 나오는데, [[신라]] 제31대왕인 [[신문왕]]이 즉위 후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동해]]와 가까운 곳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었는데 신문왕 2년에 해관이 동해안에 작은 산이 감은사로 향하여 온다고 하여 일관으로 하여금 점을 쳐 보니,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수성의 보배를 주려고 하니 나가서 받으라 하였다고 한다. 이에 [[이견대]](利見臺)에 가서 보니, 바다위에 떠오른 거북 머리 같은 섬에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풍우가 일어난 지 9일이 지나 왕이 그 산에 들어가니, 용이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라 하여 그것을 가지고 나와 피리를 만들어 보관하였다. 이 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으니, 용은 “비유하건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대도 역시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나는 것이요… 또한 대왕은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사라졌다. 왕이 곧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 ·근심이 해결되었다 한다. 만파식적과의 관련점은 나타나 있지 않지만 거북머리 같은 섬은 [[귀수산]]이라는 요괴일 가능성이 있다. 한마디로 만파식적을 한 번 불면 몰려왔던 적군이 물러가고 앓던 병이 나으며 홍수가 나든 가뭄이 오든 한큐에 해결해버리는 이름값하는 [[킹왕짱]] [[버프]] [[아이템]]으로 신라의 [[국보]]로 지정되었으며~~[[허경영|허경영??]]~~ 특히--대 일본 전용 결전병기--일본의 침략을 막는 효능이 있어 일본 사신이 1천냥을 내고 한번 보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특이하게도 [[조령]]을 넘으면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하여 신라 밖으로 넘어가지 않으려는 정절의 의미로도 해석되었다.[* 조선 시대의 실학자 [[정약용]]은 이러한 설에 대해서 신라옥적은 굵기가 통통하고 손가락 대는 부분 구멍이 좁은 것이 보통 피리와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경주 사람들이야 이런 모양의 피리를 일상적으로 어려서부터 접해왔으니 익숙하게 잡고 연주할 수 있었겠지만 경주 외의 다른 지방 사람들은 신라옥적과 같은 모양의 피리에 익숙하지 않아서 연주가 서툴렀던 것 뿐이고, 덤으로 경주 사람들이 이런 형태의 피리에 익숙하다는 게 알려지면 경주를 떠나 다른 지방으로 불려올라가게 될 것이 귀찮아서(...)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효소왕]] 때 분실했다가 다시 찾고 또 이적을 많이 보여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으로 이름을 고쳤다고 하며 [[원성왕]] 때 일본이 만파식적을 노려서 왕이 더 깊은 곳에 숨기도록 명한 이후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 악지에서는 [[대금]]의 원류에 관한 이야기로 소개하였으나 [[김부식]]의 사견으로, 이러한 설이 있으나 '괴이하여 믿지 못하겠다'고 부연했다.[* 고기(古記)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신문왕(神文王) 때에 동해 안에서 홀연히 한 작은 산이 나타났는데 형상이 거북의 머리와 같았고, 그 위에 한 줄기의 대나무가 있어서 낮에는 나뉘어 둘이 되고 밤에는 합하여 하나가 되었다. 왕이 사람을 시켜 베어다가 적(笛)을 만들고 이름하여 만파식(萬波息)이라고 하였다.』비록 이러한 설이 있으나 괴이하여 믿을 수 없다.] 현대적인 시각에서 생각하면, 아마도 [[박혁거세]]의 [[금척]]처럼 왕조의 훌륭한 통치를 상징하는 기믹 정도로 추정된다. 경주 [[삼기팔괴]] 중 삼기의 하나로 만파식적을 꼽는다. 인터넷에 출몰하는 관악기계의 재야고수(주로 리코더)들에게 칭찬의 관용어구로 쓰이기도 한다. ~~[[http://bgmstore.net/view/m9RYP|사실 모 야구팀의 응원가다?]]~~ ~~[[http://blog.naver.com/qudals0124/30122330851|만파식적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hit&no=12787&page=|디씨인사이드에도 있다 카더라]]~~ ~~만파식적 노래도 있다. 만파식적 불어라~ 느르노느르나헤로노-느~ 적군들이 떠나네~ 만파식적 이야기~~~ == [[똥컴]]을 어떻게든 좀더 써먹기 위한 프로그램 == (주)클루닉스에서 만든 [[클라우드 컴퓨팅]] 솔루션. 어원은 위의 피리다. 큰 [[서버]] 2-3 대나 [[메인프레임]] 1대에 똥컴 수십 대를 연결해 놓아, 각 똥컴들이 서버 자원을 마치 자기 컴퓨터의 자원처럼 쓸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기존 컴퓨터에 클라이언트를 설치하는 형식으로 동작한다. 이 클라이언트상에서 각각의 컴퓨터는 만파식적에 접속하는 단말기가 되므로 낮은 성능의 컴퓨터로도 자신의 사양보다 나은 수준의 작업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보통 펜티엄1-2급의 컴퓨터를 펜티엄3 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도, 이런 이유로 주로 [[학교]]의 컴퓨터실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 흔했으며, 단말기라 불리는 요즘의 미니 PC 크기의 기기에 키보드, 마우스만 연결 뒤 연산 작업은 서버실의 워크스테이션급 컴퓨터 여러 대로 운용하는 시스템이 많이 쓰였다. 요즘의 PC방 노하드 시스템처럼 모든 자료의 저장도 서버 PC에서 하며 재부팅 시 파일이 전부 날아갔으며, 가끔씩 연결이 안 되면 영문 임베디드 윈도우 상태에서 뻗는 경우도 비일비재. 시스템 노후화와 안정성 문제로 2000년대 후반부터 대부분 펜티엄 4급 이상의 PC로 교체되었다. [[분류:한국 신화]] [[분류:통일신라]] [[분류:전설의 도구]] 만파식적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