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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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리리 불어봐 신문왕 물론 이런 거 아니다.

고사성어
일만 만물결 파쉴 식피리 적

1 신라 시대의 전설에 나오는 신비한 힘을 가진 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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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중인 두 옥피리. 대나무의 모양을 본땄기에 자료사진으로 넣었지만 만파식적은 아니다. # 관련글 하나,

"만파식적"이란 세상의 파란을 없애고 평안하게 하는 피리라는 뜻. 속뜻은 안정을 꾀하려 했던 것과 모든 정치적 불안이 진정되고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소망하는 염원

삼국유사에 많은 내용이 나오는데, 신라 제31대왕인 신문왕이 즉위 후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동해와 가까운 곳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었는데 신문왕 2년에 해관이 동해안에 작은 산이 감은사로 향하여 온다고 하여 일관으로 하여금 점을 쳐 보니,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수성의 보배를 주려고 하니 나가서 받으라 하였다고 한다.

이에 이견대(利見臺)에 가서 보니, 바다위에 떠오른 거북 머리 같은 섬에 대나무가 있었는데,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졌다. 풍우가 일어난 지 9일이 지나 왕이 그 산에 들어가니, 용이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천하가 태평해질 것이라 하여 그것을 가지고 나와 피리를 만들어 보관하였다.

이 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으니, 용은 “비유하건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대도 역시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나는 것이요… 또한 대왕은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사라졌다. 왕이 곧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 ·근심이 해결되었다 한다.

만파식적과의 관련점은 나타나 있지 않지만 거북머리 같은 섬은 귀수산이라는 요괴일 가능성이 있다.

한마디로 만파식적을 한 번 불면 몰려왔던 적군이 물러가고 앓던 병이 나으며 홍수가 나든 가뭄이 오든 한큐에 해결해버리는 이름값하는 킹왕짱 버프 아이템으로 신라의 국보로 지정되었으며허경영?? 특히대 일본 전용 결전병기일본의 침략을 막는 효능이 있어 일본 사신이 1천냥을 내고 한번 보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특이하게도 조령을 넘으면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하여 신라 밖으로 넘어가지 않으려는 정절의 의미로도 해석되었다.[1]

효소왕 때 분실했다가 다시 찾고 또 이적을 많이 보여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으로 이름을 고쳤다고 하며 원성왕 때 일본이 만파식적을 노려서 왕이 더 깊은 곳에 숨기도록 명한 이후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 악지에서는 대금의 원류에 관한 이야기로 소개하였으나 김부식의 사견으로, 이러한 설이 있으나 '괴이하여 믿지 못하겠다'고 부연했다.[2]

현대적인 시각에서 생각하면, 아마도 박혁거세금척처럼 왕조의 훌륭한 통치를 상징하는 기믹 정도로 추정된다.

경주 삼기팔괴 중 삼기의 하나로 만파식적을 꼽는다.

인터넷에 출몰하는 관악기계의 재야고수(주로 리코더)들에게 칭찬의 관용어구로 쓰이기도 한다.

사실 모 야구팀의 응원가다?
만파식적녀
디씨인사이드에도 있다 카더라
만파식적 노래도 있다. 만파식적 불어라~ 느르노느르나헤로노-느~ 적군들이 떠나네~ 만파식적 이야기~

2 똥컴을 어떻게든 좀더 써먹기 위한 프로그램

(주)클루닉스에서 만든 클라우드 컴퓨팅 솔루션. 어원은 위의 피리다. 큰 서버 2-3 대나 메인프레임 1대에 똥컴 수십 대를 연결해 놓아, 각 똥컴들이 서버 자원을 마치 자기 컴퓨터의 자원처럼 쓸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기존 컴퓨터에 클라이언트를 설치하는 형식으로 동작한다. 이 클라이언트상에서 각각의 컴퓨터는 만파식적에 접속하는 단말기가 되므로 낮은 성능의 컴퓨터로도 자신의 사양보다 나은 수준의 작업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보통 펜티엄1-2급의 컴퓨터를 펜티엄3 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도,

이런 이유로 주로 학교의 컴퓨터실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 흔했으며, 단말기라 불리는 요즘의 미니 PC 크기의 기기에 키보드, 마우스만 연결 뒤 연산 작업은 서버실의 워크스테이션급 컴퓨터 여러 대로 운용하는 시스템이 많이 쓰였다.

요즘의 PC방 노하드 시스템처럼 모든 자료의 저장도 서버 PC에서 하며 재부팅 시 파일이 전부 날아갔으며, 가끔씩 연결이 안 되면 영문 임베디드 윈도우 상태에서 뻗는 경우도 비일비재. 시스템 노후화와 안정성 문제로 2000년대 후반부터 대부분 펜티엄 4급 이상의 PC로 교체되었다.
  1. 조선 시대의 실학자 정약용은 이러한 설에 대해서 신라옥적은 굵기가 통통하고 손가락 대는 부분 구멍이 좁은 것이 보통 피리와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경주 사람들이야 이런 모양의 피리를 일상적으로 어려서부터 접해왔으니 익숙하게 잡고 연주할 수 있었겠지만 경주 외의 다른 지방 사람들은 신라옥적과 같은 모양의 피리에 익숙하지 않아서 연주가 서툴렀던 것 뿐이고, 덤으로 경주 사람들이 이런 형태의 피리에 익숙하다는 게 알려지면 경주를 떠나 다른 지방으로 불려올라가게 될 것이 귀찮아서(...)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2. 고기(古記)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신문왕(神文王) 때에 동해 안에서 홀연히 한 작은 산이 나타났는데 형상이 거북의 머리와 같았고, 그 위에 한 줄기의 대나무가 있어서 낮에는 나뉘어 둘이 되고 밤에는 합하여 하나가 되었다. 왕이 사람을 시켜 베어다가 적(笛)을 만들고 이름하여 만파식(萬波息)이라고 하였다.』비록 이러한 설이 있으나 괴이하여 믿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