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include(틀:만주의 역사/고대)] [목차]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1/14/Map_of_The_east_barbarian_4.png?width=400 (6세기의 말갈) 靺鞨. [[만주]]와 [[러시아]] [[아무르]] 지방 일대에 거주했던, 계통상 현재 [[만주족]]으로 계보가 이어진다고 여겨지고 있는 [[종족]]. --[[환빠|어떤 사람들]]은 [[마자르]]의 [[유사언어학|어원이 말갈이라고 한다]].--[* 실제 마자르(magyar)의 어원은 사람을 뜻하는 말 magy- 에다가 역시 사람을 뜻하는 접사 -ar가 붙은 것으로, 서시베리아에 거주하는 만시(Mansi)족의 이름과 같은 어원이라고 한다. ] == 말갈족의 발흥 == 흔히 [[유목민족]]으로 알려져 있으나, [[반농반목]]에 수렵까지 했던 종족으로 보는게 옳다. --[[미쓰에이|유목농민]]-- 이들이 거주하던 지역이 만주-아무르 지방에서도 삼림이 주를 이루는 지형인데다 강도 많고 주변에 적당한 농경지도 있어서 이것저것 생업으로 건드리는게 많았다. 강의 수계를 따라 이웃들을 털어먹고 괜찮은 평야에 터를 잡아 목축이나 농업을 하고.... ~~최첨단 하이브리드 멀티태스킹 스펙터클 아웃소싱 DIY 민족~~ [[읍루]] - [[숙신]] - [[물길]]로 이름이 바뀌어 가다가 잘 알려진 말갈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나, 유목 민족이 다들 그렇듯 그들의 혈통이 그대로 유지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고, 심지어는 말갈이 민족을 칭하는 것이 아닌 [[유목]] 민족 중 문화 역량이 떨어지던 이들의 비칭이라는 설까지 존재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발해]] 사신 일행 중 한 명이 자신이 발해인이 아니라 말갈인이라고 강조해서 사절단장과 마찰을 빚은 일화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이질적인 집단을 싸잡아 부르는 비칭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읍루-숙신-물길은 서로 친연성을 가진 종족인데 세력의 강약에 따라 이들을 대표하는 이름이 바뀌어왔다는 설이 가장 타당해보인다. 가령 읍루족이 잘나가면 읍루라 부르고 물길족이 대두하면 물길이라 부르고.... 여진이라는 이름도 이미 당-고구려 시기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발해를 거치며 말갈이 약화되고 망하자 여진이 주를 잡아 말갈→여진이 된것처럼 알려젔을 가능성도 무시할수 없다. 이들중 [[흑수말갈]]은 [[발해]]의 골칫덩어리였다. [[당나라]]는 이들을 이용해 발해를 견제하고자 하였고 결국 [[대무예]], [[대문예]] 형제간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 말갈에서 [[여진족]]으로 == http://photos.wikimapia.org/p/00/02/90/88/63_full.jpg (금나라의 초기 수도인 상경회령부 궁성 모형) ~~문이 부서진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이다.~~ 발해의 멸망 후 [[여진족]]으로 명칭이 바뀌어서 [[거란]]에 복속한 숙(熟)여진과 그렇지 않은 생(生)여진으로 구분되어 죽어지냈다. 그러나 거란의 [[요나라]]는 요동과 만주 지역에 대해 완전한 지배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고, 11세기 후반 ~ 12세기 초 영가, 우야소 등의 추장이 등장하여 부족 국가를 통합해가면서 주변국과 긴장 구도를 이루었다. 이에 [[윤관]]과 [[척준경]] 등이 별무반을 중심으로 이들을 토벌하고 [[동북9성]]을 확보하기도 하였으나 1115년 정월 [[완안아골타]] 아래 규합하여 [[금나라]]를 일구어낸 후 요를 갈아마시고 [[정강의 변|화북 지방까지 차지하였다]]. 그 뒤로는 [[고려]]도 [[이자겸]]의 주도하에 이들의 조공 체계에 편입되었다. 이후 잘 나가다가 '''[[몽골 제국|웬 인간병기들이 몰려와서]]'''... 이후 분열되어 [[조선]]과 [[명나라]]에 조공을 마치는 부족 세력으로 전락했다. == [[후금]], [[청나라]]를 거쳐 [[만주족]]으로 == 그런데 조선과 명 두 나라의 힘이 약해진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후금]]을 자칭하며 세력을 규합하였고 이후 [[청]]을 세워 [[만주]]로 종족의 이름을 바꾼다. 이후 중국 대륙의 내전을 틈타 [[명나라]] 잔존 세력을 몰아내고 [[중국]]의 지배세력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한족에 대한 개방 정책을 펴면서 서서히 고유 문화를 잃어갔고, 청이 멸망하고 만주에 대한 주도권도 많이 빼앗긴 현대에 와서는 종족([[만주족]])과 언어([[만주어]])의 존망을 논해야 할 단계에 처해 있다. 만주족 외에는 [[러시아]] 극동의 소수민족인 [[우데게족]](Удэгейцы)과 [[나나이족]](Нанайцы)이 이들의 후손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의 '발해여말갈'이란 다큐멘터리에선 나나이족 인물이 나와 발해와 말갈의 역사에 대해 떠들어 댔는데, 아무리 봐도 본인의 지식에 기반하여 내뱉은 소리로 보이지가 않는다... == 한국과의 관계 == [[삼국사기]]에는 [[원삼국시대]]에 일부 말갈이 [[함경도]]에서 더 나아가 [[강원도]] 지방에서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이 말갈은 흔히 말하는 [[퉁구스]] 계통의 말갈이 아니라 [[동예]] 같은 예맥계 세력(가짜말갈), 혹은 예맥계 말갈로 여겨진다. [[백제]] [[온조왕]] 때[* 초기 [[마한]]과의 갈등 과정에서 마한의 편을 들면서 맨날 당하는 역할로 [[구수왕]] 때까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고이왕]] 때부터 말갈은 백제에게 확고히 [[조공]]을 바치게 된다. 이후 말갈의 침략은 기록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때를 기점으로 백제의 확고한 우위가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신라]]도 [[혁거세거서간]]과 [[지마 이사금]], [[일성 이사금]] 때부터 [[내물 마립간]]까지 말갈의 침략 기록이 다수 나타나는데[* 단 혁거세 때의 기록은 흔히 후대의 윤색으로 본다. 국경이 접하지 않는 건 물론 국력이 넘사벽이었을 마한과도 상당히 대등한 관계고, 그 맥락에서 말갈도 등장하기 때문에.. 그래서 말갈의 신라 침략은 대략 신라가 동해안으로 진출하면서부터를 기점으로 본다. 좀 더 나중에 있었던 지마, 일성 때의 말갈 관련 밀고 밀리는 기록은 혁거세 때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사건이 설명돼있긴 하지만, 이 역시 신라의 확장이 [[고고학]]적으로 증명이 별로 안 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좀 더 나중에 있었던 일인데 이전 시대로 끌어올려졌다는 설도 있다.], 여기서 나오는 말갈은 [[동예]]일 확률이 높다. 이후에는 고구려의 남진과 더불어 함께 나타나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만주에 살던 말갈족을 고구려가 징병해서 남진에 동원했을 가능성도 있다. 비슷하게 예인(동예)을 [[백제]]와의 싸움에 동원하기도 했다([[독산성 전투]])] 심지어 [[의자왕]] 때도 여-제의 [[신라]] 공동 공격에 말갈이 가세했다는 기록도 있다. [[환빠]]들은 대륙삼국 뻘 드립을 치지만 실상은 세 나라의 국경장악력이 미치지 않는 산간지방에 (대체적으로 친고구려적인) 말갈 일부 부족의 세력이 온존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들은 [[고구려]]와 [[순망치한]] 이상의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고구려 멸망 후 이들 중 일부는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신라로 흘러들어가서, [[통일신라]]의 [[수도권]]을 방어하는 9서당 중 흑금서당은 말갈인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또한 고구려를 이은 [[발해]]도 고구려계 민족이 말갈을 지배하는 형태의 국가로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흑수말갈]]을 비롯한 일부 말갈 부족들은 복속과 이탈을 계속 반복한 것으로 보아 끝끝내 동화되지는 않은 듯하다. 대조영 계통이 말갈의 일파라는 설도 있는데 이는 [[구당서]]의 '[[고려]](고구려) 별종'에서 비롯된 것으로, [[발해]] 항목에 잘 씌어져 있으니 해당 부분 참고. 말갈-여진족의 후예로 일컬어지는 만주족은 현재 우리나라와는 서로 다른 민족이지만, 역사적으로 가까운 위치에서 깊은 관계를 맺고 지내왔다.[* 사실 여진족의 주류는 발해와는 관계가 없는 [[흑수말갈|흑수부 말갈]]이었다.] 물론 이건 [[금나라]]와 [[청나라]]를 한국사로 다루자는 [[병크]] 주장이나 [[여진족 신라인설]]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금나라의 건국자 아골타가 '발해여진본동일가'를 내세울 정도로 고대 정치, 사회적 입장을 볼 때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읍루) 사람들의 생김새는 부여 사람과 흡사하지만, 언어는 부여나 고구려와 같지 않다(其人形似夫餘, 言語不與夫餘·句麗同). '''[[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jo_004r_0010_0050_0010|삼국지 위서 동이전 읍루(挹婁)편]] ''' 한민족과 말갈 계통 민족의 차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부터 '[[언어]]가 다르다'고 말해 확실히 해두고 있다. 이외의 사서에도 고구려와 발해를 언급할 때 말갈이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지만, 계속해서 고구려, 발해의 주도층과는 다른 '말갈'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하는 것 또한 동일 민족설에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이다. 즉 [[요동]]과 만주 지역에서 끊임없이 '고구려', '발해'에 대한 계승 의식을 가진 국가들이 등장한 것은 이 지역을 확실히 장악했던 국가의 이름을 따온 명분 세우기이지, 민족의 정체성과는 별개 문제다. 굳이 따지자면 말갈족은 발해시기를 제외하고 금청시기에는 고구려 계승을 내세운 적이 없다. [[김함보]]가 [[고려]]에서 왔다는 기록을 고구려 계승 의지의 발현으로 볼수는 없는 노릇이며, 애초에 여진족이 만주에 정착했으면 모를까 중원으로 우루루 몰려간 상황인데다가 고려가 있는 판에 굳이 고구려 계승을 내세울 당위성이 떨어진다. [[분류:퉁구스]]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만주의 역사/고대 (원본 보기) 말갈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