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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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의 말갈)

靺鞨. 만주러시아 아무르 지방 일대에 거주했던, 계통상 현재 만주족으로 계보가 이어진다고 여겨지고 있는 종족.

어떤 사람들마자르어원이 말갈이라고 한다.[1]

1 말갈족의 발흥

흔히 유목민족으로 알려져 있으나, 반농반목에 수렵까지 했던 종족으로 보는게 옳다. 유목농민 이들이 거주하던 지역이 만주-아무르 지방에서도 삼림이 주를 이루는 지형인데다 강도 많고 주변에 적당한 농경지도 있어서 이것저것 생업으로 건드리는게 많았다. 강의 수계를 따라 이웃들을 털어먹고 괜찮은 평야에 터를 잡아 목축이나 농업을 하고.... 최첨단 하이브리드 멀티태스킹 스펙터클 아웃소싱 DIY 민족

읍루 - 숙신 - 물길로 이름이 바뀌어 가다가 잘 알려진 말갈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나, 유목 민족이 다들 그렇듯 그들의 혈통이 그대로 유지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고, 심지어는 말갈이 민족을 칭하는 것이 아닌 유목 민족 중 문화 역량이 떨어지던 이들의 비칭이라는 설까지 존재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발해 사신 일행 중 한 명이 자신이 발해인이 아니라 말갈인이라고 강조해서 사절단장과 마찰을 빚은 일화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이질적인 집단을 싸잡아 부르는 비칭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읍루-숙신-물길은 서로 친연성을 가진 종족인데 세력의 강약에 따라 이들을 대표하는 이름이 바뀌어왔다는 설이 가장 타당해보인다. 가령 읍루족이 잘나가면 읍루라 부르고 물길족이 대두하면 물길이라 부르고.... 여진이라는 이름도 이미 당-고구려 시기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발해를 거치며 말갈이 약화되고 망하자 여진이 주를 잡아 말갈→여진이 된것처럼 알려젔을 가능성도 무시할수 없다.

이들중 흑수말갈발해의 골칫덩어리였다. 당나라는 이들을 이용해 발해를 견제하고자 하였고 결국 대무예, 대문예 형제간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2 말갈에서 여진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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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의 초기 수도인 상경회령부 궁성 모형)
문이 부서진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이다.

발해의 멸망 후 여진족으로 명칭이 바뀌어서 거란에 복속한 숙(熟)여진과 그렇지 않은 생(生)여진으로 구분되어 죽어지냈다. 그러나 거란의 요나라는 요동과 만주 지역에 대해 완전한 지배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고, 11세기 후반 ~ 12세기 초 영가, 우야소 등의 추장이 등장하여 부족 국가를 통합해가면서 주변국과 긴장 구도를 이루었다. 이에 윤관척준경 등이 별무반을 중심으로 이들을 토벌하고 동북9성을 확보하기도 하였으나 1115년 정월 완안아골타 아래 규합하여 금나라를 일구어낸 후 요를 갈아마시고 화북 지방까지 차지하였다. 그 뒤로는 고려이자겸의 주도하에 이들의 조공 체계에 편입되었다. 이후 잘 나가다가 웬 인간병기들이 몰려와서...

이후 분열되어 조선명나라에 조공을 마치는 부족 세력으로 전락했다.

3 후금, 청나라를 거쳐 만주족으로

그런데 조선과 명 두 나라의 힘이 약해진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후금을 자칭하며 세력을 규합하였고 이후 을 세워 만주로 종족의 이름을 바꾼다. 이후 중국 대륙의 내전을 틈타 명나라 잔존 세력을 몰아내고 중국의 지배세력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한족에 대한 개방 정책을 펴면서 서서히 고유 문화를 잃어갔고, 청이 멸망하고 만주에 대한 주도권도 많이 빼앗긴 현대에 와서는 종족(만주족)과 언어(만주어)의 존망을 논해야 할 단계에 처해 있다.

만주족 외에는 러시아 극동의 소수민족인 우데게족(Удэгейцы)과 나나이족(Нанайцы)이 이들의 후손으로 여겨지고 있다. EBS의 '발해여말갈'이란 다큐멘터리에선 나나이족 인물이 나와 발해와 말갈의 역사에 대해 떠들어 댔는데, 아무리 봐도 본인의 지식에 기반하여 내뱉은 소리로 보이지가 않는다...

4 한국과의 관계

삼국사기에는 원삼국시대에 일부 말갈이 함경도에서 더 나아가 강원도 지방에서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이 말갈은 흔히 말하는 퉁구스 계통의 말갈이 아니라 동예 같은 예맥계 세력(가짜말갈), 혹은 예맥계 말갈로 여겨진다.

백제 온조왕[2], 신라혁거세거서간지마 이사금, 일성 이사금 때부터 내물 마립간까지 말갈의 침략 기록이 다수 나타나는데[3], 여기서 나오는 말갈은 동예일 확률이 높다. 이후에는 고구려의 남진과 더불어 함께 나타나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만주에 살던 말갈족을 고구려가 징병해서 남진에 동원했을 가능성도 있다. 비슷하게 예인(동예)을 백제와의 싸움에 동원하기도 했다(독산성 전투)] 심지어 의자왕 때도 여-제의 신라 공동 공격에 말갈이 가세했다는 기록도 있다. 환빠들은 대륙삼국 뻘 드립을 치지만 실상은 세 나라의 국경장악력이 미치지 않는 산간지방에 (대체적으로 친고구려적인) 말갈 일부 부족의 세력이 온존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들은 고구려순망치한 이상의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고구려 멸망 후 이들 중 일부는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신라로 흘러들어가서, 통일신라수도권을 방어하는 9서당 중 흑금서당은 말갈인으로 구성된 부대였다. 또한 고구려를 이은 발해도 고구려계 민족이 말갈을 지배하는 형태의 국가로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흑수말갈을 비롯한 일부 말갈 부족들은 복속과 이탈을 계속 반복한 것으로 보아 끝끝내 동화되지는 않은 듯하다. 대조영 계통이 말갈의 일파라는 설도 있는데 이는 구당서의 '고려(고구려) 별종'에서 비롯된 것으로, 발해 항목에 잘 씌어져 있으니 해당 부분 참고.

말갈-여진족의 후예로 일컬어지는 만주족은 현재 우리나라와는 서로 다른 민족이지만, 역사적으로 가까운 위치에서 깊은 관계를 맺고 지내왔다.[4] 물론 이건 금나라청나라를 한국사로 다루자는 병크 주장이나 여진족 신라인설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이다. 금나라의 건국자 아골타가 '발해여진본동일가'를 내세울 정도로 고대 정치, 사회적 입장을 볼 때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이야기이다.

(읍루) 사람들의 생김새는 부여 사람과 흡사하지만, 언어는 부여나 고구려와 같지 않다(其人形似夫餘, 言語不與夫餘·句麗同). 삼국지 위서 동이전 읍루(挹婁)편

한민족과 말갈 계통 민족의 차이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부터 '언어가 다르다'고 말해 확실히 해두고 있다. 이외의 사서에도 고구려와 발해를 언급할 때 말갈이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지만, 계속해서 고구려, 발해의 주도층과는 다른 '말갈'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하는 것 또한 동일 민족설에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이다.

요동과 만주 지역에서 끊임없이 '고구려', '발해'에 대한 계승 의식을 가진 국가들이 등장한 것은 이 지역을 확실히 장악했던 국가의 이름을 따온 명분 세우기이지, 민족의 정체성과는 별개 문제다. 굳이 따지자면 말갈족은 발해시기를 제외하고 금청시기에는 고구려 계승을 내세운 적이 없다. 김함보고려에서 왔다는 기록을 고구려 계승 의지의 발현으로 볼수는 없는 노릇이며, 애초에 여진족이 만주에 정착했으면 모를까 중원으로 우루루 몰려간 상황인데다가 고려가 있는 판에 굳이 고구려 계승을 내세울 당위성이 떨어진다.
  1. 실제 마자르(magyar)의 어원은 사람을 뜻하는 말 magy- 에다가 역시 사람을 뜻하는 접사 -ar가 붙은 것으로, 서시베리아에 거주하는 만시(Mansi)족의 이름과 같은 어원이라고 한다.
  2. 초기 마한과의 갈등 과정에서 마한의 편을 들면서 맨날 당하는 역할로 구수왕 때까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고이왕 때부터 말갈은 백제에게 확고히 조공을 바치게 된다. 이후 말갈의 침략은 기록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때를 기점으로 백제의 확고한 우위가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3. 단 혁거세 때의 기록은 흔히 후대의 윤색으로 본다. 국경이 접하지 않는 건 물론 국력이 넘사벽이었을 마한과도 상당히 대등한 관계고, 그 맥락에서 말갈도 등장하기 때문에.. 그래서 말갈의 신라 침략은 대략 신라가 동해안으로 진출하면서부터를 기점으로 본다. 좀 더 나중에 있었던 지마, 일성 때의 말갈 관련 밀고 밀리는 기록은 혁거세 때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사건이 설명돼있긴 하지만, 이 역시 신라의 확장이 고고학적으로 증명이 별로 안 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좀 더 나중에 있었던 일인데 이전 시대로 끌어올려졌다는 설도 있다.
  4. 사실 여진족의 주류는 발해와는 관계가 없는 흑수부 말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