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연관항목 : [[차벽]] [목차] [[파일:attachment/DSC_0017.jpg]] [youtube(Nbi7jFzrLgU)] 명박산성을 설치하고 있을 당시에 찍은 영상 == 개요 == 2008년 6월 10일에 [[대한민국]] [[서울]] 도심에 있었던 [[2008년 촛불집회|촛불집회]]를 막기 위해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한복판에서부터 시작하여 안국동, [[사직터널]] 등에서 [[청와대]]에 진입하는 도로를 모두 봉쇄한 [[경찰]]의 [[컨테이너]] 구조물을 일컫는 말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18&aid=0001985864|다음 날인 6월 11일에 철거되었다]]. 당시 [[이명박]]은 '''컴도저'''[* 컴퓨터+불도저]를 자칭 하며 독불장군 식으로 밀어 붙이는 정치로 불통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으며, 이런 소통 부족으로 인하여 나온 결과가 [[2008년 촛불집회]]였다. 집회가 일주일경 지속되면서 시위대로부터 '''대화, 소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와중에 설치된 것이 저 와이어로 고정된 컨테이너 박스였다. 이명박 정권은 언제라도 철거 및 재배치가 가능한 차벽과는 달리 공공시설인 광장에 신속한 철거가 불가능한 고정구조물을 설치해 놨다는 점에서 산성이라고 비꼼을 당하였다. === 설치 === 2008년 6월 10일, 서울 시내에서의 전례 없는 대규모 시위에 대비하기 위해 당시 경찰청장인 [[어청수]]가 세종로에 설치하였다. 새벽에 구축을 시작해 당일 오후에 완공되었으며 대략 세종로의 [[이탈리아]] 음식접 '자콥' 에서 시작하여 세종로를 횡단, 정보통신부 건물까지 일직선으로 뻗어있었다. 용접된 다수의 컨테이너가 2층 구조로 세종로의 중심을 막았으며 양익을 다중의 경찰 [[버스]]로 보완한 구조. 그 내부에는 '''모래주머니'''를 가득 채워 넣었으며 길바닥에 [[와이어]]로 고정시켰다. 컨테이너 표면은 시위대가 기어오르거나 무너뜨리는 것을 막기 위한 '''[[윤활유]]'''가 칠해졌다. 또한 뒤에는 [[소화기]]가 대량 배치되었고 이어 대규모의 [[전경]] 부대가 배치되었다. [youtube(R9LuU6FqiCs)] 당시 명박산성 전경을 찍은 영상 === 문제점 === 물론 도로를 통째로 막아버렸기 때문에 많은 시민들의 출근길을 방해했다. 사실 어차피 그 전부터 세종로 일대는 시위대가 초저녁부터 다음날 아침 출근시간까지 계속 점거하고 있었기에 한낮을 제외하면 도로로서의 실제 기능이 마비된 상태였다. 그러나 산성(...)의 경우 이른 아침부터 설치하는 바람에 하루 온종일 도로를 마비시켰다는 데서 좀 더 문제가 컸다. 한때 [[태극기]]가 걸려있기도 했으나 윤활유에 더러워져버려 태극기는 설치 2시간만에 철거되었다.[* 이것 때문에 시위대에서는 한때 경찰을 '''[[국기에 관한 죄|국기·국장모독죄]]'''로 [[고발]]하자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물론 이 법률은 고의로 국기를 오욕한 자일 경우에만 해당하니 가능성은 없는 얘기지만 갈색 윤활유에 떡이 되어 현장에 방치되었던 대형 태극기를 보고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도대체 어느 경찰 간부의 아이디어였는지...~~] "컨테이너 박스를 당기면 위험합니다" 라는 플래카드와 "경☆ 08년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 ☆축" 이라고 써있는 플래카드가 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 전례 == [[바리케이드]] 설치는 한국의 전통적인 전술이었다. 이러한 전술은 [[4.19 혁명]] 때 소방차, 경찰차, 시내버스를 동원하여 실시된 바 있으며[* 동아일보 4월 19일 3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0041900209103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60-04-19&officeId=00020&pageNo=3&printNo=11701&publishType=00010|참고]]], [[http://news.donga.com/3/all/20130426/54713638/1|박정희 정권 중 6.3항쟁 당시]] [[http://www.ohmynews.com/down/images/1/newmoon_93188_1[15].jpg|김대중 정권인 2002년 12월,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에 대하여 미대사관으로 향하는 시위대를 세종로에서 저지할 당시]], [[http://www.ohmynews.com/down/images/1/cycop_93540_1[4].jpg|노무현 집권 7일차인 2003년 2월 31일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 시위 당시 주한미국대사관 앞 세종로]] 등에서 시위대 진로 차단, 특정 대상 보호, 물리력 충돌 최소화 등과 같은 목적으로 실시되어 왔다. === 컨테이너 차단막의 시초 === 이런 [[컨테이너]] 박스 설치는 노무현 정권에서 이미 실행된 바가 있다[* 특히 2006년 [[포항]]에서는 컨테이너 바리케이드에 맞서서 건설 노동자들이 중장비를 휘두르며 해체를 시도,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때의 사건을 바탕으로 컨테이너 바리케이드의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전술이 많이 발전하였다.] 일부에서는 이걸 이유로 명박산성에 대한 반발로 '''무현산성'''이라는 용어가 나타났고, 이 과정에서 버스를 비롯한 저지선 일체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고 한다. 이에 일각에서는 중립적인 명칭으로서, 최초로 아이디어를 고안한 사람이 어청수였으므로, '''청수산성'''이라 부르자고도 했으나 널리 퍼지지는 않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http://upload.inven.co.kr/upload/2011/05/18/bbs/i23939466.jpg]] [[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han_259283_1[387364].jpg]] '''2005년''' APEC 정상회담 당시 부산 BEXCO앞 시위장면 본래 과격[[시위]]대에 대한 [[컨테이너]] 방어전술이 처음 도입된 것은 참여정부 시기 2005년 11월의 일로 이후 경찰청장이 된 당시의 [[부산경찰청]]장 어청수가 [[APEC]] 정상회의장에 돌격하려던 2만여 명의 과격시위대에 대하여 '''[[컨테이너]] [[바리케이드]]'''로 이를 방어하여 효율성이 입증된 바 있다. [[파일:attachment/200512505418.jpg]] 다만 이 당시에는 단순하게 컨테이너의 보강 작업 없이 순수하게 컨테이너만을 설치하였다. 그래서 시위대가 컨테이너를 끌어내자 속절없이 무너지고, 컨테이너 박스 위에 있던 경찰이 시위대 위로 떨어졌다. 떨어진 전경들은 그대로 집단구타를 당했다고... == 철거, 그 이후 == 윤활유가 칠해져 있는 것을 보고 일부에서는 "프락치가 의도적으로 방화하게 하여 사건을 크게 만들려는 계략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시위 도중에 스티로폼으로 계단을 쌓아 넘어가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의지의 표현만 있었을 뿐 정말로 넘어가지는 않았다. 이후 스티로폼은 시민의 자유발언을 위한 연단으로 바뀌었다가 깃발과 플래카드(및 이것들을 든 이들)만 올려보내 퍼포먼스를 취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스티로폼도 "프락치가 폭력시위를 유발하기 위해 가져다 놓은 것이다"라는 주장이 상당히 크게 돌았으나 실제로 그 스티로폼을 가져온 사람은 실제로는 촛불시위 열렬 참가자였었고 뒤늦게 본인의 행동이 프락치의 소행이라고 욕 먹고 있는 것을 알고 "내가 알바고 프락치냐"라며 분개하는 글을 올려서 프락치설 주장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버로우 타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명박산성은 건설 하루 뒤인 6월 11일에 철거되었다. 행정부에 의한 독단적인 행정([[쇠고기]] 수입 협상) 진행, 이를 저지하거나 공론화하지 못한 입법부([[국회]])의 무능함, 더 나아가 과장된 광우병 괴담 등으로 불만을 품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 ㅡ 명박산성은 이런 [[2008년 촛불집회]]의 본질을 상징하는 '''매우 부정적인 상징물'''이 되었다. 물론 시위대와 전경의 충돌을 물리적으로 막아 폭력시위로 비화되는 것을 막았고 날마다 철야하던 전경들도 눈 좀 붙일 수 있었으니 100% 완전한 뻘짓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면도 있지만. 02년 전후만 하더라도 차벽만 설치해 줘도 전경들은 쉴수 있다고 굉장히 좋아 했다. 그런데 그 차벽도 결국 시위대가 무너뜨리고 컨테이너박스도 나중에 가만 결국 무너지고.... 결국 2009년에는 [[광화문]]에 [[광화문광장|공원]]이 생겼다. 여의도 광장이 여의도 공원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시위대의 대화 요구에 '컨테이너 박스=소통 거부'로 대답한 격이 되면서 이에 비꼬는 의미로 '명박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는 평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명박산성이 산에 있지 아니하다고 해 '명박평성' 이나 '이명박성', 또는 '명박요새', '명박철보', '명박읍성'(...) 이라고 부르자는 말도 있었다. == 위헌성 == [[차벽]] 문서 참조. == 대중 매체 등장 == [[이말년씨리즈]] '[[불타는 버스]]' 에 등장. 불타는 버스는 그대로 들이받아서 폭발엔딩을 맞이했다. [[야후]] 연재분에서는 'XX산성' 으로 [[검열삭제]]되었다.[* 참고로 해당 화는 위헌 판결 이전에 그려진 만화다.] 2014년 [[이터널시티3]] 티저 영상에도 비슷한 컨테이너 성벽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악당들의 성(...)이 아닌 생존자들이 좀비를 차단하는 방어선으로 등장. ~~명박산성 탄생 이래 최초의 선역~~ 사진의 --경☆ 08년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 ☆축-- 플랜카드는 서울 자치 지구라는 뭔가 있어보이는 단어로 바뀌었다. [[부산행]] 마지막 부분에서 낙동강 주변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군인들의 엄호 아래 좀비 ~~그리고 고라니~~ 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 컨테이너로 차단벽을 쌓고있다. 부산지역에 컨테이너가 잔뜩 있을테니 현명한 선택인듯.[* [[부산항]]과 부산신항에서 컨테이너를 공출해 온 걸로 추정된다. ] [[분류:이명박 정부]] 명박산성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