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분류:송나라/인물]] [include(틀:송말삼걸)] http://www.renminbao.com/rmb/article_images/2003-6-25-030625wentianxiang.jpg 文天祥 (1236 ~ 1282) >13세기 몽고기병이 폭풍처럼 유라시아를 석권할 당시, 그들은 오직 남송에서만 가장 격렬하고 지속적인 저항을 받았다. 1235년 원나라 군대가 처음 송을 공격했을 때 부터, 1279년 광동 [[애산 전투|애산]]에서 남송 최후의 승상 [[육수부]]가 어린 황제를 등에 업고 바다에 뛰어내릴 때 까지, [[남송]]은 장장 40여년간 전쟁을 벌여 [[몽케 칸]] 또한 합주 조어성에서 전사하였다. 장원급제 출신 재상 [[문천상]]을 중심으로 한 [[사대부]]들이 최후의 궁지에서도 혈전을 벌이며 송 황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일은, 조송(趙宋)의 제실(帝室)이 300년간 사대부를 우대한 것에 대한 최선의 보답이었으며, 송대 문관정치가 거둔 유종의 미 그 자체였다. >-진정(金諍), 중국 과거 문화사 中- 중국 [[남송]]의 정치가 겸 장군. [[남송]] 최후의 [[승상]]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장세걸]], [[육수부]]와 더불어 남송 3충신의 일원이다. 자는 송서(宋瑞) 또는 이선(履善), 호는 문산(文山). 강소성 길주현 노릉 출신. 1258년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했는데, 이때 시험관이 당시 황제인 이종에게 각별한 인재를 얻은 것을 경하했다고 한다. 당시 [[금]]을 멸망시키고 하북을 아우른 [[몽골]] 제국이 남진을 준비하던 상황이라, 바야흐로 남송은 위기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1259년 [[몽케]]가 직접 이끄는 몽골군이 사천을 침공해 합주가 포위되자 조정에서는 천도를 결정했으나, 이에 강경하게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그날로 면직되었다. 그후 복직했으나 재상 [[가사도]]와 견해가 맞지 않아 다시 물러났다. 강화에만 골몰하며 몽골과 남송 조정 양측을 기만하려던 가사도가 [[쿠빌라이 칸]]의 군대에게 패하고 피살당한 뒤, 몽골군이 맹공을 가해오자 의병을 모아 싸우다가 복직되어 1276년 우승상 겸 추밀사에 올랐다. 수도 임안으로 육박해 오던 몽골군과 교섭하려고 총대장 [[바얀]]과 회견했지만, 문천상의 당당한 기개와 기량에 놀란 바얀에 의해 그 자리에서 억류당했다. 문천상이 잡혀 있는 동안 임안이 함락당해 남송은 멸망을 맞았고, 북으로 끌려가던 중 탈출해 복주에서 장세걸, 육수부와 함께 도종의 맏아들 단종을 받들고 저항을 계속한다. 그러나 1278년 오파령 전투에서 패해 장홍범에게 붙잡혀 그 길로 대도([[북경]])에 압송되었다. 그리고 장세걸과 육수부는 애산으로 도주하던 중 사망한 단종을 대신하여 소제를 왕으로 옹립하고 저항을 계속하나 애산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이때 원나라 군대에 포로로 잡힌 문천상이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는데 과연 그 심정이 어땠을지... 그때부터 처형당할 때까지 옥에 갇혀 지냈는데, 애산 전투에서 흩어진 남송의 잔병들에게 투항을 권고하는 글을 쓰라고 권유받았으나 과령정양(過零丁洋)이라는 시를 지어 이를 거절했다. 남송이 완전히 망한 뒤로도 쿠빌라이는 그 재능을 아깝게 여겨 마음을 돌려 보도록 계속 설득했는데, 이때 정기가(正氣歌)를 지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망국을 향한 자신의 충절이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강하게 피력했다. 정기가는 진짜 [[간지폭풍]]이 휘몰아치는 명문으로 심지어는 '''[[제갈량]]의 [[출사표]]'''에 비견되기도 할 정도이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literature&no=2649|정기가]][* 여담이지만 정기가에 '위엄장군두' 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 엄장군이 '''[[엄안]]'''이다. 장비가 엄안을 생포하고 항복을 요구하자 '촉에 단두장군(목 잘리는 장군)은 있어도 항장은 없다' 며 거절했던 일화를 인용한 것. ~~그 엄장군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 항복했건만~~] 거의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쿠빌라이는 처형을 주저하며 시일을 끌었고, 신료들도 문천상에게 호의적인 여론이었으나 문천상이 살아있어 남송의 잔병들이 소요를 그치지 않는 것이 밝혀지자 어쩔 수 없이 처형하기로 중론을 모았다. 투옥 5년여만인 1282년 남쪽을 바라보고 참형되니 향년 47세로, 처형 후에도 쿠빌라이는 '그야말로 진정한 사내 대장부였다' 라며 애석해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처형 당할 때 형리를 둘러보며 "내 할 일은 이제 다 끝났다" 라고 말했는데, 이 문구는 吾事畢矣 (오사필의) 라 하여 사자성어로 남아있다. [* 송사 문천상기에 나오는 내용이라는 말도 있다.] 오늘날 [[악비]]와 더불어 충절의 표상으로 숭앙받고 있으며, 남송 정권에게 있어 그 양끝에 있었던 이 둘은 남송에게는 실로 과분한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소수민족에 대한 동화정책을 추진하는 현 중국 정부 노선의로 평가에 혼란이 초래되고 있다는 점마저 악비와 비슷하다. 용모가 준수했으며, 집에 많은 처첩과 악사들을 거느렸고 멱을 감으며 [[장기]]를 두는 취미를 가졌을만큼 불굴의 충신이라는 이미지와 언뜻 안 어울려 보이는 호화현란한 사생활을 즐겼다고 전한다. 또한 임안으로 몽골군이 육박한 와중에도 친구들과 뼈있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는데 이로 미루어 보면 실속 없는 엄숙주의를 배격하면서도 공사구분이 대단히 명확한 인물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코에이]]의 [[징기스칸 시리즈]]에서도 남송측의 핵심 장수로 등장하며, 징기스칸 4같은 경우 몽골측이 남송을 멸망시키면 쿠빌라이와 바얀의 능력치가 전부 +5되어 엄청난 [[먼치킨]]으로 거듭나지만 반대로 남송에서 대도를 빼앗으면 문천상의 모든 능력치가 +5씩 올라가게 된다. (이 때문인지 시나리오 2에서는 정치력 100인 인물이 없고, 가장 정치력이 높은 문천상의 정치력이 '''94'''다.) 덧붙여 시나리오 시작부터 충성도가 100인 유일한 인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송말삼걸 (원본 보기) 문천상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