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야구 관련 인물(KBO)]] http://www.koreadaily.com/_data/article_img/2012/07/12/183636428.jpg?width=360 || 이름 || 문희수(文熙秀 / Moon-hei Soo) || || 생년월일 || [[1965년]] [[3월 15일]] || || 출신지 || [[광주광역시]] || || 출신학교 || 광주서석초-광주충장중-[[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일고]]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1984년 [[해태 타이거즈]] 1차 지명 || || 소속팀 || [[해태 타이거즈]](1984~1995) || || 지도자 경력 || [[해태 타이거즈]] 투수코치(1998~2001) [br] [[동강대학교]] 감독(2004~2015) [br] [[고창영선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16~) || |||||||||||| '''[[1988년 한국시리즈]] [[MVP]]''' || || [[김준환]] ([[해태 타이거즈]]) || → || '''문희수([[해태 타이거즈]])''' || → || [[박철우(야구)|박철우]] ([[해태 타이거즈]]) || ||||||||||||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16번(1990~1995)''' || || 이상윤(1982~1989) || → || '''문희수(1990~1995)''' || → || [[김종국(야구선수)|김종국]](1996~2010) || [목차] == 소개 == 前 [[해태 타이거즈]]의 야구선수이자 前 동강대학 야구부 감독. 현역시절 별명은 '''무등산 꽃돼지.''' 광주일고 3학년생이었던 1983년, 방어율 제로와 3할대 중반 타율을 기록하면서 광주일고의 시즌 3관왕[* 대통령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을 이끌었던 투타 만능의 에이스였고, [[1984년]]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아 프로에 뛰어들었다. 그 때까지 2차례 있었던 신인지명에서 고3 선수가 단 1명도 호명되지 못했고[* 따라서 이 때 지명된 문희수 외에 고졸 출신인 [[정성룡(야구선수)|정성룡]](삼성), [[조용철]](롯데) 등 3명은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고졸 신인'''이었다.], 이후 해태의 역사에서도 고졸이 1차 지명을 받은 경우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 점을 생각하면 그가 야구 게임 유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허접한 투수가 결코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으로 원래는 후보선수 두 명과 함께 [[동국대학교]]에 진학하기로 약속이 되었는데, 문희수가 프로로 돌아서는 바람에 친구 두 명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고, 이 때문에 학부모들의 원성을 들은 광주일고 김대권 감독은 사표를 썼다고 한다.(...) == 선수 시절 == 프로에서의 성적은 입단 당시의 기대보다 좋지 못했다. 10승 이상을 거둔 시즌은 [[1985년]], [[1992년]] 두 번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1992년]]은 5점대 방어율에 145이닝을 던지는데 그친, 다분히 운이 따른 10승이었다.(…)], [[1989년]]부터는 무릎 부상과 급속한 체중 증가로 인해 재활병동에서 반년을 보내다가 가을에 잠깐 얼굴을 보이는 악순환을 거듭했다. 그래도 [[KBO 한국시리즈]]에서는 가을까치 [[김정수(1962)|김정수]]와 함께 필살의 히든카드로 활약하면서 [[1988년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쥐었고, [[199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삼성의 에이스 [[박충식]]과의 투수전에서 대등하게 맞서는 등 인상깊은 모습을 많이 남겼다. 다만 1993년의 경우는 3회에 강판되고 선동열 VS 박충식 구도가 성립됐다. '3차전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이것은 그가 1987, 1988, 1989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연달아 승리투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그것을 믿고 [[김응용]] 감독이 페넌트레이스에서 부진했던 문희수를 선발로 넣었지만 [[박충식|결과는..]] 참고로 '''한국 시리즈 방어율이 0.68 이라고 한다.''' [[ㅎㄷㄷ]] KBO 리그 통산 12시즌 '''241경기 943.1이닝 59승 49패 13세이브 17완투 5완봉 평균자책점 3.69'''를 기록하였다. == 은퇴 후 == [[1995년]] 은퇴한 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해태와 그 후신 KIA의 투수코치를 맡았다가 [[2004년]]부터 동강대학의 야구부의 감독을 맡고 있다. 동강대 야구부는 통산 8년 동안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2013년 드래프트에서 KIA 타이거즈에 7라운드 지명으로 [[박준표]]가 지명되기 전까지 단 한 명도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을 정도로 약팀이지만[* [[2011년]]까지 고율, 차정구, 전준호 등 3명이 신고선수로 프로에 입단했다.(그 중 차정구 현 KBO 심판은 [[차영화]] 코치의 아들이다.) 2011년 삼성에 입단한 [[이경록]]도 이후 대불대(현 세한대)에 편입했지만 원래 동강대에 입학했었다. 여담으로 이 4명 다 입단한 팀이 삼성.], 그래도 계속 감독직을 맡는 것을 보면 학교재단 측이나 학부모들의 신뢰가 상당한 것 같다. ~~동강대가 2년제 대학이라 신경을 안 쓰는 걸지도..~~ 2015년을 끝으로 동강대학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후임 동강대 감독은 [[홍현우]]. 이후 새로 창단한 [[고창영선고등학교 야구부]]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2016년 [[고창영선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승진하였다. == 여담 == 운동선수로는 보기 드문 [[진보신당]] 당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진보신당 당원들은 당원 체육대회에서 야구를 하면 ~~선출~~ ~~[[사기 캐릭터]]~~ 문희수가 속한 광주시당에게 질게 뻔하니 당원 체육대회에서 야구 종목을 빼자고 한다. == 가족 == 그의 아들 문지훈은 광주일고 야구부에서 투수로 활동했으며, 2014년 [[두산 베어스]]의 2차 10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 [[분류:광주광역시 출신 인물]] [[분류:1965년 출생]] [[분류:우완 투수]] [[분류:우투우타]] [[분류:해태 타이거즈]] 문희수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