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문서 : [[대한민국/정당]], [[민주당계 정당]]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 '''[[민주당계 정당|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 || ||<width=30%><:> [[민주당(1990년)]]/[[신민주연합당]] ||<:> {{{+1 →}}} ||<width=30%><:> '''[[민주당(1991년)]]''' || {{{+1 →}}} ||<width=30%><:> [[새정치국민회의]][br][[통합민주당(1995년)]] || [목차] == 개요 == http://dimg.donga.com/wps/NEWS/IMAGE/2015/04/03/70521423.1.jpg 민주당(1991년)의 당로고를 확인할 수 있는 사진.[* 왼쪽부터 [[이종찬(1936)]], [[이기택]], [[김근태]]. 1995년 입당한 김근태가 있는 걸로 봐서 1995년 전당대회 사진으로 보인다. 2016년 기준으로 이종찬을 빼면 전부 고인이 되셨다.] 1991년 9월 16일 창당되어 1995년 12월 21일까지 존속한 한국의 정당. 제14대 국회 기간 동안 사실상 유일한 야당이었다. [[민주당계 정당]]의 역사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어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현 민주당계 정당의 직접적 전신'''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정당 중 하나이다. 민주당계의 양대 계파인 동교동계와 친노계가 결합했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이 크다. == 본문 == http://monthly.chosun.com/upload/0703/0703_358_10.jpg 1990년 [[3당 합당]]에 따라가지 않은 채 반년의 반항을 거친 [[민주당(1990년)|꼬마민주당]]은 [[노무현]] 등 몇몇 스타 정치인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조직력의 현저한 약세를 절감하고 있었고, 3당 합당으로 졸지에 소수야당이 된 [[평화민주당]]은 재야 인사들을 영입하여 [[신민당#s-5|신민주연합당]]으로 개편하였으나 지방선거에서 패배해버렸고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에 맞서기 위해서는 야권 통합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에 두 당이 합당을 추진하여 1991년 9월 16일 민주당이란 이름으로 창당된다. 그러나 꼬마민주당의 [[박찬종]], [[김광일]] 의원과 [[고영구]] 부총재는 여기에 동참하지 않았다.[* 박찬종은 [[신정치개혁당]]을 만들었고, [[김광일]]은 [[통일국민당]]에 입당하지만 14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대선을 앞두고 [[정주영]]의 당 운영을 비판하면서 탈당하여 김영삼 정부의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다. 고영구 부총재는 정계와 거리를 두고 본업인 변호사로 복귀했다가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장을 맡았다.] 당시 신민당과 꼬마민주당의 당세는 거의 10:1에 가까웠으나, 당명을 민주당으로 하고, [[김대중]]과 [[이기택]]이 공동대표를 맡으며, 대의원 구성도 1:1로 하는 등 신민당 측이 많은 양보를 하였다. 여담으로 당시 [[영국]]의 외신은 1990년 창당된 민주당이 없어지고 1991년 민주당이 창당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다가 방송사고를 내는 바람에 그냥 자막으로 1990과 1991을 붙여서 보냈다고 한다. --그러니 헷갈리게 같은 이름으로 창당 반복하지 말자.-- 다음해인 1992년 3월 24일 치러진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 해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이 자신과 거리를 두던 신민주연합당 내 정치발전연구회 소속 정치인 중 일부를 공천탈락시켜 논란이 되었다. [[노승환]]은 이에 반발하여 탈당하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에서 97석을 차지하며 선전하였으나, [[부산광역시|부산직할시]]에서 출마한 [[노무현]], [[김정길(1945)|김정길]] 등은 전원 낙선하는 등[* 부산 [[해운대구]]가 지역구였던 이기택은 전국구로 옮겨 낙선을 면했다. 다른 꼬마민주당 출신 의원 중에는 [[장석화]](서울 영등포갑)만 살아남았고 1990년 진천-음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던 허탁도 낙선했다.] 지역구도의 벽을 뚫지 못했다.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을 후보로 내세웠으나 막판 [[우리가 남이가|초원복집 사건]]으로 지역감정이 유발되고 민자당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김영삼]]에게 190만 표 차로 패배하고 만다. 낙선한 김대중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고, 그 후로는 이기택이 단독 대표로 당을 이끌었다.[* 다만, 당내 다수파는 동교동계였으므로 이기택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이후 [[통일국민당]]이 군소 정당으로 전락하면서 사실상 유일한 야당이 되어 민자당과 맞섰다. 1995년 3월 7일, [[새한국당]][*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존재했던 정당으로 전형적인 보수정당이었다.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에 맞서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민자당을 탈당한 [[이종찬(1936)|이종찬]]이 [[김현욱(정치인)|김현욱]], [[이영일]], [[장경우]] 등과 함께 1992년 10월 창당했다. 주로 민주자유당 내 민정계([[민주정의당]])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름이 어떤 당~~[[신한국당]]~~과 비슷하다.]을 흡수하여 당세를 확장하고,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나선다. [[조순(1928)|조순]] [[서울특별시장]]을 당선시키는 등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을 앞섰으나, 이기택이 동교동계와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공천한 [[장경우]] [[경기도]]지사 후보가[* 동교동계가 밀었던 인물은 이종찬이었다. 그런데 내면을 보면 둘 다 민정계의 새한국당 출신이라는 점에서 도긴개긴이었다.(...) --도대체 왜 충돌한 거야?--] 민주자유당 --피닉제--[[이인제]] 후보에게 패하면서 이기택과 동교동계의 불화가 심화되는 결과를 낳고 만다. 그리고 결국 김대중이 정계에 복귀하여 1995년 9월 5일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자, 동교동계 인사들이 집단 탈당하면서 제2야당으로 전락한다. 다시 소수가 된 이기택, 노무현 등 잔류 인사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운동 계열 인사들과 합작을 모색하지만, 결국 1995년 12월 21일 개혁신당과 통합, [[통합민주당(1995년)]]으로 개편하여 소멸되었다. 이후의 역사는 [[통합민주당(1995년)]] 항목 참조. == 역대 선거결과 == *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 97/299 29.8% *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김대중 33.8% 낙선 *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자치단체]]장 4/16 * [[기초자치단체]]장 84/230 * 광역의원([[지방의원]]) 352/875 * 득표율 32.7% == 관련 항목 == * [[대한민국/정치]] * [[국회]] * [[국회의원]] * [[대한민국/정당/목록]] * [[정당]] * [[정치인]] [[분류:대한민국의 정당]] 민주당(1991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