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include(틀:여행금지)] [*1 한국에서는 이라크 전역이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되다보니 바스라 역시 여행금지구역이다. 물론 이라크 남부는 북쪽에 비하면 그나마 치안이 안전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나마 나을 뿐, 여기에도 테러의 위험이 있고, 한국에서는 여행금지로 지정된 만큼 갈 수 없기도 하다. 철수권고(옛 여행제한)와는 달리 여행금지는 불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3/34/Basra_location.PNG http://gckuwait.com/images/stories/projects/Planning/City-of-Basra//Gulf%20Consult%20-%20City%20of%20Basra%20Master%20Plan%2002.jpg البصرة, Basra [[쿠웨이트]]와 [[이란]] 근처의, 남부 [[이라크]]에 있는 이라크 제 2의 도시다. 2009년 기준으로 약 200만명의 인구가 있다. 바스라는 이라크의 주요 항구로서 특히 [[석유]] 관련 운송에 중요 역할을 한다. 다만 심해로의 접근은 불가능하여, 그 경우는 움 카스르 항구에서 처리한다. 지리적으로는 [[페르시아 만]]에서 55km 떨어져 있고 샤트 알 아랍 수로에 접해 있다. 이 지역은 과거 [[수메르]] 문명이 위치했던 곳이며 [[에덴동산]]의 위치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초기 [[이슬람]]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이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4/4d/Alibinabitaleb.JPG/600px-Alibinabitaleb.JPG 항구 도시면서도 특이하게도 운하 도시다. 샤트 알 아랍 수로에 접해 있기 때문인데, 이리저리 연결된 [[운하]]가 도시를 관통하므로 [[중동]]의 [[베니스]]라 불리기도 한다. 이 운하들은 20년 전까지는 실제 운송에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강물의 수량이 부족해져서 운하 운송은 불가능하다. 이라크는 세계 4위의 [[원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인데, 대부분이 바스라 근처에 묻혀있다. 바스라 지역의 [[유전]] 예상 지역의 80%는 탐사조차 안된 상태. 따라서 인근에 유정이 많다. 그리고 [[사막]]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의외로 풍요로운 경작 지대라서 주로 [[쌀]], [[옥수수]], [[귀리]], [[밀(식물)|밀]]이 산출되고 있으며 가축 또한 산출되고 있다. 고품질의 [[대추야자]]로도 유명하다. 바스라는 636년에 아랍족의 군사 주둔지 및 경비 초소로 건설되었다. [[페르시아 만]]에 가깝고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및 동쪽의 국경에 접근이 쉬워서 점차 주요한 도시로 성장했다. 바스라는 8세기 및 9세기까지 문화의 중심이었고, 종교와 문예가 발달하였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신밧드]]가 바로 바스라 출신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의 무역상들이 들어와 국제적 도시가 되었고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에 의해 점령당했다. 뒤이은 영국의 위임통치 기간 동안 바스라는 더욱 성장하였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와 가까운 데다가 주요 항구이다 보니 근대 및 현대에도 이래저래 전쟁이나 혁명에 휩쓸린 이력이 있다. 근현대에서의 바스라와 관련된 주요 역사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 [[제1차 세계대전]] [[영국]]과 [[오스만 제국]] 간에 바스라 전투가 있었다.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이 바스라를 점령하였다. * [[제2차 세계대전]] [[러시아]]로의 보급물자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중요한 항구 역할을 했다. * [[이란-이라크 전쟁]] 심심하면 [[이란]]의 포격을 받았고, "라마단 작전"이나 "카르발라 5 작전" 같은 여러 격렬한 전투의 전장이 되었다. * [[걸프전]](1991) 제 2의 도시이므로 당연히 전쟁에 휘말렸고 수많은 유정과 시가지가 파괴되었다. 걸프전 중에 일어난 [[전투]] 중, [[쿠르스크 전투]] 이후 최대의 전차전이라 불리는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Medina_Ridge|메디나 다리 전투(Battle of Medina Ridge)]]"의 무대가 바스라 근처이다. 걸프전이 끝난 후에는 바스라가 사담 후세인에 반대하는 저항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이 저항은 폭압적으로 진압되었다. 1999년에 다시 한번 저항 운동이 일어났지만 이 역시 대량 처형 등을 통해 진압되었다. * [[이라크 전쟁]](2003) 바스라 외곽이 초기 이라크 전의 격전지가 되었다. * 바스라 전투(2008) 반미 무장단체인 메흐디 민병대를 바스라로부터 몰아내기 위해 이라크군이 대규모 공세를 펼쳤다. 6일간에 걸친 전투에서 1,000명의 사상자가 났다. 중동에 있다보니 당연히 날씨가 매우 덥다.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는 사막기후(BWh)에 속한다. 그나마 해안에 접해있기 때문에 내륙의 도시보다는 [[강수량]]이 약간 많은 편. 8월의 최고 기온 평균은 41 °C, 최고 기온의 기록은 52°C. 이 경우 체온보다 높은 기온이기 때문에 [[선풍기]]를 쐬면 더 덥다. 한겨울인 1월달의 최저 기온 평균은 7 °C, 낮 기온은 18°C 정도로서 서울의 4월 기온과 비슷하다. 1921년 7월 8일에 58.8°C를 기록,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의 기온으로 최고기록. ~~[[오이먀콘]]과 무려 129°C 차이가 난다~~ 이라크가 다 그렇듯이, 이 도시도 주로 [[석유]]로 먹고 산다. 이라크의 가장 큰 유전 중 몇개가 이 근처에 있고 대부분의 석유 수출분이 도시의 알 바스라 석유 터미널에서 출항한다. 직접적인 원유 산업뿐만 아니라 관련 석유 화학 산업도 있어서 [[폴리에틸렌]]이나 [[PVC]] 같은 석유 화학 제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운송 및 물류 산업도 발달했다. 바스라는 이라크의 6개 항구 모두에 대한 근거지인데, 이들 항구 중 움 카스르(Umm Qasr)가 가장 크다. 다행히도 이곳은 아직 [[ISIL]]에게 점령당하지 않았다. 이라크 가장 남쪽에 위치한 최[[후방]]이기 때문. 오래된 오덕들에게는 [[대항해시대]]로 꽤나 잘 알려진 도시일 것이다. [[분류:이라크]]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여행금지 (원본 보기) 바스라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