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야구 관련 인물(KBO)]] [[파일:/image/009/2012/05/06/0090002709220_0.jpg]] 롯데 코치 시절 ~~[[까야 제맛|과자는 빨아먹어야 제맛]] 가만 저거 롯데 과자 아닌데~~ || 이름 || 박계원(朴啓源 / Gye-won Park) || || 생년월일 || 1970년 2월 4일 || || 출신지 || [[부산광역시]] [[남구(부산)|남구]] || || 학력 || 대연초-부산중-[[부산고등학교 야구부|부산고]]-[[고려대학교|고려대]] || || 포지션 || 내야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1992년 2차지명 2라운드(전체 14번) || || 소속팀 || [[롯데 자이언츠]](1992~1998) [br] [[쌍방울 레이더스]](1998~1999) [br] [[해태 타이거즈]](1999~2000) [br] [[SK 와이번스]](2000~2002) || ||<:><-5><#151B54> https://67.media.tumblr.com/e62f6b4330569f866d5e4dafbfce35a0/tumblr_odywc2m8WK1sqk8veo4_r1_540.png?width=150 [br] '''[[한국프로야구/1992년|{{{#ffffff 1992년}}}]] [[KBO 리그|{{{#ffffff 한국프로야구}}}]] [[유격수|{{{#ffffff 유격수}}}]] [[KBO 골든글러브|{{{#B8860B 골든글러브}}}]] [[KBO 리그 골든글러브 역대 수상자|{{{#ffffff 수상자}}}]]''' || || [[류중일]]([[삼성 라이온즈]]) || → || '''박계원'''([[롯데 자이언츠]]) || → || [[이종범]]([[해태 타이거즈]]) ||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E1002A><:> '''{{{#ffffff SK 와이번스 역대 주장}}}''' || ||<width=30%><:> [[양용모]] [BR] (2001) ||<:> {{{+1 →}}} ||<width=30%><#EF6C00><:> '''{{{#ffffff 박계원}}}'''[BR]'''{{{#ffffff (2002)}}}''' ||<:> {{{+1 →}}} ||<width=30%><:> [[김기태(1969)|김기태]] [BR](2003) || [목차] == 소개 == 전 [[롯데 자이언츠]], [[쌍방울 레이더스]], [[해태 타이거즈]], [[SK 와이번스]]의 내야수. == 선수시절 == 1992년 고려대를 졸업했고 그 해 아마추어 국가대표 유격수로도 발탁되기도 했다. 유격수 치고 큰 키였던[* 183CM]와 강한 어께로 수비에서 강점을 보였고, 그 때문에 1992년 드래프트 2차 2순위 지명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프로 첫 해였지만 주전으로 풀 타임을 소화하면서 121경기 .243 6홈런 47타점을 기록하며 신인으로써 유격수 골든 글러브를 수상한 몇 안 되는 선수가 된다.[* 이전에 1983년 원년 골글 [[김재박]], 1987년 [[류중일]]에 이어 세번째. 이후 1993년 [[이종범]]이 신인으로써 골글을 수상한다.] 롯데가 3위를 차지하는데 일조했으며 특히 포스트 시즌에 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삼성과 맞붙은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솔로 홈런을 때리는등 2경기 .429 1홈런을 기록했고, 해태와 붙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연장 10회초, [[조계현]]에게 결승타를 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사실상 그 때 롯데에게 해태는 끝판왕이었으며 빙그레는 의외로 싱겁게 무너졌다.~~ 한국시리즈에선 17타수 5안타 .294를 기록하며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고 무방한 활약을 펼쳤다. 신인왕은 같은 팀 투수 [[염종석]]에게 빼앗겼지만,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선정된다. 1993년까지 주전 유격수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이듬해인 1994년 어께 부상을 달고 무리하게 경기에 출전하는 바람에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이때 방위 복무 중이라 홈 경기에만 출전했음에도 부상이 악화된것. 1997년에 재활을 마치고 그라운드로 복귀했지만, 그가 빠진 자리를 [[김민재(내야수)|김민재]]가 성공적으로 메우며 벤치 멤버로 전락해 1998년 6월 5일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와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됐다.[* 박계원, 이동수 ↔ [[김현민]], [[박성기]]] 이후 벤치멤버로 활동하다가 1999년 4월 16일 [[오봉옥]]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오봉옥, 박계원 ↔ [[송구홍]], [[박재용]], 송구홍이 준수한 컨택능력은 있었지만 유격수비를 볼 수 없었다는게 이유일듯.]되었다. 이 때 이종범이 일본으로 건너가고 김종국이 부상당한 해태의 내야진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이듬해인 2000년 또 다시 2:2 트레이드[* [[이호준]], 박계원 ↔ [[성영재]], [[김호(야구)|김호]]]의 대상자로 [[SK 와이번스]]로 이동했다. 선수 생활을 마칠 때까지 통산 9시즌 동안 1,812타수 439안타(홈런 19개)로 타율 0.242를 기록했다.~~2:2 트레이드가 본인 야구인생의 절반이다~~ 유격수로써는 나쁘지 않은 타격과 준수한 수비가 팀에게는 도움이 되었던 선수. == 지도자 시절 == 2002년 [[SK 와이번스]]에서 은퇴한 후 2003년 [[미국]] [[플로리다]] 주 브래든턴에 위치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구산 산하의 마이너 루키 팀[* 이 때 같은 팀에 있었던 선수가 [[호세 바티스타]]다. 물론 본인이 가르친 건 아니다.]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고, 2004년 [[SK 와이번스]] 2군 수비&작전 코치로 임명되었다. 이후 2006년 [[롯데 자이언츠]]의 수비코치로 영입되어 친정 팀에 복귀했다. 이후 2009년까지 수비코치를 맡았고 2009년엔 작전/주루 코치도 겸하여 2010년부터는 작전/주루 코치로 전환하여 2011년까지 맡다가, 다시 2012년에는 수비코치를 맡았다. 수비코치로의 능력은 ~~롯데의 화약고~~ [[공필성]]보다는 낫다는 게 중론. 실제로 2009년을 제외하고 박계원이 수비코치를 맡은 해엔 롯데의 [[실책]] 순위는 3~5위권을 유지했으나 [[공필성]]이 맡은 해엔 '''어김없이''' 실책 1위를 기록했으니... 실책이 수비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롯데의 수비를 본 사람들이라면 '''실책이라도''' 줄였으면 하는게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라서... 하지만 작전/주루코치로는 다소 의문이라는 평가. 주루는 몰라도 롯데 선수들의 작전 수행 능력이 크게 나아졌다는 평가는 그가 작전코치를 맡은 동안엔 별로 없었다. 어쨌든 2013 시즌부터는 다시 작전/주루코치로 활동한다. 그리고 수비코치는 다시 '''[[공필성]]'''이 맡았다. 그 때문인진 몰라도 롯데는 2013 시범경기에서 초반 3경기부터 7개의 실책을 저질렀다. 그리고 페넌트레이스 시즌 초 롯데에서 좋지 않은 플레이를 보이게 되자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박현승]]과 교체되어 2군으로 내려갔다. 2013 시즌 종료 후 [[kt wiz]]의 코치로 영입되었다. SK 코치 시절 감독이었던 [[조범현]]과의 인연으로 영입된 듯하다. 2016 시즌 후 [[kt wiz]]에서 사임했다. == 기타 == 2011년 11월 13일에 열린 [[부산고등학교 야구부|부산고]]와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고]]와의 라이벌 매치 때 무사 만루 찬스에서 끝내기 3타점을 올려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참고로 이 경기에서 '''[[이대호]]'''가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고]] '''투수'''로 나왔다.] [[분류:야구선수]] [[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 [[분류:1970년 출생]] [[분류:타자]] [[분류:내야수]] [[분류:우투우타]] [[분류:해태 타이거즈]] 박계원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