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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코치 시절 과자는 빨아먹어야 제맛 가만 저거 롯데 과자 아닌데
이름 | 박계원(朴啓源 / Gye-won Park) |
생년월일 | 1970년 2월 4일 |
출신지 | 부산광역시 남구 |
학력 | 대연초-부산중-부산고-고려대 |
포지션 | 내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2년 2차지명 2라운드(전체 14번) |
소속팀 | 롯데 자이언츠(1992~1998) 쌍방울 레이더스(1998~1999) 해태 타이거즈(1999~2000) SK 와이번스(2000~2002) |
1992년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 ||||
류중일(삼성 라이온즈) | → | 박계원(롯데 자이언츠) | → | 이종범(해태 타이거즈) |
SK 와이번스 역대 주장 | ||||
양용모 (2001) | → | 박계원 (2002) | → | 김기태 (2003) |
1 소개
전 롯데 자이언츠, 쌍방울 레이더스, 해태 타이거즈, SK 와이번스의 내야수.
2 선수시절
1992년 고려대를 졸업했고 그 해 아마추어 국가대표 유격수로도 발탁되기도 했다. 유격수 치고 큰 키였던[1]와 강한 어께로 수비에서 강점을 보였고, 그 때문에 1992년 드래프트 2차 2순위 지명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프로 첫 해였지만 주전으로 풀 타임을 소화하면서 121경기 .243 6홈런 47타점을 기록하며 신인으로써 유격수 골든 글러브를 수상한 몇 안 되는 선수가 된다.[2] 롯데가 3위를 차지하는데 일조했으며 특히 포스트 시즌에 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삼성과 맞붙은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솔로 홈런을 때리는등 2경기 .429 1홈런을 기록했고, 해태와 붙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연장 10회초, 조계현에게 결승타를 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사실상 그 때 롯데에게 해태는 끝판왕이었으며 빙그레는 의외로 싱겁게 무너졌다. 한국시리즈에선 17타수 5안타 .294를 기록하며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고 무방한 활약을 펼쳤다. 신인왕은 같은 팀 투수 염종석에게 빼앗겼지만,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선정된다.
1993년까지 주전 유격수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이듬해인 1994년 어께 부상을 달고 무리하게 경기에 출전하는 바람에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이때 방위 복무 중이라 홈 경기에만 출전했음에도 부상이 악화된것. 1997년에 재활을 마치고 그라운드로 복귀했지만, 그가 빠진 자리를 김민재가 성공적으로 메우며 벤치 멤버로 전락해 1998년 6월 5일 이동수와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됐다.[3] 이후 벤치멤버로 활동하다가 1999년 4월 16일 오봉옥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4]되었다. 이 때 이종범이 일본으로 건너가고 김종국이 부상당한 해태의 내야진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이듬해인 2000년 또 다시 2:2 트레이드[5]의 대상자로 SK 와이번스로 이동했다. 선수 생활을 마칠 때까지 통산 9시즌 동안 1,812타수 439안타(홈런 19개)로 타율 0.242를 기록했다.2:2 트레이드가 본인 야구인생의 절반이다 유격수로써는 나쁘지 않은 타격과 준수한 수비가 팀에게는 도움이 되었던 선수.
3 지도자 시절
2002년 SK 와이번스에서 은퇴한 후 2003년 미국 플로리다 주 브래든턴에 위치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구산 산하의 마이너 루키 팀[6]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고, 2004년 SK 와이번스 2군 수비&작전 코치로 임명되었다.
이후 2006년 롯데 자이언츠의 수비코치로 영입되어 친정 팀에 복귀했다. 이후 2009년까지 수비코치를 맡았고 2009년엔 작전/주루 코치도 겸하여 2010년부터는 작전/주루 코치로 전환하여 2011년까지 맡다가, 다시 2012년에는 수비코치를 맡았다.
수비코치로의 능력은 롯데의 화약고 공필성보다는 낫다는 게 중론. 실제로 2009년을 제외하고 박계원이 수비코치를 맡은 해엔 롯데의 실책 순위는 3~5위권을 유지했으나 공필성이 맡은 해엔 어김없이 실책 1위를 기록했으니... 실책이 수비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롯데의 수비를 본 사람들이라면 실책이라도 줄였으면 하는게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라서...
하지만 작전/주루코치로는 다소 의문이라는 평가. 주루는 몰라도 롯데 선수들의 작전 수행 능력이 크게 나아졌다는 평가는 그가 작전코치를 맡은 동안엔 별로 없었다.
어쨌든 2013 시즌부터는 다시 작전/주루코치로 활동한다. 그리고 수비코치는 다시 공필성이 맡았다. 그 때문인진 몰라도 롯데는 2013 시범경기에서 초반 3경기부터 7개의 실책을 저질렀다. 그리고 페넌트레이스 시즌 초 롯데에서 좋지 않은 플레이를 보이게 되자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박현승과 교체되어 2군으로 내려갔다.
2013 시즌 종료 후 kt wiz의 코치로 영입되었다. SK 코치 시절 감독이었던 조범현과의 인연으로 영입된 듯하다.
2016 시즌 후 kt wiz에서 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