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include(틀:사건사고)] * 상위 항목 : [[북한의 대남 도발사]] [목차] == 개요 == '''[[햇볕정책]]을 [[사라예보 사건|총성 한 번으로 마감]]시킨 초대형 사건.'''[* 핵실험했다고 금강산 관광을 남한이 취소시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2006년 핵실험 당시에도 남북 화해무드는 그대로였으나 이 사건 이후 남북 긴장은 2016년까지 지속되고 있다. 후술하듯 [[금강산]] 근처에 단 1명의 남한 관광객도 얼씬도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핵실험보다 이 총격사건이 훨씬 큰 사건이다.''']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을 간 故 박왕자 씨가 [[조선인민군 육군]] [[초병]]의 총격에 의해 사망한 사건. 사건이 벌어진 것은 해가 뜨기 직전 혹은 막 해가 뜨기 시작한 오전 5시경으로 당시 몸이 그다지 좋지 않은 박왕자 씨는 해안가를 산책하다가 인민군 [[육군]] 해안초소의 초병이 쏜 총탄에 맞아 숨졌다. 그냥 한 명 죽은 단순한 총격사건이 아니라 [[햇볕정책|6.15 공동선언]] 이후 '''8년만에 가장 큰 변화를 끼친''', 매우 중요한 사건이며 천안함 피격 및 연평도 포격 등의 굵직한 사건을 제공하는 데 일조한 사건이기도 하다. 이 사건 이후 [[금강산]]관광지구로 남한 관광객이 다시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으며 같은 해 [[개성관광]]도 중단돼 [[햇볕정책]]은 사실상 폐지되었다. 이후 [[남북관계]]는 2016년에는 [[개성공업지구]]까지 폐쇄되며 오히려 더 악화되고야 말았다. 물론 햇볕정책의 공식적 종료가 아니기에 그 시기의 논란은 있으나 햇볕정책의 양대산맥으로 통하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업지구]] 둘 중 하나가 우선 무너진 것이 이 사건이 주 계기가 되었기에 남북관계 경색의 시점을 이 사건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이후로 8년간 7.4 남북공동성명이나 6.15 남북공동성명급의 큰 격변점도 없었기에 더욱 중요한 사건이 이 민간인 피격 사건이다. == 남북한 입장 차이 == 이 사건에서 [[대한민국]]과 [[북한]] 정부는 서로 다른 결론을 냈다. 북한은 ||당일 새벽 4시 50분쯤 경계 펜스로부터 800m 떨어진 지점에서 고인을 발견했고 500m를 도주한 고인에게 오전 4시 55분에서 5시 사이에 총격을 가했다.|| 한편 한국 [[통일부]]는[[http://m.unikorea.go.kr/content.do?cmsid=1926&mode=view&page=215&cid=10537|#]] ||첫째, 故 박왕자씨는 2008년 7월 11일 04시 18분경에 숙소인 금강산 패밀리 비치호텔의 객실을 출발한 것으로 [[CCTV]] 분석 결과 확인되었다. 둘째, 고인이 피격된 지점은 해수욕장 경계선 울타리에서 기생바위 쪽으로 직선거리 약 200m 지점으로 추정되며, 이는 북측이 현대아산에 통보한 지점과는 차이를 보인다. 셋째, 목격자 진술과 관련 사진을 분석한 결과, 고인의 피격 사망시간은 05시 16분 이전으로 확인되었다.|| 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주장은 총 소리와 피격 시간대에 대한 관광객들의 증언과 모순되었다. 일단 북한은 4발의 총을 발사하여 그 중 2발이 명중하였다고 하였으나 당시 증언에서는 총 소리는 2회만 들렸다. 이후 부검에서 총을 쏜 거리도 측정하지 못한 데다 무엇보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고인의 행동에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너무 많은 등 의심 가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2m를 넘는 펜스를 치마를 입고 어떻게 넘었는가, 관광 통제선을 굳이 넘을 이유가 있었는가 등. 하지만 펜스를 넘어갔다는 것은 남북한 모두 인정하고 있다. 부검결과[[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9000&num=59022|#]]는 총을 쏜 거리가 2m 이상이라는것만 확인하였고, 총상이 두곳 있는것을 확인하였다. 그 외의 특별한 손상[[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99123.html|#]]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목격자 인터뷰[[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298604.html|#]]에 따르면, 펜스는 육지쪽에만 있었고 옆 해안가쪽은 모래언덕으로 구성되어 무시하고 타넘을 수 있는 형태로 구성된 모양이다. 이 부분에서 [[현대아산]]측의 교육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북한에서는 2010년 어쨌든 유감을 표시한다[[http://m.unikorea.go.kr/content.do?cmsid=1928&mode=view&page=127&cid=14052|#]] 정도가 공식 입장이다. 사고 직후 이후로, [date] 현재까지 대한민국과 북한의 관계의 특성상, 그리고 사고가 일어난 지역의 특성상 진상규명이 명확히는 이루어지지 않은채이다. == 결과 ==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7월 12일 관광 출발 금지[[http://unikorea.go.kr/content.do?cmsid=1554&sbf_writedate=writedate&searchField=title&searchValue=%EA%B8%88%EA%B0%95%EC%82%B0&x=0&y=0&mode=view&page=2&cid=10531|#]], 7월 13일 15시 30분 전원 철수[[http://unikorea.go.kr/content.do?cmsid=1554&sbf_writedate=writedate&searchField=title&searchValue=%EA%B8%88%EA%B0%95%EC%82%B0&x=0&y=0&mode=view&page=2&cid=10534|#]] 조치를 통해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켰다. 이는 '''[date]'''바로 지금까지 복구되지 않고 있다. 이 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지구에는 시설 관계자를 제외하면 대한민국 사람이 단 1명도 못 들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입장은 “당국간 협의를 통해 진상규명, 재발방지 및 신변안전보장대책을 마련하여 금강산 사건을 해결한 후 관광을 재개한다”이다.[[http://unikorea.go.kr/content.do?cmsid=1557&sbf_writedate=writedate&searchField=title&searchValue=%EA%B8%88%EA%B0%95%EC%82%B0&x=0&y=0&mode=view&page=3&cid=14329|#]][[http://unikorea.go.kr/content.do?cmsid=1557&sbf_writedate=writedate&searchField=title&searchValue=%EA%B8%88%EA%B0%95%EC%82%B0&x=0&y=0&mode=view&page=3&cid=11977|#]] 이 사건을 계기로 남북 관계는 화해무드에서 본격 [[냉전]] 상황으로 선회하였으며 북한의 주요 돈벌이 수단 중 하나였던 금강산 관광 또한 정지되었고 이후 남북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경색되어 남북교류 또한 중단되는 것은 물론 이후에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 사태]], [[서부전선 포격 사건]], [[2016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이 벌어지면서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다. 또한 금강산 관광을 담당해오던 현대아산 또한 이후 당연히 적자일로에 접어들어 현재는 거의 망한 상태. 다만 알려진 것과 달리 북한의 재정 상황은 이전과 큰 차이는 없는데 금강산 관광 중단을 비롯 2008년 이후의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인한 대남 자금 유입 감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제적 지원이 이를 상쇄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자체가 햇볕정책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도 많다. 남북한 화해를 위해 실시되었던 가장 큰 사업 중 하나가 [[금강산 관광]]인데, 관광을 간 자국민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 [[트리비아]] == 2010년 11월, [[위키릭스]]의 외교문건 폭로에 따르면 북한군이 경비병 경계태세가 해이해지는 것에 대응하여 군기 강화 기간을 설정했는데 바로 그때 사건이 터진 거라고 한다. 고의로 노린 건 아니고 북한 사람인 줄 알고 그냥 쐈다는 설도 있다. 북한군이 자국인에게 행패를 부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일설에 따르면 하필 [[촛불집회]] 기간에 벌어진 총격 사건이라는 이유로 [[음모론]]을 제기했으나 가볍게 무시당했다. 이유는 북한군측에서 어느 정도 책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제대로 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민간인이 군사지역에 깊숙히 들어온 것을 막느라 그런 것 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부에서는 [[이명박 정부]] 가 남북관계를 파탄내기 위해서 고인이 넘어가는 걸 일부러 방조했다는 [[음모론]]을 주장했으나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야기다. 당연하겠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에서 파견한 스파이라고 주장하는 극우 집단과 전혀 다를게 없는 발언. 사건 직후 박왕자씨 피살 이전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2171761|비슷하게 군사구역으로 들어갔었던 관광객의 증언]]이 보도되었다. 여기서 증언한 목사는 본인은 억류되었다가 20분만에 풀려났고, 이후" '목사님은 운이 좋은 편이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인민군이 남한 사람을 쉽사리 풀어주지 않아서 서너시간씩 억류되기도 한다'는 말도 들었다"라고 말하였는데, 바꿔 말하면 운 나빠도 서너시간 억류만 당하고 끝이던 일이 즉각 사살이 되었다는 것이다. [각주] [[분류:군사 사건사고]][[분류:이명박 정부]] [[분류:북한(김정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사건사고 (원본 보기) 박왕자 씨 피살사건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