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왕자 씨 피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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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햇볕정책총성 한 번으로 마감시킨 초대형 사건.[1]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관광을 간 故 박왕자 씨가 조선인민군 육군 초병의 총격에 의해 사망한 사건.

사건이 벌어진 것은 해가 뜨기 직전 혹은 막 해가 뜨기 시작한 오전 5시경으로 당시 몸이 그다지 좋지 않은 박왕자 씨는 해안가를 산책하다가 인민군 육군 해안초소의 초병이 쏜 총탄에 맞아 숨졌다.

그냥 한 명 죽은 단순한 총격사건이 아니라 6.15 공동선언 이후 8년만에 가장 큰 변화를 끼친, 매우 중요한 사건이며 천안함 피격 및 연평도 포격 등의 굵직한 사건을 제공하는 데 일조한 사건이기도 하다. 이 사건 이후 금강산관광지구로 남한 관광객이 다시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으며 같은 해 개성관광도 중단돼 햇볕정책은 사실상 폐지되었다. 이후 남북관계는 2016년에는 개성공업지구까지 폐쇄되며 오히려 더 악화되고야 말았다.

물론 햇볕정책의 공식적 종료가 아니기에 그 시기의 논란은 있으나 햇볕정책의 양대산맥으로 통하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업지구 둘 중 하나가 우선 무너진 것이 이 사건이 주 계기가 되었기에 남북관계 경색의 시점을 이 사건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이후로 8년간 7.4 남북공동성명이나 6.15 남북공동성명급의 큰 격변점도 없었기에 더욱 중요한 사건이 이 민간인 피격 사건이다.

2 남북한 입장 차이

이 사건에서 대한민국북한 정부는 서로 다른 결론을 냈다.

북한은

당일 새벽 4시 50분쯤 경계 펜스로부터 800m 떨어진 지점에서 고인을 발견했고 500m를 도주한 고인에게 오전 4시 55분에서 5시 사이에 총격을 가했다.

한편 한국 통일부#

첫째, 故 박왕자씨는 2008년 7월 11일 04시 18분경에 숙소인 금강산 패밀리 비치호텔의 객실을 출발한 것으로 CCTV 분석 결과 확인되었다.
둘째, 고인이 피격된 지점은 해수욕장 경계선 울타리에서 기생바위 쪽으로 직선거리 약 200m 지점으로 추정되며, 이는 북측이 현대아산에 통보한 지점과는 차이를 보인다.
셋째, 목격자 진술과 관련 사진을 분석한 결과, 고인의 피격 사망시간은 05시 16분 이전으로 확인되었다.

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주장은 총 소리와 피격 시간대에 대한 관광객들의 증언과 모순되었다. 일단 북한은 4발의 총을 발사하여 그 중 2발이 명중하였다고 하였으나 당시 증언에서는 총 소리는 2회만 들렸다.

이후 부검에서 총을 쏜 거리도 측정하지 못한 데다 무엇보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고인의 행동에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너무 많은 등 의심 가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2m를 넘는 펜스를 치마를 입고 어떻게 넘었는가, 관광 통제선을 굳이 넘을 이유가 있었는가 등. 하지만 펜스를 넘어갔다는 것은 남북한 모두 인정하고 있다.

부검결과#는 총을 쏜 거리가 2m 이상이라는것만 확인하였고, 총상이 두곳 있는것을 확인하였다. 그 외의 특별한 손상#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목격자 인터뷰#에 따르면, 펜스는 육지쪽에만 있었고 옆 해안가쪽은 모래언덕으로 구성되어 무시하고 타넘을 수 있는 형태로 구성된 모양이다. 이 부분에서 현대아산측의 교육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북한에서는 2010년 어쨌든 유감을 표시한다# 정도가 공식 입장이다.

사고 직후 이후로, 2023-08-12 00:56:31 현재까지 대한민국과 북한의 관계의 특성상, 그리고 사고가 일어난 지역의 특성상 진상규명이 명확히는 이루어지지 않은채이다.

3 결과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7월 12일 관광 출발 금지#, 7월 13일 15시 30분 전원 철수# 조치를 통해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켰다. 이는 2023-08-12 00:56:31바로 지금까지 복구되지 않고 있다. 이 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지구에는 시설 관계자를 제외하면 대한민국 사람이 단 1명도 못 들어가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입장은 “당국간 협의를 통해 진상규명, 재발방지 및 신변안전보장대책을 마련하여 금강산 사건을 해결한 후 관광을 재개한다”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남북 관계는 화해무드에서 본격 냉전 상황으로 선회하였으며 북한의 주요 돈벌이 수단 중 하나였던 금강산 관광 또한 정지되었고 이후 남북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경색되어 남북교류 또한 중단되는 것은 물론 이후에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 사태, 서부전선 포격 사건, 2016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이 벌어지면서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다. 또한 금강산 관광을 담당해오던 현대아산 또한 이후 당연히 적자일로에 접어들어 현재는 거의 망한 상태.

다만 알려진 것과 달리 북한의 재정 상황은 이전과 큰 차이는 없는데 금강산 관광 중단을 비롯 2008년 이후의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인한 대남 자금 유입 감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제적 지원이 이를 상쇄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자체가 햇볕정책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도 많다. 남북한 화해를 위해 실시되었던 가장 큰 사업 중 하나가 금강산 관광인데, 관광을 간 자국민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4 트리비아

2010년 11월, 위키릭스의 외교문건 폭로에 따르면 북한군이 경비병 경계태세가 해이해지는 것에 대응하여 군기 강화 기간을 설정했는데 바로 그때 사건이 터진 거라고 한다.

고의로 노린 건 아니고 북한 사람인 줄 알고 그냥 쐈다는 설도 있다. 북한군이 자국인에게 행패를 부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일설에 따르면 하필 촛불집회 기간에 벌어진 총격 사건이라는 이유로 음모론을 제기했으나 가볍게 무시당했다. 이유는 북한군측에서 어느 정도 책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제대로 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민간인이 군사지역에 깊숙히 들어온 것을 막느라 그런 것 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부에서는 이명박 정부 가 남북관계를 파탄내기 위해서 고인이 넘어가는 걸 일부러 방조했다는 음모론을 주장했으나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야기다. 당연하겠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에서 파견한 스파이라고 주장하는 극우 집단과 전혀 다를게 없는 발언.

사건 직후 박왕자씨 피살 이전에 비슷하게 군사구역으로 들어갔었던 관광객의 증언이 보도되었다. 여기서 증언한 목사는 본인은 억류되었다가 20분만에 풀려났고, 이후" '목사님은 운이 좋은 편이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인민군이 남한 사람을 쉽사리 풀어주지 않아서 서너시간씩 억류되기도 한다'는 말도 들었다"라고 말하였는데, 바꿔 말하면 운 나빠도 서너시간 억류만 당하고 끝이던 일이 즉각 사살이 되었다는 것이다.

  1. 핵실험했다고 금강산 관광을 남한이 취소시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2006년 핵실험 당시에도 남북 화해무드는 그대로였으나 이 사건 이후 남북 긴장은 2016년까지 지속되고 있다. 후술하듯 금강산 근처에 단 1명의 남한 관광객도 얼씬도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핵실험보다 이 총격사건이 훨씬 큰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