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include(틀:다른 뜻1, other1=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rd1=박희도(축구선수))] * 상위 항목 : [[대한민국 국군/인물]] [include(틀:12.12의 주역들)] 朴熙道 [[1934년]] [[7월 22일]]~ ||||<table align=right><#030> {{{#ffffff '''박희도'''}}} || |||||| http://tv03.search.naver.net/nhnsvc?size=120x150&quality=9&q=http://sstatic.naver.net/people/197/201105311722554331.jpg?width=200 || ||||||<#030> {{{#ffffff '''1934년 ~ '''}}} || ||<#2e8b57><:> {{{#ffffff '''복무'''}}} ||<#8fbc8f> 대한민국 육군 || ||<#2e8b57><:> {{{#ffffff '''기간'''}}} ||<#8fbc8f> [[1956년]] ~ [[1988년]] || ||<#2e8b57><:> {{{#ffffff '''임관'''}}} ||<#8fbc8f> 육사 12기 || ||<#2e8b57><:> {{{#ffffff '''최종계급'''}}} ||<#8fbc8f> [[대장(계급)|대장]] || ||<#2e8b57><:> {{{#ffffff '''최종보직'''}}} ||<#8fbc8f> 육군참모총장 || |||||||||| [[대한민국 육군]]의 [[제3야전군사령관]] || || 7대 [[정호용]] || → || 8대 박희도 || → || 9대 [[최세창]] || |||||||||| [[대한민국 육군]]의 [[육군참모총장|참모총장]] || || 25대 [[정호용]] || → || 26대 박희도 || → || 27대 [[이종구(군인)|이종구]] || [목차] == 소개 ==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가]], 종교인([[불교]])이다. [[12.12 군사반란]] 가담자 중 한명으로 [[전두환]] 하수인. 개인적으로 아주 독실한 불자라고 한다. == 일생 == === 어린 시절 === [[1934년]]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태어났다.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직속선배가 [[김수한]] 새누리당 상임고문이다. === 군인 시절 === [[1956년]] [[3월]] [[육군사관학교]] 제12기로 육군[[소위]]에 임관했다. 한 기수 선배인 [[전두환]]과는 생도시절부터 깊은 친분을 쌓아온 사이로 전두환과의 인연으로 인하여 1960년대 중반에 [[하나회]]에 가입했다. http://rigvedawiki.net/r1/pds/hnh.jpg 하나회에서 박희도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12.12 군사반란]]이 성공하고 군 수뇌부 인사가 발표된 뒤인 [[1979년]] [[12월 14일]], [[쿠데타]] 지휘부와 행동대장들이 [[국군기무사령부|국군보안사령부]] 건물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에서는 그 [[노태우]] 바로 옆에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1975년]] [[준장]]에 진급하자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추천'''으로 1[[공수특전여단]][[여단장|장]]에 부임했다. 사실 박희도가 준장에 진급한 것도 '''정병주 장군이 진급심사에서 박희도를 준장으로 진급시키는데 크게 도움을 줬기에 가능한 것'''이였다. 박희도가 1공수특전여단장에 부임한 지 1년만인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보복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노재현 당시 [[합동참모본부]]장에게 시켜서 박희도를 몰래 만난 뒤 보복작전을 지시했다. 작전명령은 [[판문점]] 뒤에 있는 북한의 불법초소 4개를 완파하는 내용이였다. 이에 박희도는 김종헌 [[소령]]을 특공대장으로 임명한 64명의 특공대원을 [[특전사]] 1여단에서 차출해서 권총과는 별개로 개인화기를 지참시켰다. 이에 주한미군 겸 유엔군사령부[* 이전 문서에 '한미연합사령부 사령관'이라고 썼는데, 한미연합사는 1978년에 창설되었다. 그 이전의 주한미군 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 자격으로 한국군과 주한미군에 대한 총괄 작전권을 행사했다.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하자.] [[사령관]]인 리처드 스틸웰 [[미 육군]] 대장이 이에 분노하여 박희도를 몰아세웠다. 그러자 박희도는 오히려 성질을 내며 "이보시오, 지금 '''이게 [[스포츠]]인 줄 아시오?'''"라며 스틸웰 대장에게 반박하고 당초 계획대로 개인화기를 지참하고 작전을 실행했다. 미국 측에서 대단히 분노하여 박희도를 [[보직해임]] 시킬 것을 강요했으나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측을 잘 달래서 이 사건을 무마시켰다. 사실 먼저 쳐들어온 쪽이 북한이었고 작전지시를 내린 사람이 박 대통령 본인이었기 때문에 별로 어렵지 않게 무마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의 비호를 받은 바 있는 박희도는 이번에는 진짜 위기가 찾아왔다. [[1978년]] 북한에서는 무장공비를 파견하여 서산앞바다에서 군사기밀을 캐가고 1공수특전여단의 위수지역을 마음껏 돌아다닌 뒤 임진강을 건너 복귀하는 데에 성공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로 인하여 박희도는 당시 육군참모총장인 [[이세호]] 대장에게 격렬하게 문책을 받았고 쪼인트를 까이는 등 말이 아니였다. 이세호는 머리끝까지 빡쳐서 '''박희도의 군복을 벗겨'''버리라고 길길이 날뛰었다. 이때 또다시 '''정병주가 나서서 이세호에게 그래도 대통령이 특별히 지시한 작전을 완수한 지휘관이고 하니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진짜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다 버리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박희도는 군복을 벗고 징역을 살 위기를 정병주가 보호해줘서 겨우 넘겼다. 그러나 1년 후 박희도는 이렇게나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이 필요없는 최고의 은인인 정병주를 배신했다. [[1979년]] 1공수특전여단장([[준장]]) 신분으로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였다. 박희도는 당시 [[국방장관]]인 [[노재현]] [[장관]]을 납치하고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불법점거했다. 그렇게 하여 반란을 진압할 요소를 초기에 제거함으로서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장태완]] [[수도방위사령부|수경사령관]]이 쪽도 못쓰게 만들어버렸다. 박희도는 이 공로로 그 해 [[육군]] [[소장(계급)|소장]]으로 승진하여 [[제26기계화보병사단]]장에 부임했다. 그 이후 1년도 못가서 [[육군]] [[중장]]으로 승진하여 11기 선배 [[정호용]]의 후임으로 특전사령관에 부임했다. 이 당시 박희도, 보안사령관 [[박준병]], 수경사령관 [[박세직]]을 일컬어 제5공화국 군부 실세 '쓰리박'으로 군부 내에서 무소불위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육군]] [[대장]]으로 진급 후 [[제3야전군사령부|제3야전군]]사령관을 거치고 1985년 [[육군참모총장]]에 부임했다. 육군참모총장 시절인 [[1986년]]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난투극 사건]]에 연루되었다. 정권이 바뀌고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자 전두환의 군맥 제거에 의해 [[1988년]] [[6월]] 임기를 6개월 앞두고 보직해임 후 현역부적합 판정을 받아 [[전역]]했다. 박희도는 12.12 쿠데타의 주역이면서도 정치인이 된 적은 없었으며 계속 군인으로만 남았다. 두 차례 총선 출마를 시도하긴 했지만 한 번(14대 총선)은 공천이 거의 유력했다가 탈락했고 한 번은 12.12쿠데타 단죄로 불발. === 예편 이후 === [[1994년]]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12.12 쿠데타에 대한 혐의로 인하여 징역을 살다가 석방되었으며 현재는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상임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2014년 12월 대한민국불교도총연합 상임고문 자격으로 통합 진보당 해산 촉구를 주도했다. [[분류:한국군/군인]] [[분류:범죄자/인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12.12의 주역들 (원본 보기) 틀:다른 뜻1 (원본 보기) 박희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