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항목 : [[축구 관련 인물]], [[감독/목록]] [[파일:/image/020/2009/02/06/200902060241.jpg]] ||||<#008000> '''{{{#ffffff FC 톰 톰스크 감독}}}''' || ||||<#0000ff> '''{{{#ffffff 발레리 쿠지미치 네폼냐시}}} [br] {{{#ffffff (Valeri Kuzmyich Nepomniachi)}}}'''[* 러시아어로는 Валерий Кузьмич Непомнящий이다.] || || 생년월일 || [[1943년]] [[8월 7일]] || || 국적 || [[러시아]] || || 출신지 || 슬라브고로드 || || 포지션 || 수비수, 공격수 || || 소속팀 || SKIF 아시가바트 (1961~1965) [br] 스파르타크 사마르칸트 (1965~1967) || || 지도자 || 스트로이텔 아시가바트 감독 (1982~1983) [br]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1988~1990) [br]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기술고문 (1991) [br] 겐츨레르비를리이 SK 감독 (1992~1993) [br] 앙카라귀쥐 감독 (1993~1994) [br] [[유공 코끼리]]/[[부천 SK]] 감독 (1995~1998) [br] 선양 하이시 감독 (2000) [br] [[산프레체 히로시마]] 감독 (2001) [br] [[산둥 루넝]] 감독 (2002~2003) [br] [[상하이 선화]] 감독 (2004~2005) [br] FC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감독 (2006) [br]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6) [br] FC 톰 톰스크 감독 (2008~2011) [br] [[PFC CSKA 모스크바]] 기술고문 (2011~2014) [br] FC 톰 톰스크 감독 (2014~ ) || [목차] [[러시아]] 출신의 축구 감독. 애칭은 '''니포'''. 1943년 8월 7일생. == 소개 == 선수 시절은 무명의 수비수였지만,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카메룬]]의 8강 신화를 이끌면서 주목받았고[* [[카메룬]]의 경제적 사정은 차치하더라도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대표팀의 통역은 [[카메룬]] 주재 [[소련]] [[영사관]]에 고용된 운전기사였다고 하니, 말이 필요한지?], 이후 [[중국]] 대표팀 등의 고문을 맡다가 1994년 [[K리그]]의 [[제주 유나이티드|유공 코끼리]] 감독으로 내한해 부천 SK로 팀명을 변경한 1998년까지 감독을 지낸다. == K리그에서의 모습 == >'''[[K리그]]에 패스축구를 전도한 선구자이며, 한국 축구 발전의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던 감독이다.''' 당시 그가 보여 준 축구는 그동안 [[제리 로이스터|대한민국에서는 볼 수 없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확실한 스트라이커가 없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플레이 메이커 [[윤정환]]을 중심으로 헝가리 출신 조셉, 윤정춘, [[김기동(축구)|김기동]], [[이을용]] 등 뛰어난 미드필더들을 중용하여 물수제비 뜨듯 깔끔한 패스로 여러 차례의 득점 기회를 만들었고, [[조윤환]] 수석코치[* 니폼니시 이후 부천의 감독을 지냈고 이후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최윤겸]] 수비코치에게 직접 스타팅 멤버를 짜게 하면서 후진들 양성에 앞장섰다. 그 때문인지 PC통신 상에서는 '유공의 축구는 져도 표값이 아깝지 않다'는 칭찬이 쏟아졌고, 비슷하게 4-4-2 기반의 패싱축구를 구사하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붙는 날이면 당시 팬들에겐 '명경기 보증수표'로 통할 지경었다. 지금도 올드 팬들은 이 두 팀의 매치업을 다시 보고 싶어하는 경기로 꼽고 있다. 감독감을 키우는 감독으로도 유명해서 코치생활을 했던 조윤환과 최윤겸은 물론 선수들 중에도 감독이 여럿 배출되었다. 2016년 K리그 클래식에서 활동중인 그의 제자로는 울산의 [[윤정환]], 광주의 [[남기일]], 제주의 [[조성환(1970)|조성환]]이 있고, 챌린지에선 최윤겸 [[강원 FC]] 감독과 송선호 [[부천 FC]] 감독이 있다. U-23을 맡았던 [[이광종]]도(니폼니시 감독 밑에서 선수생활을 한 건 1995년 한 해뿐이지만) 니폼니시의 영향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436&article_id=0000001468|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성적은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1996년 아디다스컵 우승을 제외하고는 매번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고, 1997년 정규 시즌에서는 꼴찌의 수모까지 겪었다. 속공을 통해 게임을 풀어가는 유공의 축구 스타일 상 몸싸움을 잘하고 100m를 11~13초 대에 끊을 타깃형 스트라이커가 필요했지만 1996년 베스트 11이었던 세르게이 정도를 제외하고는 좋은 타깃형 스트라이커를 구하지 못했고, 또 구단의 모기업이 스포츠단 운영에 있어서는 '''막장으로 유명한 [[SK|솩]]이었다.'''[* 당시 드래프트 4라운드는 구단과 자매 결연을 맺은 대학의 에이스를 지명하는 시스템이었는데, [[SK]]는 [[동아대학교]]-[[인천대학교]] 이런 식으로 자주 자매결연 대학을 옮겼다.][* 심지어 야구팀 [[SK 와이번스]]의 [[막걸리 야구]] 발언과 똑같은 소리를 축구단도 들었다.] 그래서 1997년 최하위를 했을 때도 니폼니시 감독을 비판하기보다는 [[SK]]의 수뇌부를 비판하는 네티즌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조직력 축구보다 에이스에게 몰아주는 축구가 주류였기 때문에 국가대표급 선수진을 갖춘 포철, 일화, 대우[* 現 [[포항 스틸러스]], [[성남 FC]], [[부산 아이파크]]]에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여담으로 수원은 1998년과 1999년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1993년부터 1995년까지 K리그 3연패를 달성한 동대문 일화, 1997년 리그 전관왕을 달성한 [[부산 아이파크|부산 대우]]와 더불어 1990년대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팀으로 남았다.[* 1999년 수원은 K리그 30년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팀을 꼽으라 해도 후보로 명함을 내밀 수 있을만큼 압도적인 위용을 뽑냈다. 이 해 슈퍼컵, [[아디다스]]컵, [[롯데손해보험|대한화재]]컵, 리그를 모두 제패했으며 2위 부천과 승점차가 12점이였다.] == K리그 감독 사임 이후 == 1998년 퇴임 후 [[J리그]] 히로시마를 거쳐 2003년 [[중국]] 산둥 루넝의 감독을 맡아 FA컵 우승을 따내며 한국 시절 이루지 못한 우승의 한과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의 한을 풀었다. 이후 고향 [[러시아]]의 톰스크 팀 감독으로 재임하다가 2011년에 물러나 2014년까지 CSKA 모스크바의 기술고문으로 일하였고, 이후 다시 톰스크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발레리 니폼니시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