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항목: [[패션 관련 정보]] http://www.dafont.com/forum/attach/orig/1/4/141032.png [[프랑스]] 디자이너인 피에르 발맹이 만든 브랜드. [[한국어]]로는 흔히 '''발망'''이라 쓰고, 영문으로는 '''Balmain'''이라 표기. [목차] == 발망의 성립과 역사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9/93/Pierre_Balmain_and_Ruth_Ford,_photographed_by_Carl_Van_Vechten,_November_9,_1947.jpg 1914년 프랑스 [[사보이]]에서 태어난 피에르 발망은 어렸을 적부터 옷에 큰 관심을 보였고 패션계에 진출하고자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가 심하자,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파리(도시)|파리]]의 미술대학으로 진학하여 건축을 전공하며 파리로 상경한다. 결국 파리로 올라온 그는 후일 건축학교를 그만두게되고 1934년부터 유명 디자이너 에두아르 몰리뉴의 밑에서 일하게 된다. 이후 5년간 몰리뉴의 밑에서 일하던 발망은 그 실력을 인정받아 1939년부터 뤼시앵 를롱의 일하게 되었으나, 2차 대전의 여파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2년 간의 군복무를 하게 된다. 군 제대후 를롱의 하우스로 복귀한 발망은 그 유명한 [[크리스티앙 디오르]]과 함께 컬렉션의 책임자로 훌륭한 커리어를 쌓게 된다. 이후 둘이 같이 [[쿠튀르]]를 오픈하고자 했지만 결국 1945년 발망이 먼저 자신의 하우스를 오픈하며 둘은 결별하게 된다. 발망은 자신의 이름으로 하우스를 낸 뒤 패션업뿐만 아니라 [[소피아 로렌]], [[브리지트 바르도]], [[비비언 리]] 등 많은 여배우들의 영화, 연극 의상을 디자인하면서 그 이름을 더 널리 떨치게 되고, 1970년 기성복 라인을 확장하며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하게 된다. 이 때의 브랜드 이름은 자신의 이름을 딴 '''피에르 발망'''. 그리고 12년 간 열심히 활동하던 피에르 발망은 1982년 69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되고, 그 뒤 발망은 그의 사망과 함께 급격한 사양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특히 그의 뒤를 이은 디자이너들의 잇단 부진과 더불어 무분별한 라이선스 판매로 인한 저가 상품의 난립이 그 큰 원인이었다. 결국 2005년 발망은 옛 영광을 살리기 위해 피에르 발망이라는 브랜드 네임을 '발망'으로 줄여 이미지 혁신을 주도했고, 파코라반의 수석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드카르냉을 영입해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 자리에 앉힌다. 그리고 이 혁신은 2009년 S/S 파리 컬렉션에서 선보인 파워숄더룩에서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후 이 파워숄더룩은 [[마돈나(가수)|마돈나]], [[케이트 모스]], [[비욘세]]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고, 발망의 이미지를 고급 명품 브랜드로 다시 자리매김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물론 이 때 가지게 된 발망의 고급 브랜드의 이미지는 기존의 발망이 가지고 있던 우아함과는 다른 좀 더 젊고 도발적인 이미지였다. 2011년 발망은 F/W 컬렉션을 끝으로 발망을 지금의 위치에 있게한 크리스토프 드카르냉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유는 드카르냉의 정신적인 피로와 휴식.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발망의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를 맡은 사람은 프랑스 파리의 에스모드를 졸업하고 2009년부터 발망에서 일해온 25세의 신예 올리비에 루스탱이 맡기로 했다. 한국에서 뜬 발망의 남성 라인은 전통적인 라인이 아닌 2008년에 만들어진 신생 라인이다. == 발망의 특징 == 발망 브랜드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면 바로 '''비싼 가격'''이다. 2011년 상반기 [[무한도전]]에서 [[정재형]]이 입고 나온 구멍 송송 뚫린 티셔츠가 40만원대라고 하여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이 제품의 브랜드가 바로 발망. 그외에도 한국의 많은 남성 브랜드들이 카피를 뜨는(...) 발망의 2011년 겨울 피코트 가격은 무려 1900유로가 훌쩍 넘는다. 2011년 12월 15일 환율로 따졌을 때 한국돈으로 300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 거기에 한국으로 수입되면서 정가가 더 비싸진다. 900유로짜리 니트가 200만 원으로 늘어나는 마법을 보여준다. 하지만 2009년을 기점으로 극적으로 바뀐 발망의 이미지 덕분에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 우리나라 스타들도 애용해서 매출액은 나날이 늘고 있다. ~~계절마다 아이템 하나씩만 구입해도 1년이년 차 한 댓값이 나온다.~~ 그나마 서민들이 가질 수 있는 발망 아이템은 위에서 이야기한 라이선스판 싸구려 피에르 발망 아이템 정도다... 룩북은 밀리터리 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매 시즌 주름과 절개 패턴이 있는 바이커진이 발매 되고 있다. [[슬랙스]], [[츄리닝]] 재질의 바지에도 바이커 패턴이 들어간 제품이 발매되고 있으며 바이커 패턴이 이제 발망 바지를 대표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에서는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롯데백화점]] 본점,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그리고 각종 편집샵에서 찾을 수 있다. 카다시안 패밀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카다시안 가는 브랜드의 엄청난 팬으로 유명하며 덤으로 전속모델로도 활동 중에 있다. [[카녜이 웨스트]], [[킴 카다시안]], [[카일리 제너]] 등이 제일 많이 오른다. 드카르냉의 과격하고 록적인 스타일은 올리비에 루스탱에 의해 동양적 예술을 감미시켜 더욱 더 아름다운 디자인을 만드는 중이다. [[불사조]], [[용]] 등의 동물들이 주로 디자인을 이룬다. 아무래도 중국 및 아시아의 부호들이 발망을 애호하니 각별히 더 그쪽애 중점을 두어 디자인 한다는 듯. == [[H&M]] 콜라보레이션 == http://www.spentmydollars.com/wp-content/uploads/2015/09/balmain-hm-dress-eagle-bird-embroidered-mini-dress-price-expensive-full-collection-womens.png 2015년 [[H&M]] 콜라보레이션 파트너로 선정되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은 편이다. 발망 제품과 디자인은 똑같은데, 제일 중요한 쿠튀르급의 디테일이나 퀄리티는 사라지니 그냥 밤무대 옷(...)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서울 명동 H&M 매장 앞에 일주일 전 부터 리셀러(물건을 되팔기위해 구매하는 사람들)들과 패션피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자아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28&aid=0002295414&viewType=pc|한겨레신문 기사 후기]]를 보면 [[한겨레]] 신문 기자가 밤을 세워가며 줄을 서는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호평받았고 글도 상당히 재미있는 편이다. 많은 리셀러의 수배 차익은 이미 물이 건너간 것 같은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22&aid=0002966147|'H&M·발망' 대박꿈…인터넷에 원가이하 처분 글]] ~~[[망했어요|아..망햇어요..!!]]~~ ~~쌤통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입기 부담스러운 디자인들이 많았던점이 큰 이유인듯. [[이베이]]에서는 이익을 본 리셀러들이 굉장히 많았다. [각주] [[분류:프랑스의 기업]] 발망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