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裵基賢 Constantine Bae Ki Hyen ||<table align=center>|| ||http://cathms.kr/xe/files/attach/images/232/233/11a3f63cc183e88d031f0480dce98483.jpg||<:>http://www.catholictimes.org/uploadFile2/article_template/272775_669_2.JPG|| ||<table align=center>|| ||<-6><:>[[천주교 마산교구|역대 천주교 마산교구장]]|| ||<:>4대 [[안명옥]]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 ||←||<:>'''5대 배기현 콘스탄틴 주교''' ||→||<:>현직|| [[대한민국]] [[가톨릭]] 교회의 제5대 [[마산교구]]장. 세례명은 '콘스탄틴'이다.[* 세례명인 콘스탄틴은 미국식 발음이고 콘스탄티노는 라틴어식 발음이다. 어느것으로 적어도 상관은 없으나 [[http://cathms.kr/xe/A_1|천주교 마산교구 홈페이지]]나 [[http://www.hankookilbo.com/v/fe1141fc75a44301b909c2fbe330f8b9|언론]]에서도 콘스탄틴이라 기입하고 있으며, 생애 부분에 영화 '''콘스탄틴 대제'''에서 영감을 얻어 세례명을 적었다고 하고 있으므로 '''콘스탄틴'''으로 기록한다.] 사목표어는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Caritas omnia sustinet, 1코린 13,7)이다. [목차] == 생애 == === 사고뭉치 학창시절 === [[1953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배기현 주교는 아버지가 대학교 영문학 교수, 어머니가 의사라는 그 시기에 보기 힘든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다른 주교들이 대부분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것과 달리 배 주교의 아버지는 종교가 없었고 어머니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 5살 때 [[마산]]으로 이사했는데, 집 근처에 마산 월남동 성당이 있었고 '''[[예수]]님이 있는 곳이라면 장소는 상관 없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성당에서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배 주교는 학창시절을 상당히 방황하면서 보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고, [[마산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4번이나 정학을 당할 만큼 문제아로써 학창시절을 보낸 것이다. 자유로운 종교관을 가지고 있던 어머니는 아들이 종교를 가지고 마음을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성당에 다녀볼 것'''을 권유하였으며,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께 용돈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마산 월남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당시에 유행했던 영화인 [[콘스탄티누스 1세|콘스탄틴 대제]]의 주인공을 보고 [[콘스탄틴]]이라고 정했다고 한다. === 방황했던 신학생 시절 ===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재수를 하던 배 주교는 문득 [[신부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신학교를 목표로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집안이 [[천주교]]랑 관련이 전혀 없었고 어머니가 [[개신교]] 신자였지만 배 주교의 신학교 입학을 전혀 막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학창시절에 유명했던 --불량한-- 행실로 인해 성당 신자들에게 '''"네가 [[신부(종교)|신부]]가 되면 개도 신부가 되고, 소도 신부가 된다."'''(배 주교 교구장 착좌 연설 중) 라거나 '''"저런 망나니 같은 애가 무슨 신학교냐? 절대 오래 못 있는다."'''고 할 정도로 걱정을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주교님까지...~~ 당시 마산교구 신학교였던 [[광주가톨릭대학교|대건신학대학]]의 면접에서도 0점에 가까운 교리시험 점수와 학적부에 적혀 있는 4번의 정학을 보고서 면접관이던 교수 신부가 "네가 어떻게, 왜 신부가 되려고 하느냐?"라고 묻자 '''"저는 친구를 좋아하는데, 친구들을 만나고 들어와서 혼자 앉아 있으면 그렇게 쓸쓸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찾아가면 '왜 쓸쓸한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비록 행실과 교리시험 점수에서 낙제점을 받았지만 진심 어린 답변으로 인해 신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유분방했던 그에게 엄격한 신학교 생활은 고역이었다고 한다. 특히 새벽 [[미사]] 시간이 고역이었는데 미사에 거의 매일 빠졌다고 전해진다. 담당 사감신부는 당시 마산교구장이었던 [[장병화]] 요셉 주교에게 "신앙심이라는 것은 단 한 톨도 없다."라고 적은 평가서를 보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신학생이었던 배 주교를 아꼈던 장 주교는 그 평가서를 책상 속에 집어넣고 모른 척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변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배 주교는 신학교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2학년 1학기 때 신학교를 나오게 된다. 원래는 1학년 2학기 때 퇴학 위기까지 갔는데 [[1972년]] [[10월 유신]]으로 모든 학생들에게 귀가조치가 내려져서 퇴학은 면했다고 한다.[* 원래 항목은 [[3선 개헌]]으로 되어있었는데, 그러면 [[1969년]]으로 시기에 맞지 않는다.] 자퇴한 것이 아니고 휴학했는데, 이 때 어머니가 가장 슬퍼하셨고 아들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천주교로 개종까지 하게 된다.[* 배 주교의 어머니 전풍자 모니카 여사는 1973년 마산에서 개원의 생활을 접고 소외되고 가난한 한센인들이 사는 [[소록도]]에서 헌신적인 의료 활동을 펼쳤다. 1981년 '용신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8년 작고.] "그동안 너무 편안하게 살았다."는 생각을 한 배 주교는 군대에 입대하였다. 그래도 다시 신학교에 돌아가고 싶었는지 "신학교에 돌아가려면 고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특전사]] [[공수부대]]병으로 지원하였다. 낙하훈련을 받던 중에 허리와 무릎을 심하게 다쳤고,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던 그는 평생 허리통증을 얻게 되었다.[* 지금까지 11번의 허리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제대 후 신학교에 돌아갔다. 제대 후 신학교의 생활은 이번에는 부상으로 인한 건강상 사유로 휴학을 자주 하였지만 그렇게 행복했다고... === 마산고 사고뭉치, 신부가 되다 === 남들은 신학교 입학 후 10년의 양성과정을 거치면 신부가 되었지만, 배 주교는 신학교 시절 방황과 건강상 사유로 인해 12년 만인 1985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어머니는 "죄 많은 집안에서 신부가 나왔다."며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출신 성당인 마산 월남동성당에서 첫 [[미사]]를 집전하는데, 제대 위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배 주교를 보고 많은 신자들이 믿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이 소식은 마산 시내에 퍼져서 '배기현 사제 서품'은 '''[[마산고등학교]] 3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고 한다.[*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의 증언. 이분은 [[1975년]] 이미 서품을 받으셨다. 다만 배기현 주교가 [[광주가톨릭대학교]] 출신이므로 인연이 있을 수 있다.] 사제서품과 동시에 남해성당 주임신부로 사제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89년부터 1996년까지 7년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과 [[독일]] 뮌헨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다. 귀국 후에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지냈고 [[미국]]에서의 2번의 교포사목과 사천성당 주임신부와 덕산성당 주임신부를 지내다가 2015년 1월부터 [[천주교 마산교구]] 총대리 겸 사무처장으로 봉직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배 주교는 교구의 살림을 알뜰히 챙기면서도 사회정의를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였는데, 세월호 2주기 미사에서 "[[세월호 참사]]는 [[천민자본주의]]에 찔린 [[물고기]]"라고 강론을 하고 [[통일]] 세미나를 주재하는 등의 여러가지 사회 참여적인 모습을 보였다. 또한 "65세에 은퇴하여[* 천주교 성직자들의 정년은 75세이다.] 거리의 악사로 살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했을 만큼 음악에도 조예가 깊다. 여러가지의 [[성가]]와 미사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 주교 서품 이후 === [[2016년]] 4월 19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을 표명한 마산교구장 [[안명옥]]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의 사임청원을 받아들이고 배기현 신부를 마산교구장 주교로 서임하였다. 그해 6월 8일 주교 승품과 동시에 [[천주교 마산교구]]장으로 착좌하여 공식업무를 시작하였다. 그 동안의 사제생활 동안 특유의 유머를 보여주던 배 주교는 [[http://www.idom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510965|착좌미사중 축하식 중 여러 축사에 이은 배주교의 답사에서 첫 마디를 --매우 심각하게--'''"일이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사제 서품을 받던 날 죄 많은 집안에 신부를 주셨다고 제 어미가 통절히 울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훌륭해서 (주교로) 뽑힌 게 아니라 불쌍해서 불러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겸손해서 혹은 겸손을 가장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사실이 그러합니다", "배 주교는 지금도 사제, 주교가 된 것에 대해 ''''기가 차다''''고 말한다." 등의 발언... --[[클레이튼 커쇼|커쇼]] + [[트라웃]] 급 셀프디스-- 특히 미사 후에는 쾌활한 성격을 보여주듯 신자들을 직접 만나 기쁨을 나누기도 하였다. 평소에 주교를 알았던걸로 추측된 청년들이 가서 "주교님 오늘 멋있으셨어요~~~~" 하니까 주교는 "야C 멋있는기 뭐꼬? 더워 죽는줄 알았다" 라고 하였다. 한 어린이에게는 '''"너 엄마 말씀 잘 들어야 해. 안 그러면 장가도 못 가고 나처럼 되는 거야"'''라고 --셀프디스-- 말을 하여 신자들을 웃음 바다로 만들기도 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a0Y8kZ7hiIY|# 증거 영상!]] [[분류:종교인]] 배기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