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분류:부산광역시]][[분류:산]] [include(틀:프로젝트 문서,프로젝트=나무위키 동남권 프로젝트)] http://t1.daumcdn.net/news/201605/11/nocut/20160511180301996mqoa.jpg [[부산광역시]] [[연제구]]와 [[수영구]]에 걸쳐 있는 야산. 정상부는 해발 256.3m로, [[목포]] 유달산보다 조금 높고 [[서울]] [[남산(서울)|남산]]보다 조금 낮은 정도다. 부산 중심부의 한복판에 위치한 산답게 근린시설이 정상 부근까지 설치되어 있으며, 현재는 사실상 주민 체육공원 정도의 기능을 수행하는 산이다. === 역사 === 부산지역 유일의 멀쩡한 [[가야]] 유적[* 가까이에 [[부산박물관#s-4.1|복천동 고분군]]도 있지만, 여기는 가보면 알겠지만 봉분이 없다. 연산동 고분군도 후에 능묘처럼 크게 보수를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개별 봉분이 남아 있지 않았던 언덕배기 느낌인 복천동 고분군과는 분위기가 다르다.]인 '''연산동 고분군'''이 배산 북부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의 성격으로 볼 때 이 지역의 수장들이 묻힌 유적으로 추정되며, 부산 [[동래]] 지역으로 비정되고 있는 [[거칠산국]][* 거칠(荒)+산(嶺)으로 오늘날 [[황령산]]의 어원이 되었다.]이 [[탈해 이사금]] 때 인물인 거도에 의해 [[신라]]에 복속된 것을 감안하면 [[가야]] 시대의 정치적 중심지로 보기는 어렵고, 일찌감치 신라의 일부로 편입된 지역이지만 신라의 영향력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던지 지역 수장들의 영향력이 오래 유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5월 이 산에 있는 고성터인 '''배산성지'''가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석성 터로 보인다는 [[부산박물관]]의 발굴조사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60511180303008|결과]]가 나옴에 따라 7세기에 축성된 기장산성보다 이전에 상당한 노동력과 기술력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전에는 이 산성이 토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이 발굴 조사에서 기단보축에다 기와 건물의 흔적까지 발견되었고, 현재도 남아있는 거칠산국 우물터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집수지(호안석축) 유적까지 발견되는 등 고대-신라시대 부산 지역사 연구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산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부산대학교]] 유동석 교수는 이 산의 이름이 잔 배(盃) 자를 쓰는 것이 '술잔을 엎어 놓은 모양'이어서가 아니라 '잣('성'의 옛말)'이 '메('산'의 옛말)'와 만나 [[자음동화]]가 이루어지는 바람에 '''잔메'''가 되었다고 주장하며, 단순히 산의 모양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성이 있었던 옛 중심지'로서의 산의 기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후에는 [[동래]]현의 치소지가 이 산의 남쪽에 들어섰다. 현재의 망미동 [[병무청]] 자리에 동래현 치소지가 있었으며, 후에 동래부가 지금의 [[동래구]] [[칠산동]]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동래 지역의 중심으로 기능했다.[* 이 자리는 현재 배산의 일부라고 보기 어려운데, 도시개발로 인해 배산 동쪽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고려 [[의종(고려)|의종]] 때 측신 정서가 동래로 귀양 왔을 때는 이 산의 동북쪽 끝자락에 '''과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오이를 키우며 왕의 부름을 기다리기도 했고, 이 결과 우리 문학사상 유일의 작가가 알려진 고려가요인 [[정과정]]이 탄생했다. 이 노래가 충신연주지사(연군가)의 시조격으로, [[정철]]의 가사문학에(!) 영향을 준 작품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만악의 근원]]인 셈. ~~쪼끄만 동네 야산 주제에 전국 수험생들을 괴롭히는 주범이라니~~ 지금은 도시개발에 따라 배산 동쪽이 끊어지는 바람에, [[정과정]] 유적은 배산의 일부라기보다는 [[수영강]]변의 유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찾기가 쉽지만, 이 영향으로 [[토곡]]을 가로질러 [[온천천]]을 따라가는 길의 이름이 [[과정로]]로 명명되어 있으니 의외로 역사적으로 의의가 깊은 산이다. <동래부지>(1740)에는 '''척산(尺山)'''이라는 이름의 산이 등장하는데, 아마도 이 산을 일컫는 말로 추정된다. === 주변 지리 === 주봉인 배산 정상부를 포함해 산의 대부분이 [[연제구]] [[연산동(부산)|연산동]]에 포함되고, 나머지 부분은 [[수영구]] 망미동과 살짝 접해 있다. 옛 배산 영역 전체를 두고 이야기한다면 망미동과는 살짝 접해 있는 수준이 아니라 망미동 전역이 배산 자락이 되고, [[정과정]] 유적지가 있는 [[수영강]] 서안까지가 모두 배산이었다. 남쪽으로는 연산6동, 연산3동을 사이에 두고 [[금련산]]과 마주보고 있으며, 예전에는 백양산과 쇠미산처럼 연결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래도 부산의 대표적 인구포화지역인 [[토곡]]과 [[망미동]]을 끼고 있다 보니, 문자 그대로 산을 빙 둘러 가며 각종 아파트, 학교 및 교육시설, 공공기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아파트는 [[페르마의 대정리|너무 많아서 적을 여백도 없을 지경이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자세한 설명은 패스하고]](...), 초등학교는 배산초, 연동초, 동명초, 연일초가 각각 산의 동서남북을 끼고 들어서 있고, 중학교 역시 망미중, 연제중, 연산중, 연일중, 연천중이 들어서 있다. ~~초등학교보다 중학교가 더 많은 것 같은 건 기분 탓이 아니다~~ 고등학교도 [[부산외국어고등학교|부산외고]], 남일고, 연제고의 3개교가 들어서 있으며, 특수학교인 [[동암학교]], 2년제 전문대학인 [[부산경상대학교]]까지 배산을 끼고 있어 초,중,고,대,특수학교까지 그야말로 있을 건 다 있는 산이다. 물론 부산은 [[금정산]], [[금련산]], [[승학산]], [[장산]], [[백양산]], [[구덕산]], [[윤산]] 등등 대학을 끼고 있는 산이 유독 많기는 하지만, 언급된 다른 산의 규모와 배산의 규모를 비교하면 잘 쳐줘야 [[매미]]와 [[파리(곤충)|파리]] 정도의 차이니(...) 배산이 얼마나 붐비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거기다 부산과학교육원, 부산영재교육진흥원, 부산교육연수원은 덤.[* 세 건물 모두 [[부산외고]] 뒤쪽 부지에 모여 있다.] ==== 버스 노선 ==== * [[부산 버스 54|54번]], [[부산 버스 100-1|100-1번]] - [[연산터널]]을 통해 아예 배산을 관통 * [[부산 버스 36|36번]], [[부산 버스 49|49번]], [[부산 버스 86|86번]], [[부산 버스 87|87번]], [[부산 버스 99|99번]], [[부산 버스 189-1|189-1번]] - 북쪽 [[연산8동]], [[연산9동]] 방면 및 서쪽 [[연산역]] 방면 * [[부산 버스 5-1|5-1번]], [[부산 버스 20|20번]], [[부산 버스 51|51번]], [[부산 버스 62|62번]], [[부산 버스 63|63번]], [[부산 버스 131|131번]], [[부산 버스 141|141번]] - 남쪽 [[배산역]], 망미동 방면 * [[부산 버스 57|57번]] - [[충렬사역]] 방면에서 연안교를 넘어와 북쪽 과정로, 동쪽 [[토곡]], 남쪽 망미동 및 [[배산역]]을 돌아 [[양정역]] 방향으로 나간다. 즉 배산의 서쪽 [[연산역]] 방면만 제외하고 배산을 한 바퀴 싹 돌고 나가는 셈. ==== 도시철도 역 ==== * [[부산 도시철도 1호선]] - [[연산역]] * [[부산 도시철도 3호선]] - [[연산역]], [[물만골역]], [[배산역]] [* [[망미역]]은 배산 옛 동쪽 부분(주공아파트)과는 가깝지만 현재 의미에서의 배산과는 거리가 좀 있다.]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프로젝트 문서 (원본 보기) 배산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