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정치인/목록]] [include(틀:국내 정치인)] http://tv03.search.naver.net/thm?size=80x100&quality=9&q=http://people.phinf.naver.net/20150430_107/14303250365615yehP_JPEG/yonhapnews_28441886.jpg?width=150 白寬洙 1889 ~ ? [[대한민국]]의 정치가, 언론인, 교육자이자 제헌의회 국회의원. 본관은 수원이며 호는 근촌(芹村). 1899년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이다. 1915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창업주이자 중앙학교 교원으로 있엇던 인촌 [[김성수(1891)|김성수]]가 속한 중앙학교에 들어가 교원이 되었다. 인촌과는 동향인이자 친한 사이로 알려졌으며 전북 부안 청련암에서 [[송진우]], 김성수와 함께 동문을 수학하였던 사이이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 대학]]에 입학하고 1919년 2.8 독립운동에 참가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투옥되었으며 1924년 졸업하여 귀국하고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상무를 지냈다. 1937년 동향인이자 친구인 인촌 김성수가 설립한 [[동아일보]]에 들어가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었다가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송진우]]의 후임으로 동아일보 사장이 되었다. 1940년 [[동아일보]]가 폐간되었을 때 [[조선총독부]]로부터 체포되어 투옥되었고 1945년 [[8.15 광복]] 후 [[한국민주당]] 총무가 되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민주당 후보로 고창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2년 후인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신용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쟁 중 [[조선인민군|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다. 일설로는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내 정치인 (원본 보기) 백관수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