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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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寬洙
1889 ~ ?

대한민국의 정치가, 언론인, 교육자이자 제헌의회 국회의원. 본관은 수원이며 호는 근촌(芹村).

1899년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이다. 1915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창업주이자 중앙학교 교원으로 있엇던 인촌 김성수가 속한 중앙학교에 들어가 교원이 되었다. 인촌과는 동향인이자 친한 사이로 알려졌으며 전북 부안 청련암에서 송진우, 김성수와 함께 동문을 수학하였던 사이이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 대학에 입학하고 1919년 2.8 독립운동에 참가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투옥되었으며 1924년 졸업하여 귀국하고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상무를 지냈다.

1937년 동향인이자 친구인 인촌 김성수가 설립한 동아일보에 들어가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었다가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송진우의 후임으로 동아일보 사장이 되었다. 1940년 동아일보가 폐간되었을 때 조선총독부로부터 체포되어 투옥되었고

1945년 8.15 광복한국민주당 총무가 되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민주당 후보로 고창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2년 후인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신용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쟁 중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다. 일설로는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