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목차] == 개요 == '''White --Tiger Warning-- Australia Policy.'''[* '''백인을 선호하는 白好主義가 아니다!''' 백호주의라는 말은 '''[[백인]]의 [[오스트레일리아]]주의'''(White(白) Australia(濠) 주의(主義))라는 뜻이다. 따라서 백호주의라는 말을 호주 이외 다른 나라의 상황에 사용하는 것은 오류이다. ] 호주 연방 형성 당시부터 몇십년에 걸쳐, 백인 이외의 인종(특히 동양인)의 이민을 배척하고 백인 사회의 동질성을 유지하겠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인종 차별적인 이민 정책들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1851년 호주에 대량의 [[금(원소)|금]]광이 발견되자 [[골드러시]]가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중국인]] 노무자들이 대량으로 유입되었다. 이들은 낮은 임금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들끼리 고립되어 살았기 때문에, 임금 저하의 원인이 되는 이들의 이민을 제한하자는 주장이 일어났다. 바로 이것이 백호주의의 근원이었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en/thumb/8/89/Ac.whiteaustralia.jpg/200px-Ac.whiteaustralia.jpg 1910년대 '호주 원주민 협회 (Australian Natives' Association)'에서 발행한 배지. 웃기는 것은 이 호주 원주민 협회의 구성원들 중 호주 원주민(애버리지니 aborigene)은 단 한 명도 없고 '''전부 백인이었다는 것이다.''' 동양인의 이민을 제한하는 방법으로는 어학 시험 등이 있었다. 물론 백인에게는 면제였고, 영어를 아는 동양인에게는 [[그리스어]](!) 시험을 치르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동양인의 호주 이민을 차단했다. 그리고 원주민들에게 가혹하게 대해서 1920년대에 들어와서야 원주민 인구 감소가 멈추었고 그 이후에도 상당수 원주민들의 자녀들을 백인 집안에 강제 입양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고유의 문화를 지키던 원주민들을 "자연유산"으로 간주하며 투표권도 주지 않았다. 그 결과 1930년대 말에는 호주 인구의 98%가 영국-아일랜드계였다. 백호주의 정책은 197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다가 철폐되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전쟁 난민들이 백호주의가 사라진 뒤로 호주에 처음으로 온 이민자였다. 철폐 이유는 바로 이러한 백호주의가 아시아 나라들의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츰 다른 아시아 나라들 경제 사정이 좋아지면서 점차 호주 측은 무역이나 외교에서 아시아 나라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물론 [[원네이션 파티]]같이 여전히 백호주의를 주장하는 정당이나 세력은 있다. 백호주의가 없어졌지만 사실 백호주의 사상과 개념을 아직도 가진 호주계 백인들이 많기 때문에 특히 [[퀸즐랜드]] 쪽이나 시내를 벗어나면 더욱 그런 성향을 볼 수 있다. 백호주의의 시대와 영향을 받은 세대가 아직 남아있는 결과이기 때문에 자연스럽다고 볼 수도 있고 특히 한국에서는 호주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사건을 비롯해서 호주를 까는 하나의 요소이기도 하다. 현재는 호주 인구의 12%(혼혈 포함)가 아시아계라고 하고 그 수치는 계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멜버른]], [[시드니]], [[브리즈번]] 같은 큰 도시는 아시아 인구가 비율적으로 훨씬 많기 때문에 밀도상으로 보면 아시아계가 정말 많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유명한 호주내 대학교를 가면 아시아인들이 백인들보다 더 많은 현상을 볼 수도 있다. == 관련 항목 == * [[오스트레일리아]] * [[인종차별]] * [[아파르트헤이트]][* 백호주의가 천국으로 보일 정도로 지독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 * [[백인우월주의]] * [[황인]] *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 [[원네이션 파티]] [[분류:인종차별]] 백호주의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