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111/01/htm_201111010595730103011.jpg 사공이 들고 있는 건 노가 아니라 삿대다. [[배]]를 부리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줄여서 '''사공'''(沙工)이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선부'''(船夫), '''선인'''(船人), '''초공'''(梢工)이라고 한다. 때때로 [[안강망]] [[어선]]의 선장을 사공이라고 하며, [[뗏목]]를 엮어 [[운항]]하는 사람을 '뗏사공'이라고 한다. 큰 배를 여러 명의 사공이 부릴 때 가장 [[우두머리]]가 되는 사공을 '도사공'이라고 하였으며, [[관]]에서 설치한 [[나루]]의 사공은 '진부(津夫)'라고 하였다. 진부의 수는 나루의 크기에 따라 달랐으며, 이들에게 지급한 전결(田結) 또한 달랐다.[* 큰 나루에는 10결 50부를 지급했으며, 중간 나루에는 7결, 작은 나루에는 3결 5부를 지급하였다.] 진부들이 배를 부리다 배가 뒤집혀서 사람이 빠졌을 때 반드시 구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곤장]] 100대를 맞았다. 배의 종류에는 관에서 부리는 배인 '관선'과 일반 개인이 부리는 '사선'이 있었으며, 배삯은 시기와 이용자에 따라 달랐다. 또한 [[낮]]보다는 [[밤]]에 이용할 때 몇 배나 더 많은 값을 --그러니까 한마디로 야간할증-- 받았으며, 배삯은 보통 [[무명]]을 사용했다. 민간에서는 [[마을]] 공동으로 배를 마련하고 사공을 두었는데, 사공은 나루터 근처에 마을 사람들이 마련해 준 '사공막'이라는 [[집]]에서 살며 [[봄]]과 [[가을]]에 마을 사람들이 추렴해 준 [[곡식]]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 [[강]]을 건널 때는 따로 배삯을 내지 않았다. 사공의 신분은 [[천민]]으로, 자손에게 [[세습]]되었다. 산업화 이전까지 남아 있던 직종이었다. 서울 주변에도 1960~70년대까지 남아 있었지만, 나루터가 다리로 대체되면서 사라져 간 직종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각종 지자체에서 관광용으로 운행하는 재래식 나룻배에서 노를 젓는 사공 이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 신화]]에는 [[저승]]에 흐르는 강인 [[아케론]]에서 배를 부리는 [[카론]]이라는 뱃사공이 등장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다. 리더 없이 여러 사람이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일이 제대로 흘러가지 못함을 비유한다. [[http://akswp1224.blog.me/50097201181|그런데 현실이 되었다.]] 전쟁에서 요충지 기동과 보급 주도권을 잡는다면 승기가 넘어오기 때문이다. [[메흐메트 2세]]가 시행하여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기까지 한 역사도 존재한다.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s-3.3|이것이 공성전이다]]. (1453년, ~~[[계유정난]] 일어난 무시무시한 해~~)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콘스탄티노플]] [[보스포루스 해협]] 교역로가 차단되면서 밥줄이 끊긴 [[뱃사공]]들은 지중해를 벗어나 대서양으로 진출하게 되고 세상은 [[대항해시대]]를 맞는다. 이후 대양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커다란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안전하게 [[순양함|순양하는]] [[전열함|큰 배]]가 만들어지고, [[군함/등급]]이 산으로 가고, 이 배들을 잡기 위해 [[거함거포주의]]에 집착하다가, [[야마토급 전함]]까지 와서는 예산은 없는데 "[[뱃사공|승조원]]이 많이 필요해서 배가 바다로 못나가는" 우려가 현실이 되기도 하였다. ~~설명이 산으로 갔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뱃사공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