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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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이 들고 있는 건 노가 아니라 삿대다.

를 부리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줄여서 사공(沙工)이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선부(船夫), 선인(船人), 초공(梢工)이라고 한다. 때때로 안강망 어선의 선장을 사공이라고 하며, 뗏목를 엮어 운항하는 사람을 '뗏사공'이라고 한다.

큰 배를 여러 명의 사공이 부릴 때 가장 우두머리가 되는 사공을 '도사공'이라고 하였으며, 에서 설치한 나루의 사공은 '진부(津夫)'라고 하였다. 진부의 수는 나루의 크기에 따라 달랐으며, 이들에게 지급한 전결(田結) 또한 달랐다.[1] 진부들이 배를 부리다 배가 뒤집혀서 사람이 빠졌을 때 반드시 구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곤장 100대를 맞았다.

배의 종류에는 관에서 부리는 배인 '관선'과 일반 개인이 부리는 '사선'이 있었으며, 배삯은 시기와 이용자에 따라 달랐다. 또한 보다는 에 이용할 때 몇 배나 더 많은 값을 그러니까 한마디로 야간할증 받았으며, 배삯은 보통 무명을 사용했다.

민간에서는 마을 공동으로 배를 마련하고 사공을 두었는데, 사공은 나루터 근처에 마을 사람들이 마련해 준 '사공막'이라는 에서 살며 가을에 마을 사람들이 추렴해 준 곡식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 을 건널 때는 따로 배삯을 내지 않았다.

사공의 신분은 천민으로, 자손에게 세습되었다.

산업화 이전까지 남아 있던 직종이었다. 서울 주변에도 1960~70년대까지 남아 있었지만, 나루터가 다리로 대체되면서 사라져 간 직종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각종 지자체에서 관광용으로 운행하는 재래식 나룻배에서 노를 젓는 사공 이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 신화에는 저승에 흐르는 강인 아케론에서 배를 부리는 카론이라는 뱃사공이 등장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다. 리더 없이 여러 사람이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일이 제대로 흘러가지 못함을 비유한다. 그런데 현실이 되었다. 전쟁에서 요충지 기동과 보급 주도권을 잡는다면 승기가 넘어오기 때문이다. 메흐메트 2세가 시행하여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기까지 한 역사도 존재한다. 이것이 공성전이다. (1453년, 계유정난 일어난 무시무시한 해)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콘스탄티노플 보스포루스 해협 교역로가 차단되면서 밥줄이 끊긴 뱃사공들은 지중해를 벗어나 대서양으로 진출하게 되고 세상은 대항해시대를 맞는다. 이후 대양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커다란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안전하게 순양하는 큰 배가 만들어지고, 군함/등급이 산으로 가고, 이 배들을 잡기 위해 거함거포주의에 집착하다가, 야마토급 전함까지 와서는 예산은 없는데 "승조원이 많이 필요해서 배가 바다로 못나가는" 우려가 현실이 되기도 하였다. 설명이 산으로 갔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1. 큰 나루에는 10결 50부를 지급했으며, 중간 나루에는 7결, 작은 나루에는 3결 5부를 지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