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4.bp.blogspot.com/_8KAHrPLwK4s/SxUh7lsKllI/AAAAAAAAAfc/kKBjLAnv6Q4/s640/Blyleven1.jpg [[리즈시절]] [[파일:/-0pN9Dxkgl-s/TixR7UQytwI/AAAAAAAACWE/0To1ZMJjfHY/s1600/bert_blyleven-HOF.jpg]] [[간지]]난다 http://www.razzball.com/wp-content/uploads/2009/01/blylevenfarting.JPG [[방귀|(...)]] || 이름 || Bert Blyleven / Rik Aalbert Blijleven (릭 알버르트 블레일레번)[* 앞의 것은 영어식, 뒤의 것은 네덜란드식.] || || 생년월일 || [[1951년]] [[4월 6일]] || || 국적 || 미국 || || 출신지 || [[네덜란드]] 자이스트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1970년 드래프트 3라운드([[미네소타 트윈스]]) || || 소속팀 || [[미네소타 트윈스]](1970~1976) [br] [[텍사스 레인저스]](1976~1977) [br] [[피츠버그 파이어리츠]](1978~1980) [br] [[클리블랜드 인디언스]](1981~1985) [br] [[미네소타 트윈스]](1985~1988) [br]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캘리포니아 에인절스]](1989~1992) || [include(틀:미네소타 트윈스 영구결번)] ||||<#082574><:>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white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white 헌액자}}}''' || ||||<:>http://baseballhall.org/sites/default/files/blyleven_bert.png?width=250|| ||||<:>'''[[http://baseballhall.org/hof/blyleven-bert|버트 블라일레븐]]'''|| || 헌액 연도 || [[2011년]] ||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 투표 결과 || 79.7% (14회) || [목차] == 개요 ==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를 대표하는 레전드 우완 선발 투수로 1900년대 이후 태어나서 60완봉승을 기록한 4명 중 한 명이자, 은퇴 시점 당시 통산 탈삼진 부문 3위를 기록했으며 역대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태생 야구선수. 하지만 '''지지리도 운이 없던 투수'''라는 수식어가 더 유명하다. 통산 성적은 23시즌 동안 287승 250패, 3.31ERA, 4970이닝, 3701삼진[* [[놀란 라이언]], [[랜디 존슨]], [[로저 클레멘스]], [[스티브 칼튼]]에 이은 역대 5위.], 1322볼넷, K/9 6.7, BB/9 2.39, K/BB 2.79, HR/9 0.77, 242완투 60완봉을 기록했다. == 선수 생활 == 고향은 네덜란드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2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5살이 되던 해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가족이 정착했다. 그가 어린 시절에는 [[LA 다저스]]가 [[샌디 코팩스]]를 앞세워 메이저리그를 평정고 있었는데, 어린 블라일레븐은 쿠팩스의 커브볼을 보고 배우면서 야구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0년 [[미네소타 트윈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이미 완벽하게 마스터한 커브를 주무기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미네소타가 이 당시 짧은 1970년대의 중흥기를 끝내고 암흑기로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점(...) 결국 뼈빠지게 던졌는데도 승률은 영 좋지 않았다. 결국 이 당시 [[사이 영 상]]의 트렌드가 승률을 비교적 중시했다는 점 때문에 매번 평균자책이나 탈삼진에서는 좋은 성과를 내고도 사이 영 상 투표와는 선수 생활 내내 인연이 없었다. 그리고 부진한 팀 성적 + '''삼진을 잡는 이기적인 투구'''(...)라는 팬들의 비난 + 연봉 요구가 겹치면서 결국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텍사스에서 노히트게임을 달성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전국 방송에서 방송 카메라에 [[김병현|법규를 날리는]] 대형 사고를 친 것. 비인기팀이라서 전국 방송이 귀했던 팀 사정상 대형 사고였고, 결국 이 때문에 구단주에게 찍혀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트레이드된다. 다행히 피츠버그에서는 사고를 치지 않고, 1979년 월드시리즈에도 나가 활약하며 생애 첫 우승반지를 차지했다. 그러나 완투 욕심 때문에 팀과 또 충돌해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클리블랜드에서는 어깨가 아프면서 고전했지만, 슬로 커브라는 무기를 장착하며 다시 일어섰고, 1985년 중반부터 다시 [[미네소타 트윈스]]에 합류했다. 그리고 1987년 미네소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블라일레븐은 생애 PO에 진출한 것이 딱 3번인 1970년과, 1979년, 1987년인데, 이 1979년과 1987년 두 번의 PO에서 모두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차지했다. 선수 경력은 불운했지만, 우승복은 나름대로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부진해 1989년 다시 [[LA 에인절스|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트레이드되었지만, 1989년 부활에 성공하며 선수 생활을 더 연장했다. 그러나 세월은 이길 수 없었는지, 어깨가 다시 아프면서 결국 커리어를 마감하게 되었다. == 피칭 스타일 == http://pds21.egloos.com/pds/201601/30/81/f0139781_56ac80460b2e2.gif [[파일:/pds/201601/30/81/f0139781_56ac805ea7e8e.gif]] 메이저리그 역사상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커브볼]]이 그의 주 무기였다. 커브 레파토리도 다양해서 낙차 12 to 6 커브, 사이드암 모션에서 기습적으로 나오는 커브, 그리고 부상 후에 개발한 슬로 커브 세 종류를 섞어 던졌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의 커브에 대해 평가하고 자신의 커브와 비교하는 영상도 있다. [[http://mlb.mlb.com/video/play.jsp?content_id=13081949&topic_id=&c_id=mlb&tcid=vpp_copy_13081949&v=3|#]]] 그의 우상이었던 [[샌디 코팩스]]가 극단적인 오버스로로 커브를 던지다가 무리한 폼으로 부상이 왔던 것과 달리, 그의 폼은 대단히 부드러워서 20년 넘는 선수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 특히 선천적으로 손가락이 길어서 커브를 던지는데 대단히 유리했다고. ~~그래서 법규도 자신감 있게 날렸나보다~~ 투구 스타일은 공격적이었다. 볼넷을 싫어하고, 볼넷보다는 차라리 솔로 홈런이 낫다는 자세로 투구에 임했다.[* 그가 현역으로 뛴 시대가 투고타저 시대였음에도 스테로이드시대 투수들보다 많은 430개의 통산 피홈런을 기록했지만(...) HR/9을 계산해보면 0.77로 준수한 기록이다. 23시즌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동안 5000이닝 가까이 이닝을 소화하다 보니 피홈런 수치가 누적된 것으로 보는게 타당할듯하다.] 그 결과 메이저리그 역대 한 시즌 최다 피홈런 기록인 50개의 홈런을 맞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이런 공격적인 투구 스타일 덕분에 투구수를 아끼면서 오래 던질 수 있었고, 그 결과는 메이저리그 역대 9위에 해당하는 60번의 완봉승으로 나타났다. [[이닝 이터]]이자, 완투를 밥먹듯이 했던 투수였기 때문에 팀에서는 굉장히 귀중한 존재였다. 다만 지지리도 운이 없었는데, 특히 승률이 너무 좋지 않았다. 평균자책에서 7번이나 5위 안에 들었지만, 그 시즌들의 평균을 내봤자 겨우 17승(...) 결국 20승을 딱 한 번 해보는 통에 임팩트가 떨어졌고, 많은 패전은 이 당시 사고 방식이 "패전은 곧 투수 책임"인지라 결국 블라일레븐은 별로인 투수로 이어졌다. 아니 애당초 탈삼진왕도 한 번 밖에 못해서 은퇴한 당시 "와, 블라일레븐이 이렇게 삼진을 많이 잡았어?"라고 말했을 정도라니 그야말로 현역 시절의 승복은 [[안습]]. == 명예의 전당 입성 == 한 마디로 요약해서 '''개고생하다가 겨우 들어갔다.''' 2011년 투표에서 입성했는데, 이것이 투표 14수였다. 역시 그 놈의 승률 및 임팩트 부족이라는 것이 이유.[* 그의 커리어 시믈러리티를 보면 [[돈 서튼]]이 있는데, ERA 3.26에 5282.1이닝 동안 3574K를 기록한 서튼의 디시젼은 '''324-256'''.] 사실 명예의 전당이 꼭 300승을 못해도 얼마든지 들어간다고 할 때, 300승을 못했다는 것은 이유가 안 되며[* 대표적으로 시카고 컵스의 영구결번자이자 커리어 시믈러리티 스코어에서 블라일레븐과 890점을 기록한 [[퍼거슨 젠킨스]]가 있다. 젠킨스의 성적은 284-226 3.34 4500.2이닝 3192K 조정ERA 115. (다만 1971년에 [[사이영상]]을 한번 탔다.)], 조정평균자책도 118이지만, 이거 넘는 양반은 [[톰 시버]]와 [[짐 파머]] 뿐. 게다가 타이틀복도 별로 없어서 올스타전 참가가 2회, 타이틀을 따낸 것은 탈삼진왕 1회. 그리고 사이영상 투표는 3위만 2번. '''아무래도 법규를 날린게 [[영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나보다(...)''' 여기에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라기보다는 이 팀 저 팀을 떠돌아다니는 선수였기 때문에 투표에서 소위 말하는 텃밭이 없었던 점도 컸다. 굳이 따지면 미네소타의 암흑기 에이스기는 한데, 미네소타에서도 9시즌 반을 뛰어서 제일 긴 것이지, 여타 명예의 전당 선수들처럼 10시즌 이상 뛴 경력은 없다. 그가 뛴 22시즌에 비하면 미네소타의 9시즌 반도 사실 짧은 셈. 결국 프랜차이즈를 대표하는 속성이 작었다는 점이 그의 임팩트를 더 낮춘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투표 초기에는 30%대의 낮은 투표율을 보였지만, 점차 [[세이버메트릭스]]의 영향력이 커지고, 특히 세이버메트리션들이 블라일레븐의 명예의 전당 입성을 지지하면서 결국 14수만에 입성에 성공했다. 이 입성은 [[놀란 라이언]] 이후의 첫 선발투수 입성이라고. [[http://mlb.mlb.com/video/play.jsp?content_id=13080533|명예의 전당 헌액을 기념하여 커리어를 되돌아보는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ireBpb0jcOI|명예의 전당 입성 기념 인터뷰]] http://www4.pictures.zimbio.com/gi/Roberto+Alomar+Pat+Gillick+National+Baseball+ADDgFgVZ_0Xl.jpg 명단장 [[팻 길릭]], 최고의 2루수 [[로비 알로마]]와 함께 2011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 그런데 블라일레븐의 입성이 명예의 전당 기자단 투표와 베테랑 위원회 투표에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http://www.baseball-reference.com/players/b/blylebe01.shtml|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 제공하는 블라일레븐의 커리어 시믈러리티 스코어에서는 [[토미 존]], [[짐 캇]], [[게일로드 페리]][* 삼수 끝에 입성했는데 단순 성적만 보면 첫 해 입성이 당연시되는 엄청난 성적을 올렸다. 다만 알다시피 부정투구로 이룩된 거라서..], [[퍼거슨 젠킨스]][* 역대 명예의 전당 헌액 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세 번째 입성은 절대로 늦은 게 아니다. 젠킨스도 세번째 투표에서 입성했는데 300승을 하지 못했으며 승률이 뛰어나지 않은 점, 방어율이 비교적 높은 점 등에 비춰보면 빨리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등 그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외면받아왔거나 오랫동안 득표율을 올리지 못하다 겨우겨우 입성한 선수들이 많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야구계에서 혁명과도 같았던 [[토미 존 서저리]]로 야구 역사에 길이 남게 될 [[토미 존]]의 베테랑 위원회를 동한 HoF 헌액에 많은 지지가 모이고 있다. 블라일레븐의 뒤를 이을 HoF 장수생 선발투수로는 [[마이크 무시나]], [[커트 실링]] 등이 꼽히고 있다. 특히 실링의 경우는 세상을 향해 법규를 날린 흑역사가 있는 블라일레븐이나 부정투구 때문에 스캔들이 있었던 [[게일로드 페리]]처럼 핵이빨 때문에 여론이 좋지 않았던 점에서 공통점이 많이 보인다. == 은퇴 이후 == 은퇴 후에는 [[미네소타 트윈스]] TV 중계의 전속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다. 2007년 [[요한 산타나]]와 [[삭발]]빵을[* 이것은 이유가 있다. 미네소타 트윈스의 에이스이자 2004,2006년 [[사이 영 상]]을 2회 수상한 슈퍼에이스였지만 요한 산타나는 그 3시즌동안 완투가 총 5번밖에 안되었고 2006년 사이 영 상을 탔을땐 딱 한번 완투했었다. 감독 론 가든하이어가 투수의 투구수를 100구 내외에서 엄격하게 제한하는 편이기도 하나, 3년 연속 탈삼진왕에 오르는 등 삼진을 적극적으로 노리는 피칭으로 투구수가 많았기 때문. 이 때문에 블라일레븐이 "산타나는 삼진만 잡으려는 투수라 완봉승같은건 못해."라고 해설중에 깠었다. 그 말을 듣고 산타나가 욱해서 삭발빵을 건 것. 그 삭발빵을 건 인터리그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산타나는 '''대놓고''' 맞춰잡기만 노려서 '''92개'''의 공만 던지고 삼진 1개만 잡으며 게임을 끝냈다.] 걸고 산타나가 완봉승을 하면 삭발을 하기로 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1wSM4TqK8XY]] 결국 산타나가 직접 대선배 블라일레븐의 머리를 바리깡으로 밀었다. 사실 현역 시절에도 후배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장난끼가 철철 넘치는 선수였다고 한다. 현역 시절에 가장 많이 친 장난은 후배나 동료들의 풀린 스파이크에 불을 붙이는 장난이었다고. 2016년에는 시즌 초부터 [[박병호]]의 홈런쇼가 [[타겟 필드]]를 수놓으며 매우 좋아하신다(...) 비거리 기록을 싹 갈아치울 기세로 좌중우 가리지 않고 홈런을 날리는 박병호에게서 [[짐 토미]]의 향수를 느끼시는듯. 2011년 토미가 미네소타 시절 디트로이트 원정경기에서 599, 600호 홈런을 칠 당시 매우 감격적인 ~~작두~~해설을 진행하기도 했고, 타겟 필드에서 토미가 비거리 기록을 세울 때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2011년 7월 16일 그의 등번호 28번이 [[미네소타 트윈스]]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네덜란드 팀의 코치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대한민국 타선을 영봉패로 몰아넣은 네덜란드 투수진을 조련한 명 투수코치(...)로 새삼스럽게 재조명받기도 했다. 그런데 2라운드 네덜란드-쿠바전에서 화면에 잡히며 2011년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소개되자 ~~[[송재우]]가 아닌~~ 중계진은 우물쭈물하다가~~옌장 모르겠다~~__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유능한 투수코치__[* 블라일레븐의 현재 본업은 미네소타 트윈스 로컬 해설자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엔 투수로서의 업적으로 입성한거지 전문 투수코치로서의 족적은 거의 없다봐도 무방한데(...)]를 영입했다는 아스트랄한 드립을 쳤다고. [[분류:야구선수]]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미네소타 트윈스 영구결번 (원본 보기) 버트 블라일레븐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