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목차] == [[남성]] [[이름]] == Benedicto '''[[베네딕트]]'''의 [[스페인]]식 [[베리에이션]]으로, '[[축복]] 받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 [[가톨릭]]·[[정교회]]·[[루터교]]·[[성공회]]의 [[성인]] == [[라틴어]]: Sanctus Benedictus de Nursia [[이탈리아어]]: San Benedetto da Norcia [[영어]]: Saint Benedict of Nursia ||<tablealign=center><|2> http://www.discerninghearts.com/blog/wp-content/uploads/2012/07/St.-Benedict-d.jpg?height=430 || http://c85c7a.medialib.glogster.com/media/7f/7f9dbd9676ef533cb4e1e958bc7735759a7248fef9c6cc710b65ad9a7c2a63a7/st-benedict-foundersaint-b-jpg.jpg?height=405 || ||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안에 모셔진 전신상 || 생몰년은 480년 ~ 543년. 축일은 [[가톨릭]]에서는 [[7월 11일]]. [[정교회]]에서는 [[3월 14일]]. 농부, [[수도자]], 학생, [[유럽]]과 [[이탈리아]] 누르시아의 [[수호성인]]이다. 그뿐 아니라 유혹을 받는 사람, [[악마]]로부터 공격을 받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가톨릭]]의 대표적인 [[수도회]]인 [[베네딕토회]]의 창설자이다. 그의 생애를 서술한 유일무이한 문헌으로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베네딕토 전기》가 있다. 성 베네딕토가 유명해진 이유가 이 베네딕토 전기 때문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평. 베네딕토는 누르시아의 명망가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어, 수도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유모]]가 같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젊은이들이 그러했듯이 베네딕토는 수사학 등 학문을 배우기 위해 [[로마]]로 갔지만 혼란스럽고 타락한 분위기에 젖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여 학업을 중단하였다. 베네딕토는 유모와 함께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어느 도시에서 첫 기적을 일으키게 되었다. 유모는 [[밀가루]] 음식을 만들기 위해 동네 사람에게 [[체]]를 빌렸는데 그만 분질러먹고 말았다. 유모는 당황하여 대성통곡을 하였는데 신앙심 깊은 베네딕토가 기도를 하자 체가 다시 달라붙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베네딕토의 능력을 경이로워하였는데, 그는 이런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산 속으로 피하였다. 베네딕토는 로마누스 등 선배 독수자[* 혼자서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의 원조를 받기는 하였지만 혼자서 산에서 수도생활을 하였다. 베네딕토의 수도생활을 방해하는 악마의 유혹이 끊임없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베네딕토는 끝내 이를 이겨냈다. 베네딕토 전기에서는 이때 악마가 성 베네딕토에게 치를 떨며 "너는 베네딕토(축복받은 자)가 아니라 말레딕토(저주받은 자)다!"라고 악담(...)을 했다고 전한다. 대단한 명망을 얻은 베네딕토는 어느 [[수도원]]의 원장으로 초빙되었다. 그러나 베네딕토가 엄한 규율로 [[수도자|수사]]들을 대하자, 수사들은 베네딕토를 암살하기 위한 가공할 음모를 꾸몄다. 그것은 베네딕토가 마실 [[포도주]]에 독약을 타는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베네딕토에게 포도주가 건네어지고, 베네딕토가 음용 전 강복을 하자 포도주잔이 돌 맞은 유리창처럼 --와장창-- 깨어졌다. 그 후 베네딕토는 그 [[수도원]]에서 나와 새로운 수도원을 세웠다. 베네딕토는 기존의 수도원의 규율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취사선택하여 새로운 규율을 만들고[* 특히 <Regula Magistri(스승의 규칙서)>라고 부르는 규칙서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성 베네딕토가 쓴 규칙서와 스승의 규칙서를 비교해 보면 스승의 규칙서와 문장까지 똑같은 부분이 나타난다. 아마 자기 규칙서를 쓸 때 스승의 규칙서를 옆에 펴 놓고 보면서 생각했던 듯.] 그의 제자들을 길러내었다. 베네딕토의 이러한 업적 때문에 사람들은 베네딕토를 일컬어 '서방 수도승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한국에는 [[칠곡군]], [[대구광역시]], [[부산광역시]], [[서울특별시]] 등에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있고, 대구와 [[창원]][* 포교 성 베네딕도회에서 운영하는 병원이다. 대구에 있는 쪽이 더 오래됐다.], [[부산]][* 광안리에 있는 올리베따노의 성 베네딕도회 수녀원 근처에 성 분도 치과병원이 있다. 예전에는 직영으로 초량동에 성 분도병원과 서울 용산 동자동([[서울역]] 바로 앞이다. 동부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바로 뒤편, 현재는 올리베따노의 성 베네딕도회 수녀회 서울 분원이 있다.)에 서울 성 분도병원도 있었지만, 두 병원은 모두 문을 닫고 용호동 부산성모병원을 위탁경영하고 있다.]에 베네딕토회에서 운영하는 병원이 있다. 베네딕토의 [[쌍둥이]] 여동생인 성녀 [[스콜라 스티카]](축일 [[2월 10일]])도 수도생활을 하였는데, 매년 한 번씩 오누이가 서로 왕래하며 영적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종종 '베네딕'''도'''', 또는 한문 음역인 ''''분도''''라고도 불린다. [[가톨릭]] 계열의 '[[분도출판사]]', '성분도병원' 등은 다 베네딕토 성인의 이름을 딴 것. ||<tablealign=center> http://christbearers.files.wordpress.com/2012/07/st-benedict-medal.jpg?width=600 || || 분도패. || 베네딕토 성인의 모습과 [[십자가]], [[라틴어]] 구마 기도문을 약자로 새긴 성 베네딕토 메달은 [[악마]]의 공격을 막아주는 효험이 있다 하여 은근히 수효가 있으며, [[묵주]]나 목걸이에 자주 사용된다. 성 베네딕토 메달을 [[한국 천주교]]에서는 한자식으로 ''''분도패''''라고 부른다. 성 베네딕토 메달은 대략적인 틀은 있어도 표준은 따로 없었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베네딕토회]] 수도원 중 하나이며, 성 베네딕토가 직접 머물렀던 몬테카시노 수도원[* [[몬테카시노 전투]]에서 언급되는 바로 그 수도원이다. 항목 참조.]에서 1880년에 '''성 베네딕토 탄생 150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기념 베네딕토 메달을 발행하였다. 그런데 이게 너무나 인기 있던 나머지 누구도 그렇게 정한 적은 없지만, 이 기념 메달이 사실상 성 베네딕토 메달의 표준이 되었다. 성물 제작사들은 기념 베네딕토 메달의 틀을 대충 따라 만들지만, 정말로 정확하게 똑같이 만드는 곳은 드물다. 위 분도패 사진도 몬테카시노 수도원이 발행했던 기념 메달의 모양을 따라했으나, 부조의 정밀도가 원본만 못하며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차이는 메달 앞면에 있는 성 베네딕토의 얼굴. 원본보다 얼굴이 훨씬 뭉개졌다. 또한 성 베네딕토의 발 아래 있는 반원형 공간에 원본에는 EX·S·M·CASINO MDCCCLXXX (거룩한 몬테카시노에서, 1880년)이라고 [[라틴어]]와 [[로마 숫자]]로 새겨져 있으며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http://www.osb.or.kr/|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공지영]](마리아) 작가의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의 배경이 된 곳이다. * [[http://www.olivetano.net/|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http://www.osboliv.or.kr/|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시인으로 유명한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가 소속된 곳이다. * [[http://www.benedict.or.kr/|서울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 [[http://www.benedictine.or.kr/|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 [[교황]] == 다음 항목을 참고. * [[베네딕토 15세]] * [[베네딕토 16세]] [각주] [[분류:동명이인]][[분류:성인(기독교)]] 베네딕토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