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성 이름
Benedicto
베네딕트의 스페인식 베리에이션으로, '축복 받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2 가톨릭·정교회·루터교·성공회의 성인
라틴어: Sanctus Benedictus de Nursia
이탈리아어: San Benedetto da Norcia
영어: Saint Benedict of Nursia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안에 모셔진 전신상 |
생몰년은 480년 ~ 543년. 축일은 가톨릭에서는 7월 11일. 정교회에서는 3월 14일.
농부, 수도자, 학생, 유럽과 이탈리아 누르시아의 수호성인이다. 그뿐 아니라 유혹을 받는 사람, 악마로부터 공격을 받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가톨릭의 대표적인 수도회인 베네딕토회의 창설자이다. 그의 생애를 서술한 유일무이한 문헌으로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베네딕토 전기》가 있다. 성 베네딕토가 유명해진 이유가 이 베네딕토 전기 때문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평.
베네딕토는 누르시아의 명망가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어, 수도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유모가 같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젊은이들이 그러했듯이 베네딕토는 수사학 등 학문을 배우기 위해 로마로 갔지만 혼란스럽고 타락한 분위기에 젖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여 학업을 중단하였다.
베네딕토는 유모와 함께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어느 도시에서 첫 기적을 일으키게 되었다. 유모는 밀가루 음식을 만들기 위해 동네 사람에게 체를 빌렸는데 그만 분질러먹고 말았다. 유모는 당황하여 대성통곡을 하였는데 신앙심 깊은 베네딕토가 기도를 하자 체가 다시 달라붙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베네딕토의 능력을 경이로워하였는데, 그는 이런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산 속으로 피하였다.
베네딕토는 로마누스 등 선배 독수자[1]의 원조를 받기는 하였지만 혼자서 산에서 수도생활을 하였다. 베네딕토의 수도생활을 방해하는 악마의 유혹이 끊임없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베네딕토는 끝내 이를 이겨냈다. 베네딕토 전기에서는 이때 악마가 성 베네딕토에게 치를 떨며 "너는 베네딕토(축복받은 자)가 아니라 말레딕토(저주받은 자)다!"라고 악담(...)을 했다고 전한다.
대단한 명망을 얻은 베네딕토는 어느 수도원의 원장으로 초빙되었다. 그러나 베네딕토가 엄한 규율로 수사들을 대하자, 수사들은 베네딕토를 암살하기 위한 가공할 음모를 꾸몄다. 그것은 베네딕토가 마실 포도주에 독약을 타는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베네딕토에게 포도주가 건네어지고, 베네딕토가 음용 전 강복을 하자 포도주잔이 돌 맞은 유리창처럼 와장창 깨어졌다.
그 후 베네딕토는 그 수도원에서 나와 새로운 수도원을 세웠다. 베네딕토는 기존의 수도원의 규율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취사선택하여 새로운 규율을 만들고[2] 그의 제자들을 길러내었다. 베네딕토의 이러한 업적 때문에 사람들은 베네딕토를 일컬어 '서방 수도승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한국에는 칠곡군, 대구광역시, 부산광역시, 서울특별시 등에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있고, 대구와 창원[3], 부산[4]에 베네딕토회에서 운영하는 병원이 있다.
베네딕토의 쌍둥이 여동생인 성녀 스콜라 스티카(축일 2월 10일)도 수도생활을 하였는데, 매년 한 번씩 오누이가 서로 왕래하며 영적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종종 '베네딕도', 또는 한문 음역인 '분도'라고도 불린다. 가톨릭 계열의 '분도출판사', '성분도병원' 등은 다 베네딕토 성인의 이름을 딴 것.
분도패. |
베네딕토 성인의 모습과 십자가, 라틴어 구마 기도문을 약자로 새긴 성 베네딕토 메달은 악마의 공격을 막아주는 효험이 있다 하여 은근히 수효가 있으며, 묵주나 목걸이에 자주 사용된다. 성 베네딕토 메달을 한국 천주교에서는 한자식으로 '분도패'라고 부른다.
성 베네딕토 메달은 대략적인 틀은 있어도 표준은 따로 없었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베네딕토회 수도원 중 하나이며, 성 베네딕토가 직접 머물렀던 몬테카시노 수도원[5]에서 1880년에 성 베네딕토 탄생 150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기념 베네딕토 메달을 발행하였다. 그런데 이게 너무나 인기 있던 나머지 누구도 그렇게 정한 적은 없지만, 이 기념 메달이 사실상 성 베네딕토 메달의 표준이 되었다. 성물 제작사들은 기념 베네딕토 메달의 틀을 대충 따라 만들지만, 정말로 정확하게 똑같이 만드는 곳은 드물다.
위 분도패 사진도 몬테카시노 수도원이 발행했던 기념 메달의 모양을 따라했으나, 부조의 정밀도가 원본만 못하며 세세한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6]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공지영(마리아) 작가의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의 배경이 된 곳이다.
-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시인으로 유명한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가 소속된 곳이다.
- 서울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3 교황
다음 항목을 참고.
- ↑ 혼자서 수도생활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 ↑ 특히 <Regula Magistri(스승의 규칙서)>라고 부르는 규칙서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성 베네딕토가 쓴 규칙서와 스승의 규칙서를 비교해 보면 스승의 규칙서와 문장까지 똑같은 부분이 나타난다. 아마 자기 규칙서를 쓸 때 스승의 규칙서를 옆에 펴 놓고 보면서 생각했던 듯.
- ↑ 포교 성 베네딕도회에서 운영하는 병원이다. 대구에 있는 쪽이 더 오래됐다.
- ↑ 광안리에 있는 올리베따노의 성 베네딕도회 수녀원 근처에 성 분도 치과병원이 있다. 예전에는 직영으로 초량동에 성 분도병원과 서울 용산 동자동(서울역 바로 앞이다. 동부 센트레빌 아스테리움 바로 뒤편, 현재는 올리베따노의 성 베네딕도회 수녀회 서울 분원이 있다.)에 서울 성 분도병원도 있었지만, 두 병원은 모두 문을 닫고 용호동 부산성모병원을 위탁경영하고 있다.
- ↑ 몬테카시노 전투에서 언급되는 바로 그 수도원이다. 항목 참조.
- ↑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차이는 메달 앞면에 있는 성 베네딕토의 얼굴. 원본보다 얼굴이 훨씬 뭉개졌다. 또한 성 베네딕토의 발 아래 있는 반원형 공간에 원본에는 EX·S·M·CASINO MDCCCLXXX (거룩한 몬테카시노에서, 1880년)이라고 라틴어와 로마 숫자로 새겨져 있으며 쉽게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