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항목 : [[학살]], [[독소전쟁]], [[제노사이드]] [[파일:attachment/벨라루스 초토화작전/벨라루스학살1.jpg]] [[파일:attachment/벨라루스 초토화작전/벨라루스학살2.jpg]] [[파일:attachment/벨라루스 초토화작전/벨라루스학살3.jpg]] [목차] = 소개 = >8월 25일. 우린 집 안에 수류탄을 던졌다. 집은 매우 빠르게 타들어갔다. 불은 다른 오두막으로 옮겨붙었다. 그 광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 우리는 눈물나게 웃겼다. 우리는 '''겨우 10개 마을에만''' 불을 질렀는데... [[우생학|슬라브에겐 자비가 있을 수 없다.]] 저주스러운 것들은 우리에겐 외계생물 같다. > ― 국방군 하사 요하네스 킴의 일기[*원본 Обер-ефрейтор вермахта Иоганнес ердер писал в своем дневнике в первые месяцы пребывания на белорусской земле: августа. Мы бросаем гранаты в жилые дома. Дома очень быстро горят. Огонь перебрасывается на другие избы. Красивое зрелище! Люди плачут, а мы смеемся над слезами. Мы сожгли таким образом уже деревень десять...Славянам нет и не может быть никакой пощады. Проклятая гуманность нам чужда.] [[나치 독일]]판 '''[[신멸작전]]'''. 누가 [[추축국]] 아니랄까봐 그 발상도 똑같다. [[독소전쟁]] 중 [[나치 독일]]이 [[벨라루스]]에서 벌인 [[제노사이드]]. 벨라루스에서 벌인 토벌 작전은 [[파르티잔]] 소탕뿐만 아니라 민가, 마을을 파괴하는 걸 목적으로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빨치산 토벌은 핑계로, 명령이 떨어지고 실행된 시점에서 빨치산 운동은 아직 시작도 안 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런 일을 벌인 목적은 처음부터 제노사이드였고, 순전히 대량 처형을 통한 공포 통치가 목적이었다. 사실 이건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독일군이 항상 하던 짓(예 - [[벨기에의 강간]] 문서 참조 바람)'''이고, 여기에 나치 이념이 결부되자 말 그대로 제노사이드가 되었던 것이다.] 토벌 작업은 [[독일 국방군]]과 [[슈츠슈타펠|SS]]와 경찰이 벌였으며,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대(對) 게릴라 작전을 실시했다. 그 결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수용소로 끌려갔다. = 전개 = == 점령 당시 == 1941년 독일군은 첫번째 토벌 작전을 벌였다. [[경찰]]은 마을을 파괴하면서 [[숲]]과 인근 지역에 토벌 작업을 벌였다. 나치의 작업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은 민간인들 사이에서 13,788명을 처리했다고 밝혔다. 그 다음 나치는 마을이나 해협 같은 곳을 태웠다. 여기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바르샤바 봉기]]를 잔인하게 진압한 SS 대장 [[에리히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 == 1943년 == 1943년부터 대규모 건설 작업을 시행하였다. 나치는 민간인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거나 착취하였는데, [[가축]]들을 압수했으며 곡물과 재산을 약탈했고 노동 가능 연령대의 인구는 강제 노동에 동원했다. 무수히 많은 건물들이 타 버렸고 광대한 면적의 지역이 황폐화되었다. 1943년 6월에 벌인 토벌 작전의 결과에 따르면, 약 1만 명이 넘는 인명이 사망하였고 6000개가 넘는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 퇴각 당시 == [[파일:attachment/벨라루스 초토화작전/벨라루스학살4.jpg]] [[파일:attachment/벨라루스 초토화작전/벨라루스학살5.jpg]] [[파일:attachment/벨라루스 초토화작전/벨라루스학살6.jpg]] [[파일:attachment/벨라루스 초토화작전/벨라루스학살7.jpg]]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소련군]]에게 밀리기 시작하는 1943~1944년에는 점령 지역을 모두 태워 황폐화시키는 일을 수행했다. 이 작전을 맡은 병력들의 임무는 독일군이 퇴각할 때 땅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었다. 초토화 작전의 방법 중 하나는 [[주민]]들과 그 거주지를 모조리 태워 없애는 것으로, 사람들을 집이나 창고 또는 헛간에 가둔 후 불태웠다. 벨라루스가 해방됐을 때는 많은 지역이 [[사막]]처럼 됐다. == 결과 == 나치의 토벌 작전 결과 3년동안 2,230,000명이 죽었다. '''1분에 최소 4명이 죽어 나간 셈.''' = 그 밖에 = 사실 여기서 소개하는 건 토벌 작업에 한정한 것이다. 실제로는 이것뿐만 아니라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홀로코스트]]도 벌어졌다.[* 애초에 즉결처형으로 죽은 유대인이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사람보다 더 많았다. 그 수는 무려 140만에 이르렀고 아우슈비츠는 100만명이다.] 그 잔혹함은 [[아우슈비츠]]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이 벨라루스 토벌작전을 다룬 영화로 [[컴 앤 씨]]가 있다. 극한의 개막장을 보여주며 용서할 수 없는 악마인 독일군과, 그 독일군의 장비를 노획하며 싸우면서 점점 독일군처럼 변해 구분을 할 수 없게 된 빨치산들의 변화가 포인트인 영화. = 참고 사이트 = * 벨라루스에서 일어난 학살을 정리한 사이트. [[http://translate.googleusercontent.com/translate_c?depth=1&hl=ko&prev=/search%3Fq%3D%25D0%2598%25D0%25B4%25D0%25B8%2B%25D0%25B8%2B%25D1%2581%25D0%25BC%25D0%25BE%25D1%2582%25D1%2580%25D0%25B8%26newwindow%3D1%26biw%3D1920%26bih%3D955&rurl=translate.google.co.kr&sl=ru&u=http://khatyn.by/ru/genocide/expeditions/&usg=ALkJrhhFMCurMLmwlVJh_4d-0FmI-JK76A|사이트 링크]]. * [[http://www.emerics.org/mobile/report.do?systemcode=04&action=detail&brdctsno=159334|정미자(민스크국립인문대학교 동양학과 교수), 벨라루스와 전쟁의 흔적]] [[분류:제2차 세계대전]][[분류:독소전쟁]][[분류:학살]] 벨라루스 초토화작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