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Attachment/벨라루스 초토화작전/벨라루스학살1.jpg 파일:Attachment/벨라루스 초토화작전/벨라루스학살2.jpg 파일:Attachment/벨라루스 초토화작전/벨라루스학살3.jpg
1 소개
8월 25일. 우린 집 안에 수류탄을 던졌다. 집은 매우 빠르게 타들어갔다. 불은 다른 오두막으로 옮겨붙었다. 그 광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 우리는 눈물나게 웃겼다. 우리는 겨우 10개 마을에만 불을 질렀는데... 슬라브에겐 자비가 있을 수 없다. 저주스러운 것들은 우리에겐 외계생물 같다.― 국방군 하사 요하네스 킴의 일기[1]
나치 독일판 신멸작전. 누가 추축국 아니랄까봐 그 발상도 똑같다.
독소전쟁 중 나치 독일이 벨라루스에서 벌인 제노사이드. 벨라루스에서 벌인 토벌 작전은 파르티잔 소탕뿐만 아니라 민가, 마을을 파괴하는 걸 목적으로 했다.[2]
토벌 작업은 독일 국방군과 SS와 경찰이 벌였으며,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대(對) 게릴라 작전을 실시했다. 그 결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수용소로 끌려갔다.
2 전개
2.1 점령 당시
1941년 독일군은 첫번째 토벌 작전을 벌였다. 경찰은 마을을 파괴하면서 숲과 인근 지역에 토벌 작업을 벌였다. 나치의 작업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은 민간인들 사이에서 13,788명을 처리했다고 밝혔다. 그 다음 나치는 마을이나 해협 같은 곳을 태웠다. 여기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바르샤바 봉기를 잔인하게 진압한 SS 대장 에리히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
2.2 1943년
1943년부터 대규모 건설 작업을 시행하였다. 나치는 민간인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거나 착취하였는데, 가축들을 압수했으며 곡물과 재산을 약탈했고 노동 가능 연령대의 인구는 강제 노동에 동원했다. 무수히 많은 건물들이 타 버렸고 광대한 면적의 지역이 황폐화되었다. 1943년 6월에 벌인 토벌 작전의 결과에 따르면, 약 1만 명이 넘는 인명이 사망하였고 6000개가 넘는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2.3 퇴각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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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소련군에게 밀리기 시작하는 1943~1944년에는 점령 지역을 모두 태워 황폐화시키는 일을 수행했다. 이 작전을 맡은 병력들의 임무는 독일군이 퇴각할 때 땅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었다. 초토화 작전의 방법 중 하나는 주민들과 그 거주지를 모조리 태워 없애는 것으로, 사람들을 집이나 창고 또는 헛간에 가둔 후 불태웠다. 벨라루스가 해방됐을 때는 많은 지역이 사막처럼 됐다.
2.4 결과
나치의 토벌 작전 결과 3년동안 2,230,000명이 죽었다. 1분에 최소 4명이 죽어 나간 셈.
3 그 밖에
사실 여기서 소개하는 건 토벌 작업에 한정한 것이다. 실제로는 이것뿐만 아니라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홀로코스트도 벌어졌다.[3] 그 잔혹함은 아우슈비츠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이 벨라루스 토벌작전을 다룬 영화로 컴 앤 씨가 있다. 극한의 개막장을 보여주며 용서할 수 없는 악마인 독일군과, 그 독일군의 장비를 노획하며 싸우면서 점점 독일군처럼 변해 구분을 할 수 없게 된 빨치산들의 변화가 포인트인 영화.
4 참고 사이트
- 벨라루스에서 일어난 학살을 정리한 사이트. 사이트 링크.
- 정미자(민스크국립인문대학교 동양학과 교수), 벨라루스와 전쟁의 흔적
- ↑ Обер-ефрейтор вермахта Иоганнес ердер писал в своем дневнике в первые месяцы пребывания на белорусской земле: августа. Мы бросаем гранаты в жилые дома. Дома очень быстро горят. Огонь перебрасывается на другие избы. Красивое зрелище! Люди плачут, а мы смеемся над слезами. Мы сожгли таким образом уже деревень десять...Славянам нет и не может быть никакой пощады. Проклятая гуманность нам чужда.
- ↑ 엄밀히 말하자면 빨치산 토벌은 핑계로, 명령이 떨어지고 실행된 시점에서 빨치산 운동은 아직 시작도 안 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런 일을 벌인 목적은 처음부터 제노사이드였고, 순전히 대량 처형을 통한 공포 통치가 목적이었다. 사실 이건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독일군이 항상 하던 짓(예 - 벨기에의 강간 문서 참조 바람)이고, 여기에 나치 이념이 결부되자 말 그대로 제노사이드가 되었던 것이다.
- ↑ 애초에 즉결처형으로 죽은 유대인이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사람보다 더 많았다. 그 수는 무려 140만에 이르렀고 아우슈비츠는 100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