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정치인/목록]] [include(틀:국내 정치인)] https://tv.pstatic.net/thm?size=80x100&quality=9&q=http://people.phinf.naver.net/20150501_29/1430411438240KdRrf_JPEG/yonhapnews_30283034.jpg?width=150 邊鎭甲 1896년 ~ 1977년 7월 14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896년 [[전라남도]] [[장성군]] 읍서면(현 장성[[읍(행정구역)|읍]]) 안평리에서 태어났다. 경성법학전문학교(이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를 졸업하였다. 이후 장성읍장을 지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장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6.25 전쟁]] 중인 1951년 [[서울대병원 학살사건]]을 폭로하였다. 다만 사망자 수는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가 발표한 수보다는 조금 적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헌정동지회, 정우회 등에 속하였다가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농림위원회(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그리고 자유당 중앙위원도 역임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남도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1963년 [[허정(정치인)|허정]]의 [[신정당]]에 입당하였다가 탈당하고 국민의당에 입당하였다. 같은 해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1963년)|국민의당]] 후보로 전라남도 장성군-[[담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박승규(1921)|박승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정치를 그만두고 고향인 장성군에서 노인들을 위해 [[지팡이]] 만드는 일에 전념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전라남도 출신 인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내 정치인 (원본 보기) 변진갑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