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普信閣 Boshingak http://tv.jongno.go.kr/upload_file/photo/200712050458338.gif (1900년대의 보신각 모습.) http://farm1.static.flickr.com/192/457674829_118af25319_z.jpg (오늘날의 보신각 모습.) [include(틀:한양도성 8대문 및 보신각)] [목차] == 개요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가에 있는 한옥 누각이자 종각(鐘閣).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과 가깝다. 특히 매년 [[12월 31일]]에 열리는 '제야의 종 소리'의 서울 지역 타종 행사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1398년(태조 7년) [[조선]]왕조 때 [[경기도]] [[광주시|광주]](廣州)에서 만든 종(鐘)을 청운교 서쪽 종루(鐘樓)에 설치한 것이 시초이며, 이후 1413년(태종 13년)에 2층 규모의 종루를 새로 짓고 그 위치를 통운교(現 종로 네거리)쪽으로 옮겼다. 이후 1458년(세조 7년)에 새로 대종(大鐘)을 만들어서 설치하였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왜군들이 [[한양]]을 점령하면서 종루는 소실(燒失)되고 대종도 파괴되었다. 그 후 1619년(광해군 11년)에 종각을 다시 지어서 종을 설치하게 되었는데 이때 명례동 고개[* 오늘날의 [[명동(서울)|명동]] 일대.]에 있는 종각에 걸렸던 종을 옮겨서 설치하였다. 원래 이 종은 [[연산군]]에 의해 폐쇄된 사찰이었던 원각사(圓覺寺)[* 현재의 [[탑골공원]] 터에 위치. 탑골공원 내에는 지금도 국보 제 2호인 원각사터 10층석탑과 원각사비가 남아있다.]의 종으로 원각사가 없어지면서 1536년(중종 31년)에 [[숭례문]] 안으로 옮기게 되었고 1597년(선조 30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명례동 고개로 옮겼던 것을 [[광해군]] 때 종각을 복구하면서 옮긴 것이다. 새로 중건된 종루는 본래의 규모와는 달리 작은 규모의 1층 종각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보신각(普信閣)' 이라는 명칭은 1895년(고종 32년) 종각을 새로 중건하면서 고종의 어필로 보신각이라는 현판을 걸었던 것에서 비롯하였으며 종각에 있던 종도 이때부터 '보신각종'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종각은 1950년 [[6.25 전쟁]] 때 파괴되었다가 휴전 후인 1953년에 중건하였으며, 그 후 1971년 [[서울 지하철 1호선]] 공사 과정에서 세종 때 지은 옛 종루의 초석이 발굴되었는데, 정면 5칸, 측면 4칸에 2층 누각이었을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를 토대로 해서 1980년에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종루를 새로 지었다. 발견된 주춧돌은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후 1985년에는 노후화된 본래의 보신각 종[* 보물 제 2호, 현재 [[용산구]] 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전시되고 있다.]을 새로 주조한 종으로 교체하여 오늘에 이른다. == 특징 == [[서울특별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이며 [[종로구]]의 종 모양 로고도 보신각종을 본따 만들어졌다. [[종로구]]청도 근처에 있다.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보신각종을 치는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열리기도 하여[* 총 33번을 친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표적인 새해맞이 행사로 알려져 있었고 이 때는 종로를 지나는 차량이 전면 통제되어 많은 시민들이 보신각 앞으로 운집하기도 한다. 이 행사 때 [[종각역]]은 잠시 영업을 중지하고 무정차 통과한다. 12월 31일 이외에도 [[3.1절]], [[광복절]] 등 국경일 낮 12시를 기해서 타종행사를 가지기도 한다.--[[http://tvple.com/tag/%EB%B3%B4%EC%8B%A0%EA%B0%81%EC%A2%85|그리고 이 종은 진정한 악기가 되었다]]-- == 관련 항목 == * [[옛 보신각 동종]] [[분류:대한민국의 보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한양도성 8대문 및 보신각 (원본 보기) 보신각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