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graphics8.nytimes.com/images/2007/06/03/books/warn600span.jpg (그림의 대포는 아무런 추가 장비가 없는 그냥 맨 대포이다. 당시 콩코드 광장에 장식되어있던 대포를 화약이나 탄약 따위는 없이, 그냥 끌고 갔다가 다시 끌고 오게 된다. 이 대포들은 혁명시기 수차례 이동되는데, 민중들은 화약과 탄을 같이 가져간 적이 없다.) [[프랑스 혁명]]의 사건. 1789년 10월, 혁명 당시의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 농촌지역에서 일어난 대공포의 영향으로 파리의 식량사정이 어려워졌다. 이런 가운데 파리에는 갖가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유언비어]]가 떠돌았다. 결국 10월 5일, 파리의 하층계급 부녀자들 7000여명이 앞장을 서고 남편들이 뒤를 따른 가운데 이들은 베르사유 궁전까지 행진하여 루이 16세의 파리 귀환을 요구하며 궁 근처에서 야영했다. 그러나 루이 16세가 이를 거부하자 다음날 이들은 왕궁 주변에 주둔한 육군 병력들이 합세한 가운데 베르사유 궁을 습격하여 [[스위스 용병]]들로 구성된 왕실 근위대[* 루이 16세가 중간에 근위병들에게 의무를 다했으니 그냥 후퇴하고 살 길을 찾도록 명했으나, 이들은 이를 거부하고 남아 저항했다.]원들을 살해하고 왕과 왕비를 포위하여 이들을 파리로 끌고와 버렸다. 프랑스 혁명의 과격화의 단초를 놓은 사건으로 이어지는 [[바렌느 배신사건]]과 자코뱅주의자들의 출현 등에 영향을 끼친 사건이라 볼 수 있다. 또한 페미니즘에서는 일반 민중의 여성들이 역사의 전면으로 부각된 사건으로 중요시한다. [[나폴레옹]]이 현장에 있다가 이들 시위대가 저지른 잔혹 행위[* 죽은 스위스 근위병의 바지를 벗기고 성기를 잘라 흔들었다고도 한다.]에 질려서 혁명을 혐오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분류:프랑스사]] 부녀자들의 베르사유 행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