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목차] == 소개 == https://s.inyourpocket.com/gallery/108367.jpg http://www.ironman.com/~/media/97592ab782a24dc28fea06447490b76f/budapest%202016%205.jpg?w=1600&h=980&c=1 http://budapest.boscolohotels.com/sites/budapest.boscolo-hotels.ogilvy.it/files/budapest-5-motivi-spettacolo-architettonico-01-boscolo-hotel.jpg https://www.gapyear.com/images/content/Images/Budapest_Parlament_Building.jpg {{{#!html <iframe width="840" height="470" src="https://www.youtube.com/embed/gBSlVYEBDQU"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Budapest[* [[헝가리어]] 발음은 "부더페슈트"에 가깝다. 헝가리어의 s는 [[영어]]의 sh과 같은 [[후치경음|후치경마찰음]]인 반면에 sz은 s([[치경음|치경마찰음]])처럼 발음되기 때문이다. 헝가리어에서 "ㅏ" 발음은 "a"가 아닌 "á". 그냥 a 발음은 [[한국]] 표준어에는 없지만 [[제주어]]의 아래아가 이 발음이다.] [[헝가리]]의 수도.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유서 깊은 도시이다. 이름이 저래서 [[흑사병|어떤 악명 높은 중세의 질병]]이 연상되지만 이 질병과는 무관하며, 여기서의 페스트는 '도자기 굽는 마을'이란 뜻이라고 한다. 다만 [[다뉴브 강]]([[헝가리어]]로는 두너-Duna)을 사이에 두고 ~~부자~~ '부다(부더)'와 '페스트(페슈트)'라는 두 도시가 하나로 합쳐져서 현재의 이름이 되었던 것으로, '부다'에는 왕궁과 관청가, 귀족 등 상류층, 지배층이 살았고 '페스트'에는 서민들이 살았다고 한다. [[1896년]] [[영국]] [[런던]]에 이은 세계 두 번째, [[유럽]] '''대륙 본토에서는 최초'''로 [[지하철]]이 들어선 도시이기도 하다.[* 1896년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하며 동시에 [[독일어]]를 쓰는 오스트리아인에 이은 2등국민에 가까웠던 헝가리인들을 회유하기 위해 제국의 수도였던 [[비엔나]]보다도 먼저 건설되었는데 이 쪽은 런던보다 돈도 수요도 비교적 적었기 때문에 백 년이 넘는 시간을 거치며 계속된 개량을 통해 초창기의 분위기는 많이 사라진 [[런던 지하철]]과 달리 19세기부터 이어져온 골동품스러운 분위기가 진하게 나는 게 특징이다. 물론 이는 당시 지어진 [[1호선]](M1) 한정이며 이후에 지어진 M2와 M3은 소련의 영향을 받아 동유럽에서 흔한 공산권 지하철풍으로 지어졌다. 2014년 3월 28일에 현대적 디자인의 M4가 새로 개통되었다.] == 역사 == 서기 89년 [[켈트]]족 거주 지역에 건설된 판노니아 지방의 [[로마]]군의 주둔지 아쿠인쿰으로 알려졌고, 106년부터 4세기까지 저지대 판노니아 속주의 주도였다. 900년경에 마자르인들이 아르파드의 인솔하에 판노니아와 도시를 침공해 점령하고 1세기 후 다뉴브 강 동쪽의 페스트를 수도로 한 헝가리 왕국을 세웠다. 1200년대 중반에 [[몽골 제국]]의 [[바투]]의 침공을 받아 페슈트 성이 파괴되었고, 몽골군이 물러나자 당시 국왕이었던 벨라 4세는 페스트 서쪽에 위치한 오다 지역의 언덕 위에 왕궁과 성채를 건설했다. 그러다가 1541년에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어 오스만 제국 속령으로서 부더주가 설치되어 부더는 오스만 총독의 주류지가 되었다. 한편, 페스트 지구는 그 시기에 대부분 버려진 상태였다가 1686년에 [[오스트리아]]에 점령되었다. 1723년부터 왕국의 행정 기관 소재지였던 페스트는 그동안의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18세기와 19세기에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848년 빈 체제 반동으로 1848년 혁명의 소용돌이가 헝가리 왕국을 덮쳐 1849년 혁명 정부가 들어섰고 혁명 정부는 부더와 오부더, 페슈트의 행정 통합을 추진하였으나 얼마안가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를 다시 받게 되면서 무산되고 만다. 그러다가 1867년 [[합스부르크]]와 헝가리의 대타협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함께 헝가리 왕국의 자치 정부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부다페스트로 합쳐졌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에 동맹국에 가담해 패전한 제국이 [[우드로 윌슨]]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공중분해되어 완전 독립된 헝가리의 수도가 되었다. 그러다가 1940년대에 [[제3제국|나치 독일]]에 점령되어 1944년에 부다페스트에 거주하던 20만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3분의 1 가까이 대학살을 당했고, 곧이어 겨울에는 [[부다페스트 공방전]]으로 도시가 심하게 파괴되었다. 그 후 부다페스트는 [[헝가리 인민 공화국|헝가리 공산 정부]]가 들어서면서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재건되었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이 이곳을 중심으로 일어나기도 했고, 그로 인해 부다페스트에서만 약 3000여명이 희생되었다. 1980년대부터 207만이었던 인구가 급감해 90년대에 공산주의 정부가 몰락한 후에도 인구수가 100만 명 이상 정도가 된 상태이다. == 관광 정보 == 거대한 도나우 강이 관통하는 이 도시는 앞서 말했듯이 서쪽의 '부다'와 동쪽의 '페스트'로 분리되어 각자 고유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주요 관광지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도나우강 주변에 많이 있는데, 사진 중앙에 보이는 네오고딕 양식의 국회의사당[* [[영국]] [[런던]]의 국회의사당 디자인을 차용해 지었다고 하는데, 그보다 훨씬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멋있다. 가시로 뒤덮인 [[세인트 폴 대성당]] 같은 모습이다.] 강 어귀 언덕에 위치한 어부의 요새라 불리는 곳과 그 위의 마차시 성당, 부다 왕궁 등이다. 그곳의 7개의 지붕은 헝가리 국가의 초석을 다진 마자르 7부족을 의미한다. 특히 유람선을 타고 즐기는 도나우 강 어귀의 야경을 추천한다. 도시 전 지역이 황금색으로 뒤덮이게 야간 조명을 계획하여 정말 아름답다. 이 중 가장 화려한 건 당연 어부의 요새, 부다 왕궁, 국회 의사당이다. 특히 국회 의사당의 야경을 보면 마치 환하게 불타는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어쨌든 부다페스트에 간다면 야경구경은 필수이다. 또 동유럽 최대의 호수인 벌러톤(Balaton) 호수[* 이 호숫가는 2차 세계대전 최후의 격전지 중 하나이고, 냉전시대에는 동독과 서독의 이산가족이 만나는 장소였다.]는 겨울이면 각종 축제와 스포츠가 열리는 명소이기도 하다. 유럽 최대규모의 치료형 온천인 세체네 온천(Széchenyi thermal bath)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시리아 내전]]에 따른 [[유럽 난민 사태]]의 여파로 [[시리아]] 난민들이 이곳에도 몰려들었다. 헝가리가 서유럽으로 가는 주요 통로이기 때문. 2015년 9월 당시 중앙역 기능을 하는 켈레티(Keleti, 동쪽) 역이 난민들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바람에 헝가리 정부에서 서유럽으로 가는 기차편들을 취소시켜 역 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되기도 했다. 그래서 혹시 부다페스트를 여행할 계획이 있는 위키러라면 유념해둘 것. 2016년 8월 14일 현재는 난민 문제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봐도 좋은 상황이다. -극우 성향 정치인들이 득실거리는- 헝가리 정부에서 난민 통제를 위해 국경에 펜스를 설치하고 엄격한 통제를 하고 있어 난민들이 이탈리아로 통하는 다른 루트로 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서유럽행 기차편들도 정상 운행중. [[대한민국]] 직항은 없기 때문에 환승해야 했지만, 2016년 7월 1일부터 8월 26일까지 [[아시아나항공]]에서 인천-부다페스트 직항편을 띄운다.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4/25/0200000000AKR20160425079800003.HTML|전세기 정보]] [각주][[분류:수도]] [[분류:헝가리]] 부다페스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