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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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apest[1] 헝가리의 수도.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유서 깊은 도시이다.

이름이 저래서 어떤 악명 높은 중세의 질병이 연상되지만 이 질병과는 무관하며, 여기서의 페스트는 '도자기 굽는 마을'이란 뜻이라고 한다.

다만 다뉴브 강(헝가리어로는 두너-Duna)을 사이에 두고 부자 '부다(부더)'와 '페스트(페슈트)'라는 두 도시가 하나로 합쳐져서 현재의 이름이 되었던 것으로, '부다'에는 왕궁과 관청가, 귀족 등 상류층, 지배층이 살았고 '페스트'에는 서민들이 살았다고 한다.

1896년 영국 런던에 이은 세계 두 번째, 유럽 대륙 본토에서는 최초지하철이 들어선 도시이기도 하다.[2]

2 역사

서기 89년 켈트족 거주 지역에 건설된 판노니아 지방의 로마군의 주둔지 아쿠인쿰으로 알려졌고, 106년부터 4세기까지 저지대 판노니아 속주의 주도였다. 900년경에 마자르인들이 아르파드의 인솔하에 판노니아와 도시를 침공해 점령하고 1세기 후 다뉴브 강 동쪽의 페스트를 수도로 한 헝가리 왕국을 세웠다. 1200년대 중반에 몽골 제국바투의 침공을 받아 페슈트 성이 파괴되었고, 몽골군이 물러나자 당시 국왕이었던 벨라 4세는 페스트 서쪽에 위치한 오다 지역의 언덕 위에 왕궁과 성채를 건설했다.

그러다가 1541년에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어 오스만 제국 속령으로서 부더주가 설치되어 부더는 오스만 총독의 주류지가 되었다. 한편, 페스트 지구는 그 시기에 대부분 버려진 상태였다가 1686년에 오스트리아에 점령되었다.

1723년부터 왕국의 행정 기관 소재지였던 페스트는 그동안의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 18세기와 19세기에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848년 빈 체제 반동으로 1848년 혁명의 소용돌이가 헝가리 왕국을 덮쳐 1849년 혁명 정부가 들어섰고 혁명 정부는 부더와 오부더, 페슈트의 행정 통합을 추진하였으나 얼마안가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를 다시 받게 되면서 무산되고 만다. 그러다가 1867년 합스부르크와 헝가리의 대타협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함께 헝가리 왕국의 자치 정부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부다페스트로 합쳐졌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에 동맹국에 가담해 패전한 제국이 우드로 윌슨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공중분해되어 완전 독립된 헝가리의 수도가 되었다. 그러다가 1940년대에 나치 독일에 점령되어 1944년에 부다페스트에 거주하던 20만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3분의 1 가까이 대학살을 당했고, 곧이어 겨울에는 부다페스트 공방전으로 도시가 심하게 파괴되었다. 그 후 부다페스트는 헝가리 공산 정부가 들어서면서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재건되었다. 1956년 헝가리 혁명이 이곳을 중심으로 일어나기도 했고, 그로 인해 부다페스트에서만 약 3000여명이 희생되었다. 1980년대부터 207만이었던 인구가 급감해 90년대에 공산주의 정부가 몰락한 후에도 인구수가 100만 명 이상 정도가 된 상태이다.

3 관광 정보

거대한 도나우 강이 관통하는 이 도시는 앞서 말했듯이 서쪽의 '부다'와 동쪽의 '페스트'로 분리되어 각자 고유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주요 관광지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도나우강 주변에 많이 있는데, 사진 중앙에 보이는 네오고딕 양식의 국회의사당[3] 강 어귀 언덕에 위치한 어부의 요새라 불리는 곳과 그 위의 마차시 성당, 부다 왕궁 등이다. 그곳의 7개의 지붕은 헝가리 국가의 초석을 다진 마자르 7부족을 의미한다.

특히 유람선을 타고 즐기는 도나우 강 어귀의 야경을 추천한다. 도시 전 지역이 황금색으로 뒤덮이게 야간 조명을 계획하여 정말 아름답다. 이 중 가장 화려한 건 당연 어부의 요새, 부다 왕궁, 국회 의사당이다. 특히 국회 의사당의 야경을 보면 마치 환하게 불타는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어쨌든 부다페스트에 간다면 야경구경은 필수이다.

또 동유럽 최대의 호수인 벌러톤(Balaton) 호수[4]는 겨울이면 각종 축제와 스포츠가 열리는 명소이기도 하다.

유럽 최대규모의 치료형 온천인 세체네 온천(Széchenyi thermal bath)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시리아 내전에 따른 유럽 난민 사태의 여파로 시리아 난민들이 이곳에도 몰려들었다. 헝가리가 서유럽으로 가는 주요 통로이기 때문. 2015년 9월 당시 중앙역 기능을 하는 켈레티(Keleti, 동쪽) 역이 난민들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바람에 헝가리 정부에서 서유럽으로 가는 기차편들을 취소시켜 역 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되기도 했다. 그래서 혹시 부다페스트를 여행할 계획이 있는 위키러라면 유념해둘 것. 2016년 8월 14일 현재는 난민 문제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봐도 좋은 상황이다. -극우 성향 정치인들이 득실거리는- 헝가리 정부에서 난민 통제를 위해 국경에 펜스를 설치하고 엄격한 통제를 하고 있어 난민들이 이탈리아로 통하는 다른 루트로 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서유럽행 기차편들도 정상 운행중.

대한민국 직항은 없기 때문에 환승해야 했지만, 2016년 7월 1일부터 8월 26일까지 아시아나항공에서 인천-부다페스트 직항편을 띄운다. 전세기 정보

  1. 헝가리어 발음은 "부더페슈트"에 가깝다. 헝가리어의 s는 영어의 sh과 같은 후치경마찰음인 반면에 sz은 s(치경마찰음)처럼 발음되기 때문이다. 헝가리어에서 "ㅏ" 발음은 "a"가 아닌 "á". 그냥 a 발음은 한국 표준어에는 없지만 제주어의 아래아가 이 발음이다.
  2. 1896년 헝가리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하며 동시에 독일어를 쓰는 오스트리아인에 이은 2등국민에 가까웠던 헝가리인들을 회유하기 위해 제국의 수도였던 비엔나보다도 먼저 건설되었는데 이 쪽은 런던보다 돈도 수요도 비교적 적었기 때문에 백 년이 넘는 시간을 거치며 계속된 개량을 통해 초창기의 분위기는 많이 사라진 런던 지하철과 달리 19세기부터 이어져온 골동품스러운 분위기가 진하게 나는 게 특징이다. 물론 이는 당시 지어진 1호선(M1) 한정이며 이후에 지어진 M2와 M3은 소련의 영향을 받아 동유럽에서 흔한 공산권 지하철풍으로 지어졌다. 2014년 3월 28일에 현대적 디자인의 M4가 새로 개통되었다.
  3. 영국 런던의 국회의사당 디자인을 차용해 지었다고 하는데, 그보다 훨씬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멋있다. 가시로 뒤덮인 세인트 폴 대성당 같은 모습이다.
  4. 이 호숫가는 2차 세계대전 최후의 격전지 중 하나이고, 냉전시대에는 동독과 서독의 이산가족이 만나는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