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분데스리가]]의 축구팀을 찾아오셨다면 [[SV 베르더 브레멘]] 항목으로 [include(틀:독일의 주)] ||<table align=center><:>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f/RathausDomBuergerschaft-01.jpg?wid=650&height=450 브레멘 시청의 모습 || ||<table align=right><:>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0/0e/Flag_of_Bremen.svg/150px-Flag_of_Bremen.svg.png?uselang=ko||<#dcdcdc><:>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6/64/Bremen_Wappen%28Mittel%29.svg/150px-Bremen_Wappen%28Mittel%29.svg.png || || 주기(州旗) || 주장(州章) || ||||<:>http://people-project.eu/portal/images/stories/Bremen_location.jpg?wid=400&height=350|| |||| 브레멘의 위치 || || 국가 || [[독일]] || || 주 || 브레멘 || || 시간대 || UTC+1 ([[서머타임]] 준수) || || 서울까지 || 9시간 25분[br]8337킬로미터 || || 한국과의 시차 || -8시간 || [목차] == 개요 == {{{+1 '''Freie Hansestadt Bremen, 브레멘 자유 한자시''' }}} [[독일]] 북부의 [[독일의 주|도시주]]. 브레멘과 브레멘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브레머하벤(Bremerhaven)을 하위 행정구역으로 두고 있다. 브레머하펜은 브레멘 도시주에 속해 있지만 [[니더작센]] 주를 사이에 끼고 있는 [[월경지]]이다. 예로부터 [[한자동맹]]의 일원으로, [[베저 강]]을 통하여 직물, [[커피]], [[담배]]를 거래하던 유서깊은 항구도시이며 각종 공업도 발달해서 독일의 10대 도시 중에 하나이며 북부 지역에서는 ~~영원한 라이벌~~ [[함부르크]] 다음 가는 도시이다. == 역사 == 브레멘 일대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부터로 추정된다. [[빙하기]]가 한창이던 기원전 12,000년 무렵으로 추정되는 원시인들의 유적지가 발굴되었기 때문. 이후 한 때 [[아우구스투스]]가 추진한 [[게르만족]] 정복 시도로 브레멘 일대가 로마의 영역에 짧게나마 들어왔던 적[* [[엘베 강]]까지 약 20년 동안 로마가 지배했던 적이 있다. 물론 완벽한 지배가 아니라 주요 거점과 교통로에만 로마의 힘이 미치는 정도.]이 있지만, [[토이토부르크 전투]]의 참패 이후 로마군이 [[라인강]]으로 국경을 물렀기 때문에 로마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편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가 작성한 유럽 지도에서는 지금의 브레멘 위치에 게르만족의 영역지가 표시되어있는데, 이를 근거로 일부에서는 이 때부터 브레멘이 존재해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 대다수 학자들의 반응은 "글쎄..." 정도. 이후 3~4세기 무렵에는 색슨족이 이곳으로 이주해왔으며 [[중세]] 이후에는 [[프랑크 왕국]]의 영토에 포함되게 된다. 프랑크 왕국이 게르만 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함에 따라 8세기 후반에 최초로 [[주교]]가 브레멘에 파견되었으며 10세기 무렵부터는 베저 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노르웨이]], [[네덜란드]], [[잉글랜드]]와 무역을 하면서 부를 쌓기 시작한다. 이러한 부를 바탕으로 주교에게서 화폐주조권을 인정받았으며, 바르바로사(Barbarossa) [[프리드리히 1세]]에게도 제국 자유 도시(Freie und Reichsstädte)로 지정받으면서 여러 특권들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특권에는 브레멘 시내의 재산권을 [[영주]]들로부터 보호받는 조건 및 브레멘으로 도망쳐 온 [[농노]]들의 신변의 자유를 인정하는 조건 등이 있었는데 중세 독일의 [[속담]] 중 하나인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Die Luft der Stadt macht frei)'가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 이후 13세기에 가입한 [[한자동맹]]은 브레멘에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막대한 부를 자랑하는 브레멘은 명목상으로는 주교 겸 대공의 지배를 받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치]]를 누릴 수 있었다.[* 오히려 브레멘에게서 막대한 자금을 융자받는 주교들이 브레멘의 눈치를 살피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잘 나가던 브레멘의 기세를 꺾어버린 것은 바로 17세기 유럽을 피바다로 몰아넣은 [[종교개혁]]. 상인들답게 종교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지 브레멘은 [[종교개혁]]과 [[30년 전쟁]] 시기 [[중립]]을 선포했으며[* 다만 브레멘 자체에는 종교개혁에 호응해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세력이 다수였다고 한다.] 막대한 부를 이용해 중립을 지키기 위한 용병까지 고용하면서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려고 했지만 베저 강 하구라는 지정학적 요소와 무역으로 쌓아올린 막대한 부는 개신교와 가톨릭 진영 모두에게 매혹적인 요소였고, [[덴마크]], [[프로이센]], [[스웨덴]], [[합스부르크]] 등등 다양한 세력들이 브레멘을 놓고 충돌하게 된다. 특히나 스웨덴과는 [[공성전]]까지 벌였으나 브레멘 입장에서는 다행으로 점령만은 피했다. 다만 스웨덴이 포위를 푸는 조건으로 내세운 브레멘을 둘러싸고 있던 각종 요새의 해체와, [[라이히스탁]]으로의 브레멘 대표 파견 금지를 허용하면서 최전성기의 위상을 누리지는 못하게 됐다. 그 후로 무난무난히 지내던 브레멘을 뒤흔든 것은 [[나폴레옹 전쟁]]. 1811년 나폴레옹이 브레멘을 점령하면서 프랑스의 속국으로 놓이게 되었으나 나폴레옹의 몰락과 더불어 [[빈 회의]]에서 다시금 자유도시로의 권리를 인정받고 [[독일 연방]]의 일원이 된다. 1817년 독일 최초의 [[증기선]]이 이곳에서 발명되면서 [[산업혁명]]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베저 강의 수운을 이용한 [[운송업]]이 폭발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하고 1827년에는 해운업을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하노버 왕국]]으로부터 베저 강에서 [[북해]]로 빠지는 항구 일대를 사들인다. 이것이 바로 브레머하벤(Bremerhaven). 그 후 [[독일 제국]] 시기 독일이 세계 제2의 경제강국으로 번성하면서 브레멘은 함부르크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번성하는 항구도시 중 하나가 되면서 [[한자동맹]] 시기 못지 않은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1차대전]]과 [[2차대전]]의 패전 및 그로 인한 독일 국내의 혼란으로 인해 전성기는 빠르게 사그라든다. 1차대전 때는 패전 직후 극좌세력에 의해 [[공산주의]] 정부가 선포되었으나 한 달 만에 [[자유군단]]에 의해 전복되었으며, 2차대전 때는 대전기간 내내 연합국의 주요 폭격 대상 중 하나로 지정되어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그래도 [[아서 해리스]]에 의해 석기시대로 돌아간 라이벌 [[함부르크]]보단 좀 상황이 낫다.~~ 2차대전 직후 영국군의 점령지역으로 들어간 브레멘은 [[니더작센]]으로 포함될 위기에 쳐했으나 당시 시장이었던 [[빌헬름 카이젠]]이 연합군 측에게 로비까지 해가면서 빌었던 덕에 도시주(Stadtstaat)로 존속할 수 있었고 이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사회 == === 인구 === 현재의 인구수는 대략 55만명 정도로 [[포항시]]보다 약간 많은 수치이며, 절정기였던 1960년대 후반의 60만 명에 비하면 약간 줄어든 수치이다. 또한 55만명의 인구중에서 외국인이 25% 가량의 지분을 차지하는데, 이들 중 다수는 [[터키]]인이다. 또한 [[독일 제국]] 시기에는 [[폴란드]]에서 일자리를 찾아 폴란드인들이 브레멘을 많이 왔었는데[* 다만 이는 브레멘 뿐만이 아니라 당시 독일 산업지역 일대의 공통적인 특징이었다.] [[냉전]] 종결 이후 다시금 폴란드 인들이 브레멘에 정착하고 있다. 덧붙여서 전통적으로 [[공업]]과 운수업이 발달한 도시였던만큼, 계층상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 정치 === 위의 인구 항목에서 설명하였듯이 노동자들이 다수인 도시였던만큼 19세기 후반 이후로 [[사회민주당]]의 아성과도 같은 곳이다. 1946년 이후로 7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회민주당]]은 지역 의회에서 [[기독교민주연합]]에게 여당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2015년 선거에서도 [[사회민주당]]이 [[기독교민주연합]]보다 거의 두 배 가까운 지지율[* [[사회민주당]]이 38%인데 [[기독교민주연합]]은 20%. 다만 의석은 [[사회민주당]]이 30석, [[기독교민주연합]]이 20석을 확보했다.]을 보여주면서 두터운 지지를 재확인했다. [[동맹 90/녹색당|녹색당]]이 가장 먼저 의회에 진출한 곳이다.[* 1979년 결성한 '브레멘 녹색후보자 연합'이 시초이고, 1980년에 '녹색당'으로 이름을 바꾸며 전국정당이 된다.] === 경제 === 전통적으로는 해운업이 발달한 곳이었는데, 20세기 중후반 이후로는 [[에어버스]], [[EADS]]와 같은 항공기 산업이 이 지역을 먹여살리고 있다. 또한 [[벤츠]]를 비롯한 자동차 공장들도 이곳의 경제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각종 주류산업 및 노르트제(Nordsee)[* 해산물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업체이다.]와 같은 외식업체들도 많다. == 여담 == *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이름을 딴 막스 플랑크 해양 미생물학 연구소(Max-Planck-Institut für marine Mikrobiologie)가 이곳에 있다. * 독일 도시들이 다 그렇듯이 구도심에 중세-근대 풍의 예쁜 건물들이 많다. 마르크트플라츠(Marktplatz)의 브레멘 시청은 [[세계문화유산]]. 시청사광장에는 도시를 수호하는 롤란트 기사상이 있다. 그 옆에는 [[그림 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 석상도 있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들은 브레멘에 온 적이 없을 텐데...-- * [[분데스리가]]의 [[SV 베르더 브레멘]]이 자리잡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바이에른 뮌헨]]의 독주를 견제하면서 리그와 [[포칼]] 2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강한 팀이었지만 [[셀링클럽]]의 한계를 못 이기고 2010년대부터는 부진하여 요새는 강등권 벗어나기도 바쁜 수준(...) *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을 제작, 송출하는 [[ARD|공영방송국]]을 두고 있다. 이름은 [[라디오 브레멘]]. [[Das Erste|전국망]] 사용 시간이 1%에 달하는 초소형 방송국이다. * [[ICE 1]]의 76편성에 이 도시의 이름이 붙어 있다. *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처음엔 없었지만, [[흐로닝언|그로닝겐]]과 함께 확장하면서 추가된 도시 중 하나이다. 처음 생길 때는 교역품이 모피, 밀, 맥주, 소금 등이어서 북해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계륵에 가까웠다.[* 가구를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가 있지만 위치가 애매해서......] 패치를 통해 투자시 민들레와 면 원단이 나오면서 중요성은 올라간 편. --그래봤자 함부르크처럼 내성항도 아니고 오슬로처럼 봉제의 성지도 아니고-- * [[비명을 찾아서]]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드레스덴]]과 함께 원폭을 맞았다. [[분류:독일의 행정구역]][[분류:브레멘]][[분류:독일의 도시]]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독일의 주 (원본 보기) 브레멘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