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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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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도시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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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트템베르크-호헨촐레른 |
브레멘 시청의 모습 |
주기(州旗) | 주장(州章) |
브레멘의 위치 | |
국가 | 독일 |
주 | 브레멘 |
시간대 | UTC+1 (서머타임 준수) |
서울까지 | 9시간 25분 8337킬로미터 |
한국과의 시차 | -8시간 |
1 개요
Freie Hansestadt Bremen, 브레멘 자유 한자시
독일 북부의 도시주. 브레멘과 브레멘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브레머하벤(Bremerhaven)을 하위 행정구역으로 두고 있다. 브레머하펜은 브레멘 도시주에 속해 있지만 니더작센 주를 사이에 끼고 있는 월경지이다.
예로부터 한자동맹의 일원으로, 베저 강을 통하여 직물, 커피, 담배를 거래하던 유서깊은 항구도시이며 각종 공업도 발달해서 독일의 10대 도시 중에 하나이며 북부 지역에서는 영원한 라이벌 함부르크 다음 가는 도시이다.
2 역사
브레멘 일대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부터로 추정된다. 빙하기가 한창이던 기원전 12,000년 무렵으로 추정되는 원시인들의 유적지가 발굴되었기 때문. 이후 한 때 아우구스투스가 추진한 게르만족 정복 시도로 브레멘 일대가 로마의 영역에 짧게나마 들어왔던 적[1]이 있지만, 토이토부르크 전투의 참패 이후 로마군이 라인강으로 국경을 물렀기 때문에 로마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편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가 작성한 유럽 지도에서는 지금의 브레멘 위치에 게르만족의 영역지가 표시되어있는데, 이를 근거로 일부에서는 이 때부터 브레멘이 존재해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 대다수 학자들의 반응은 "글쎄..." 정도.
이후 3~4세기 무렵에는 색슨족이 이곳으로 이주해왔으며 중세 이후에는 프랑크 왕국의 영토에 포함되게 된다. 프랑크 왕국이 게르만 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함에 따라 8세기 후반에 최초로 주교가 브레멘에 파견되었으며 10세기 무렵부터는 베저 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노르웨이, 네덜란드, 잉글랜드와 무역을 하면서 부를 쌓기 시작한다. 이러한 부를 바탕으로 주교에게서 화폐주조권을 인정받았으며, 바르바로사(Barbarossa) 프리드리히 1세에게도 제국 자유 도시(Freie und Reichsstädte)로 지정받으면서 여러 특권들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특권에는 브레멘 시내의 재산권을 영주들로부터 보호받는 조건 및 브레멘으로 도망쳐 온 농노들의 신변의 자유를 인정하는 조건 등이 있었는데 중세 독일의 속담 중 하나인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Die Luft der Stadt macht frei)'가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 이후 13세기에 가입한 한자동맹은 브레멘에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막대한 부를 자랑하는 브레멘은 명목상으로는 주교 겸 대공의 지배를 받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치를 누릴 수 있었다.[2]
이렇게 잘 나가던 브레멘의 기세를 꺾어버린 것은 바로 17세기 유럽을 피바다로 몰아넣은 종교개혁. 상인들답게 종교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지 브레멘은 종교개혁과 30년 전쟁 시기 중립을 선포했으며[3] 막대한 부를 이용해 중립을 지키기 위한 용병까지 고용하면서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려고 했지만 베저 강 하구라는 지정학적 요소와 무역으로 쌓아올린 막대한 부는 개신교와 가톨릭 진영 모두에게 매혹적인 요소였고, 덴마크, 프로이센, 스웨덴, 합스부르크 등등 다양한 세력들이 브레멘을 놓고 충돌하게 된다. 특히나 스웨덴과는 공성전까지 벌였으나 브레멘 입장에서는 다행으로 점령만은 피했다. 다만 스웨덴이 포위를 푸는 조건으로 내세운 브레멘을 둘러싸고 있던 각종 요새의 해체와, 라이히스탁으로의 브레멘 대표 파견 금지를 허용하면서 최전성기의 위상을 누리지는 못하게 됐다.
그 후로 무난무난히 지내던 브레멘을 뒤흔든 것은 나폴레옹 전쟁. 1811년 나폴레옹이 브레멘을 점령하면서 프랑스의 속국으로 놓이게 되었으나 나폴레옹의 몰락과 더불어 빈 회의에서 다시금 자유도시로의 권리를 인정받고 독일 연방의 일원이 된다. 1817년 독일 최초의 증기선이 이곳에서 발명되면서 산업혁명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베저 강의 수운을 이용한 운송업이 폭발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하고 1827년에는 해운업을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하노버 왕국으로부터 베저 강에서 북해로 빠지는 항구 일대를 사들인다. 이것이 바로 브레머하벤(Bremerhaven). 그 후 독일 제국 시기 독일이 세계 제2의 경제강국으로 번성하면서 브레멘은 함부르크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번성하는 항구도시 중 하나가 되면서 한자동맹 시기 못지 않은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1차대전과 2차대전의 패전 및 그로 인한 독일 국내의 혼란으로 인해 전성기는 빠르게 사그라든다. 1차대전 때는 패전 직후 극좌세력에 의해 공산주의 정부가 선포되었으나 한 달 만에 자유군단에 의해 전복되었으며, 2차대전 때는 대전기간 내내 연합국의 주요 폭격 대상 중 하나로 지정되어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그래도 아서 해리스에 의해 석기시대로 돌아간 라이벌 함부르크보단 좀 상황이 낫다. 2차대전 직후 영국군의 점령지역으로 들어간 브레멘은 니더작센으로 포함될 위기에 쳐했으나 당시 시장이었던 빌헬름 카이젠이 연합군 측에게 로비까지 해가면서 빌었던 덕에 도시주(Stadtstaat)로 존속할 수 있었고 이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3 사회
3.1 인구
현재의 인구수는 대략 55만명 정도로 포항시보다 약간 많은 수치이며, 절정기였던 1960년대 후반의 60만 명에 비하면 약간 줄어든 수치이다. 또한 55만명의 인구중에서 외국인이 25% 가량의 지분을 차지하는데, 이들 중 다수는 터키인이다. 또한 독일 제국 시기에는 폴란드에서 일자리를 찾아 폴란드인들이 브레멘을 많이 왔었는데[4] 냉전 종결 이후 다시금 폴란드 인들이 브레멘에 정착하고 있다. 덧붙여서 전통적으로 공업과 운수업이 발달한 도시였던만큼, 계층상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3.2 정치
위의 인구 항목에서 설명하였듯이 노동자들이 다수인 도시였던만큼 19세기 후반 이후로 사회민주당의 아성과도 같은 곳이다. 1946년 이후로 7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회민주당은 지역 의회에서 기독교민주연합에게 여당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2015년 선거에서도 사회민주당이 기독교민주연합보다 거의 두 배 가까운 지지율[5]을 보여주면서 두터운 지지를 재확인했다.
3.3 경제
전통적으로는 해운업이 발달한 곳이었는데, 20세기 중후반 이후로는 에어버스, EADS와 같은 항공기 산업이 이 지역을 먹여살리고 있다. 또한 벤츠를 비롯한 자동차 공장들도 이곳의 경제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각종 주류산업 및 노르트제(Nordsee)[7]와 같은 외식업체들도 많다.
4 여담
-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이름을 딴 막스 플랑크 해양 미생물학 연구소(Max-Planck-Institut für marine Mikrobiologie)가 이곳에 있다.
- 독일 도시들이 다 그렇듯이 구도심에 중세-근대 풍의 예쁜 건물들이 많다. 마르크트플라츠(Marktplatz)의 브레멘 시청은 세계문화유산. 시청사광장에는 도시를 수호하는 롤란트 기사상이 있다. 그 옆에는 그림 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 석상도 있다.
그런데 정작 주인공들은 브레멘에 온 적이 없을 텐데...
- 분데스리가의 SV 베르더 브레멘이 자리잡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바이에른 뮌헨의 독주를 견제하면서 리그와 포칼 2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강한 팀이었지만 셀링클럽의 한계를 못 이기고 2010년대부터는 부진하여 요새는 강등권 벗어나기도 바쁜 수준(...)
- ICE 1의 76편성에 이 도시의 이름이 붙어 있다.
-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처음엔 없었지만, 그로닝겐과 함께 확장하면서 추가된 도시 중 하나이다. 처음 생길 때는 교역품이 모피, 밀, 맥주, 소금 등이어서 북해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계륵에 가까웠다.[8] 패치를 통해 투자시 민들레와 면 원단이 나오면서 중요성은 올라간 편.
그래봤자 함부르크처럼 내성항도 아니고 오슬로처럼 봉제의 성지도 아니고
- ↑ 엘베 강까지 약 20년 동안 로마가 지배했던 적이 있다. 물론 완벽한 지배가 아니라 주요 거점과 교통로에만 로마의 힘이 미치는 정도.
- ↑ 오히려 브레멘에게서 막대한 자금을 융자받는 주교들이 브레멘의 눈치를 살피는 경우도 있었다(...)
- ↑ 다만 브레멘 자체에는 종교개혁에 호응해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세력이 다수였다고 한다.
- ↑ 다만 이는 브레멘 뿐만이 아니라 당시 독일 산업지역 일대의 공통적인 특징이었다.
- ↑ 사회민주당이 38%인데 기독교민주연합은 20%. 다만 의석은 사회민주당이 30석, 기독교민주연합이 20석을 확보했다.
- ↑ 1979년 결성한 '브레멘 녹색후보자 연합'이 시초이고, 1980년에 '녹색당'으로 이름을 바꾸며 전국정당이 된다.
- ↑ 해산물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업체이다.
- ↑ 가구를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가 있지만 위치가 애매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