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include(틀:이탈리아의 역사)] ||<:><-2>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3/30/Great_coat_of_arms_of_the_king_of_italy_%281890-1946%29.svg/200px-Great_coat_of_arms_of_the_king_of_italy_%281890-1946%29.svg.png || ||<:><-2>이탈리아 왕국의 대(大)문장[* [[무솔리니]]의 파시즘 집권기에는 왕가 문장에도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f/f4/Greater_coat_of_arms_of_the_Kingdom_of_Italy_%281929-1944%29.svg|파스케스가 덧붙여지는]] 흑역사가 있었다.]|| || 위치 || 사보이 지역 || || 모토 || FERT[* [[라틴어]] 문장의 약자(略字)이긴 한데, 무엇의 약자인지는 [[http://en.wikipedia.org/wiki/FERT|여러 설]]이 있다.] || || 이후 || [[사르데냐 왕국]] || == 개요 == 이름의 유래는 프랑스의 지방 이름 사보이. 현 사보이 지역을 중심으로 하던 사보이 왕조는 11세기인 1032년 사보이 백작으로 서임된 움베르토 1세에 의해 창건되었다. 옆나라 프랑스의 [[카페 왕조]]처럼 혈통이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행운이 있었으며, 그 덕에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왕조가 되었다. 창건 이후 프랑스와 북이탈리아에 걸친 독립 군주국으로 번영했으며, 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스위스의 경계에 위치해 있어 여러 세력들을 중재하며 실리를 추구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체결된 위트레흐트 조약을 통해 [[시칠리아]] 섬을 양도받는다. 그런데 [[신성 로마 제국]] 황제면서 [[사르데냐]]의 왕이었던 [[카를 6세]]가 시칠리아와 사르데냐를 바꾸자고 제안하였고, 그 제안을 받아들여 사르데냐 섬을 얻어 1720년 국호를 [[사르데냐 왕국]](Regno di Sardegna)으로 개칭하였다. 당시 사보이 공국은 신성 로마 제국과 명목상의 부르고뉴 왕국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프로이센]]을 획득해 [[프로이센 왕국]]으로 개칭한 [[브란덴부르크]]와도 비슷하게 사르데냐 왕국을 칭하게 된 것이다. 사르데냐 왕국은 프랑스 제1제정의 나폴레옹에 의해 피에몬테를 잃었으나, [[빈 회의]]에서 프랑스로부터 피에몬테를 되찾아 1814년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Regno di Sardegna-Piemonte)으로 국호를 개칭하였다. 1831년에 사보이 본가의 대가 끊기고, 사보이-카리냐뇨 가문 출신의 [[카를로 알베르토]]가 새 국왕이 되었다. 사보이 왕가는 이후 리소르지멘토의 중심이 되어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의 도움을 받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을 건국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대로 세습한 2의 지역은 프랑스에게 넘겨준다. 사보이 왕조는 4대, 이탈리아를 통일한 지 85년 만인 1946년에 왕제 유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46:54로 패하여 폐위되었다. 아울러 국왕 [[움베르토 2세]]와 그의 남자 직계후손들은 2002년까지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사실 [[높으신 분들]]에게는 아무래도 좋던 이탈리아 통일을 위해 종가인 사보이까지 프랑스에 헌납해가며[* 당장 [[프러시아]]나 [[영국]]만 봐도 종가인 [[호엔촐레른]]과 [[하노버]]를 매우 중시해서 애먹은 경우가 많았다.] 이탈리아를 위해 헌신했지만 [[무솔리니]] 한 번 잘못 찍어서 쫓겨난 비운의 왕가. 공화국 수립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한동안 인식이 좋지 못했다가 최근에 와서야 재평가되는 분위기이다. 1960년대 북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조반니노 구아레스키(1908~1968)의 유명한 연작소설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에도 이러한 세태를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마을에서 엄청난 존경을 받는 할머니 선생님이 돌아가시면서 ~~메가톤 급 떡밥을 투척~~ "왕정 시절 국기를 자기 장례식에 써줄 것"을 자기 제자인 '''공산당 소속 읍장'''에게 당부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루고 있다. == 역대 국왕 및 가문 수장 == (이탈리아 통일 이후)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1861-1878) * 움베르토 1세 (1878-1900)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1900-1946) * 움베르토 2세 (1946) (가문 수장) * 움베르토 2세 (1946-1983)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왕세자 (1983-) 이 사람의 외아들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딸 둘만 두고 있어서, 남계가 절손될 가능성이 높다. 움베르토 1세 이후 계속 외아들로만 대가 이어진지라, 그 이후의 사보이 왕가 당주는 사보이-아오스타 가문에게로 가게 된다. == 분가 == * 사보이-제노바 공작가 - 카를로 알베르토의 차남 페르디난도 왕자를 시조로 하여 5대 165년(1831~1996) 동안 지속됨. * 사보이-아오스타 공작가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차남 아메데오 왕자[* 1870~1873년 사이 잠시 [[스페인]] 국왕 '[[아마데오 1세]]'로 즉위하기도 했다.]를 시조로 하여 1845년 창설. 5대째 지속되고 있다. 분가 사람들은 1946년 이후에도 국외추방을 당하지 않았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사보이,version=38)] [[분류:왕조]][[분류:이탈리아의 역사]]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문서 가져옴 (원본 보기) 틀:이탈리아의 역사 (원본 보기) 사보이 왕조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