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청주 상당산성 淸州 上黨山城 / Sangdang Sanseuong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1626245.jpg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2016012113584005.JPG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search_photo_list.jsp?VdkVgwKey=13%2C02120000%2C33&queryText=&mc=null&VdkVgwKey=13%2C02120000%2C33|산당산성의 사진 더 보기]] == 설명 ==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존 및 복구 상태가 좋은 [[산성]] 중의 하나이다. 소재지는 충청북도 [[청주시]]. 최근에는 청주 상당산성으로 홍보명을 바꾸었다.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듯. --아니면 존재 자체를 모른다-- 대한민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도시의 성곽들은 헐리거나 소실되는 사례가 많았으나, 상당산성은 절묘한 위치선정(?)으로 인하여 조선시대 성곽의 형태 뿐만 아니라 주변 풍경이나 이동로의 구조까지 그나마 잘 보존되어있는 산성이다. 단, 다수의 내부 시설이나 성벽 위의 여장 같은 시설들은 소실되어있다.[* 하지만 난개발식 복구사업의 여지가 적다보니 풍경이 잘 보존되어 있는 점도 있다. 한국의 문화재 복구 사업은 손을 댈수록 창조적인 부실공사--파괴--가 되는 경향이 심하다. (...).] 한반도 [[성]] 건축 형태 뿐만 아니라 풍경까지 잘 남은 성곽으로서 가치가 높다. 조선시대의 지방촌락이 잘 보존된 [[낙안읍성]]과 함께 보존상태로만 본다면 조선시대 [[산성]]의 풍광을 대충이나마 찾아볼 수 있는 유적이다. 대도시권의 성곽에 비하여 많이 갈아엎지 않았으면서 적당한 규모라서 전통적인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다. 본래는 [[백제]]부터 토성이 있었던 곳이며, 조선시대 [[숙종]] 치하에서 석성으로 개수한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다른 산성들처럼 시대를 거치며 돌이 파내어져 초라한 토대가 드러난 부분이 많으나, 그런 곳조차도 평가가 좋은 편이다. [[http://www.cha.go.kr/unisearch/images/history_site/2016012113584105.JPG|돌담을 쌓아올린 방식조차 예쁘게 보존되는 곳이 많다]]. 링크는 미호문. 충청도 외부에서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편인데, 어찌보면 접근성이 애매한 점도 풍경을 보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절묘한 위치선정-- 80년대 대한민국의 난개발 이후로도 그나마 자연풍경까지 잘 어우러진 지형이라는 점도 한몫한다. 물론, 여기도 올라가면 청주 도심이 보이며, 식당이나 관광시설이 들어서있고 산책로도 있다. --이곳도 도심이 더 발달하면 망가질 것이다-- == 관련문서 == * [[성(건축)]] * [[산성]] * [[청주시]] * [[금정산성]] - 상당산성이 백제의 토성을 바탕으로 쌓은 유려함을 지녔다면, 금정산성 쪽은 영남의 화강암 지대에 쌓아올린 석성으로서 정반대적인 야성적인 [[산성]] 이미지이며 한국 최대의 길이를 자랑한다. 다만, 금정산성 쪽은 일제강점기 때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서 성곽훼손이 심해진터라 상당산성처럼 보존이 좋지 못하지만, 둘 다 조선시대 산성의 풍광을 유추할 수 있는 유적이다. * [[남한산성]] - [[홍타이지|청태종]]도 쩔쩔맸던 한국을 대표하는 산성. 성곽의 보존상태도 남한산성이 더 뛰어나다. 하지만 주변 환경에 있어서는 상당산성 쪽이 더 조선시대의 풍광을 유추하기 쉽다. 남한산성은 한옥으로 지어진 [[가톨릭]] 성당까지 있을 정도로 국제화, 관광지화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대도시권의 두 산성보다 개발이 안 된게 장점. 안습.-- [[분류:산성]] 상당산성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