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분류:송나라/황제]] ||||||||||||<:><tablealign=center><#002984> '''[[남송#s-6|{{{#ffffff 남송의 역대 황제}}}]]''' || ||<width=30%> 12대 [[송광종|광종]] 자황제 조돈 || {{{+1 ←}}} ||<width=30%> '''13대 영종 공황제 조확''' || {{{+1 →}}} ||<width=30%> 14대 [[송이종|이종]] 안황제 조윤 || ||||||<tablealign=center>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3/Song_Ningzong.jpg || || '''[[묘호]]''' || '''[[영종]](寧宗)''' || || '''[[시호]]''' || 법천비도순덕무공인문철무성예공효황제[br](法天備道純德茂功仁文哲武聖睿恭孝皇帝) || || '''[[연호]]''' || 경원(慶元, 1195년 ~ 1201년)[br]가태(嘉泰, 1201년 ~ 1205년)[br]개희(開禧, 1205년 ~ 1208년)[br]가정(嘉定, 1208년 ~ 1225년) || || '''[[성]]''' || 조(趙) || || '''[[휘]]''' || 확(擴) || || '''생몰기간''' || 1168년 11월 18일 ~ 1224년 9월 18일 || 宋寧宗 [[송광종]]의 차남으로 자의황후 이씨(이봉랑) 소생이다. 시호는 법천비도순덕무공인문철무성예공효황제(法天備道純德茂功仁文哲武聖睿恭孝皇帝).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으며 [[병풍]]에 '''찬 음식을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고 [[술]]을 많이 마시면 병이 나니 [[적절]]히 하자'''라고 적어 놓고 검소한 생활을 했다. 이 때문에 신하들이 감탄했으나, 사실은 아버지 광종처럼 어리석었다. [[정신병자]]였던 광종이 재상 조여우(趙汝愚)[* 태종의 장남인 한공헌왕 조원좌의 7대손이다], [[한탁주]](韓侂胄)[* 북송의 명신 한기의 증손자이며, 영종의 황후인 공숙황후(恭淑皇后)의 종조부이다] 등에 의해 퇴위당하고 상황이 되자 즉위했다. 한탁주는 이 공적으로 권력의 자리에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라 생각했으나, 한탁주의 인격을 좋아하지 않은 조여우 등은 한탁주을 멀리했다. 이것에 원한을 품은 한탁주는 조여우 등을 몰아내기 위한 운동을 시작해 조여우를 몰아내고 조여우 편에 섰던 [[주희]], 주필대, 유정, 왕란, 팽귀년 등 59명을 [[금고]]형에 처했다. 거기다 [[주자학]]을 거짓 학금이라고 탄압하니 이 사건들을 '경원의 당금'이라고 부른다. 이 무렵 [[칭기즈 칸]]이 [[몽골]]을 통일하고 [[금]]나라를 침공했으며 금나라가 점차 망국의 길로 빠졌다. 재상이 된 한탁주는 금나라가 비실비실하다고 얕보고 무리하게 금나라 북벌을 강행하다 오히려 대패했다. 이에 대노한 금나라 [[장종]]이 한탁주의 머리를 요구하자 [[사미원]](史弥遠)은 이 틈을 타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영종에게 그렇게 할 것을 권했다. 한탁주는 [[참수]]되어 금나라로 보내졌으며 그의 머리는 수도 연경의 깃대에 내걸렸다. 이 때 장종은 종묘에 가서 조상들에게 다시 한 번 송나라에 대한 승리를 고했다. 이 때 사미원은 그 후 26년 동안 재상의 지위를 차지해 실권을 장악했다. 남송의 조정이 이런 [[당파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금나라를 차차 기울고 몽골은 나날이 강성해지고 있었다. 영종은 아들이 9명이나 있었지만 모두 [[요절]]해 버렸다. 더구나 당시에는 할아버지 효종과 아버지 광종의 자손이 자신 외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태조의 아들 조덕소의 10세손 조순(趙詢)[* [[본명]]은 조여원(趙与愿)]을 뽑아 [[양자]]로 삼고 황태자로 삼았으나, 먼저 죽는 바람에[* 시호는 경헌태자] 태조의 아들 조덕방의 9세손 조횡[* 본명은 조귀화(趙貴和)]을 뽑아 새로 양자로 삼았다. 조횡은 원래 광종의 손자 위(魏)왕 조병[* 광종의 차남 조개의 외아들로 후사없이 요절했다.]의 양자였으므로 영종은 [[사촌]]뻘인 조횡을 태자로 삼으려 했으나, 재상 사미원이 조횡과 불화하여 태후와 짜고 태조의 11대손 조여겨를 다시 양자로 뽑아 태자로 삼게 했으며 조횡은 이후 사미원에 의해 자진을 강요당한다. 조여거는 태자가 된 후 이름을 조윤으로 개명했는데 그가 바로 영종의 사후 즉위한 [[이종]]이며, 영종은 1224년 죽은 뒤 영무릉에 안장되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송영종,version=51)]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문서 가져옴 (원본 보기) 송영종(13대)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