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문서 : [[정치인/목록]]. [[변호사/목록]] [include(틀:국내 정치인)] http://rokps.or.kr/images/user/324.jpg?width=150 嚴詳燮 1907년 5월 23일 ~ 1960년 5월 3일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교육자, [[정치인]]이다. 호는 효당(曉堂)이다. 가끔 소설가 [[염상섭]], 아나운서 [[엄성섭]]과 혼동되기도 한다. 1907년 [[전라남도]] [[광양시|광양군]]에서 태어났다. 전남공립사범학교(현 [[광주교육대학교]] 및 [[전남대학교]] [[사범대학]])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여 [[일제강점기]] 말기 [[검사(법조인)|검사]]로 근무하였다. [[8.15 광복]] 후 [[미군정]]기 하에서도 검사로 근무하며 [[대검찰청]] 차장까지 지냈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8년 다른 동료 검사 일부와 일괄 사표를 제출하면서 성명서를 발표해 민족정기 양양을 위해 퇴진한다고 밝혔다. 이후 회고록을 통해 [[독립유공자|애국지사]]들에게 면목이 없다면서 "왜제통치에 협력하였다는 것만은 아무리 사과를 해도 모자랄 것"이라고 말하였다. 한편 대한민국 [[형법]] 초안 작업에 깊은 관여를 하였고 한국 형법학의 기초를 다졌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광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가 다시 탈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정호(1909)|김정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5년 [[민주당(1955년)|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고 인권옹호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구(선거구)|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자유당 [[남송학]]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제4대 국회의원 임기 중이던 1960년 [[의원 내각제|내각 책임제]] 개헌기초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5월 3일 개헌을 위한 토론회 중 졸도하여 별세하였다.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사법 부문에 포함되었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가 대표적인 친일 전력 반성 사례 중 하나로 언급했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전라남도 출신 인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내 정치인 (원본 보기) 엄상섭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