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5><:><#FFD700>[[고려청자|https://67.media.tumblr.com/d0ab98e78c55c6369f20b702ab560e77/tumblr_o9zoipyqmm1sqk8veo5_r2_400.png?width=50]][br] '''{{{+1 [[고려/왕사|{{{#800080 고려의 역대 국왕}}}]]}}}''' || ||<width=30%><:> 24대 [[원종(고려)|원종]] 왕정 ||<:> {{{+1 ←}}} ||<:><width=30%><#FBEC5D> '''{{{#black 임시국왕 영종 왕창(王淐)}}}''' ||<:> {{{+1 →}}} ||<:><width=30%> 24대 [[원종(고려)|원종]] 왕정(복위) || ||<tablealign=center> '''[[묘호]]''' || 없음 || || '''[[시호]]''' || [[영종]](英宗) || || '''[[작위]]''' || 안경공(安慶公) || || '''[[성]]''' || 왕(王) || || '''[[휘]]''' || 창(淐) || || '''배우자''' || ? || || '''아버지''' || [[고종|왕철]](王皞) || || '''어머니''' || 안혜왕후(安惠王后) || || '''생몰기간''' || ? ~ ? || || '''재위기간''' || 1269년 6월 21일 ~ 1269년 11월 || 고려 [[고종(고려)|고종]]의 아들이자 [[원종(고려)|원종]]의 동생. 본명은 왕창(王淐), 작위는 안경공(安慶公). 그 때문에 안경공 창(淐)이라고 자주 불린다. 권신 [[임연]]에 의해 원종이 양위하여 잠시 왕을 했다. 굳이 재위기간을 따지자면 1269년 6월~11월. 1253년, [[몽골#s-1|몽골]]의 인질로 갔던 영녕공 왕준(永寧公 王綧)이 "태자나 안경공이 입조하면 군사를 물린다더라"고 전했다. [[최항]]은 반대했으나 결국 피해가 커지자 그 해 12월 사신으로 보내졌다. 1254년 1월 몽골 장수 아모간(阿母侃)의 군사를 접대하여 군사를 물리게 하고 몽골로 가서 [[몽케]]를 만난 후 8월에 귀국하였다. 이때 오랑캐 풍습이 물들었다면서 굳이 하룻밤을 육지에서 머무르고 입었던 옷을 태운 다음 새 옷으로 갈아입고 [[강화도]]로 들어왔다. 이후 1257년, 1259년, 1265년에도 몽골과 교섭하였다. 권신 [[임연]]이 교정별감 [[김준(고려)|김준]]을 죽이고, 원종마저 노리려고 하자 원종이 급히 양위를 해 왕이 되었다. 원종은 상왕이 되었고, 동시에 임연은 교정별감이 되었다. 그리고는 몽골에는 원종이 위중하여 양위했다고 알렸다. 하지만 당시 세자였던 [[충렬왕]]이 이 사실을 알고 급히 귀국하여 몽골에 알렸고, 임연은 다시 원종을 복위시키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나마도 충렬왕이 몽골군과 함께 귀국하게 되자 겁을 먹은 임연은 병사. 그 직후 아들 [[임유무]]도 환도를 반대하다 처형당하고 귀환하면서 [[무신정권]]은 막을 내리지만, 동시에 고려 왕실이 얼마나 허약했는지를 반증하는 사례이다. 이후 영종은 다시 왕족의 삶을 누리다가 언제 죽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재위가 하도 짧아서 특별한 일은 없지만, 최탄이 몽골에 투항해 서경([[평양]])을 포함한 고려의 60여성을 바치고 동녕부가 설치된 때가 이 때. 이 사람의 후손은 조선의 [[개성 왕씨]] 숙청과정에서도 어찌어찌 살아남아서 안경공파를 이루고 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영종,version=77)] [[분류:고려의 왕]]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문서 가져옴 (원본 보기) 영종(고려)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