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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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역대 국왕
24대 원종 왕정임시국왕 영종 왕창(王淐)24대 원종 왕정(복위)
묘호없음
시호영종(英宗)
작위안경공(安慶公)
왕(王)
창(淐)
배우자?
아버지왕철(王皞)
어머니안혜왕후(安惠王后)
생몰기간? ~ ?
재위기간1269년 6월 21일 ~ 1269년 11월

고려 고종의 아들이자 원종의 동생. 본명은 왕창(王淐), 작위는 안경공(安慶公). 그 때문에 안경공 창(淐)이라고 자주 불린다.

권신 임연에 의해 원종이 양위하여 잠시 왕을 했다. 굳이 재위기간을 따지자면 1269년 6월~11월.

1253년, 몽골의 인질로 갔던 영녕공 왕준(永寧公 王綧)이 "태자나 안경공이 입조하면 군사를 물린다더라"고 전했다. 최항은 반대했으나 결국 피해가 커지자 그 해 12월 사신으로 보내졌다. 1254년 1월 몽골 장수 아모간(阿母侃)의 군사를 접대하여 군사를 물리게 하고 몽골로 가서 몽케를 만난 후 8월에 귀국하였다. 이때 오랑캐 풍습이 물들었다면서 굳이 하룻밤을 육지에서 머무르고 입었던 옷을 태운 다음 새 옷으로 갈아입고 강화도로 들어왔다. 이후 1257년, 1259년, 1265년에도 몽골과 교섭하였다.

권신 임연이 교정별감 김준을 죽이고, 원종마저 노리려고 하자 원종이 급히 양위를 해 왕이 되었다. 원종은 상왕이 되었고, 동시에 임연은 교정별감이 되었다. 그리고는 몽골에는 원종이 위중하여 양위했다고 알렸다. 하지만 당시 세자였던 충렬왕이 이 사실을 알고 급히 귀국하여 몽골에 알렸고, 임연은 다시 원종을 복위시키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나마도 충렬왕이 몽골군과 함께 귀국하게 되자 겁을 먹은 임연은 병사.

그 직후 아들 임유무도 환도를 반대하다 처형당하고 귀환하면서 무신정권은 막을 내리지만, 동시에 고려 왕실이 얼마나 허약했는지를 반증하는 사례이다. 이후 영종은 다시 왕족의 삶을 누리다가 언제 죽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재위가 하도 짧아서 특별한 일은 없지만, 최탄이 몽골에 투항해 서경(평양)을 포함한 고려의 60여성을 바치고 동녕부가 설치된 때가 이 때.

이 사람의 후손은 조선의 개성 왕씨 숙청과정에서도 어찌어찌 살아남아서 안경공파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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