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table bordercolor=#175776><table align=right><#FFFFFF><-2><:> http://www.inews365.com/data/photos/201503/pp_389770_1_1427350530.jpg|| ||<#175776><:> '''{{{#FFFFFF 한자}}}''' ||<#FFFFFF><:> '''吳命恒'''|| ||<#175776><:> '''{{{#FFFFFF 본관}}}''' ||<#FFFFFF><:> '''해주(海州) 오씨'''|| ||<#175776><:> '''{{{#FFFFFF 생몰년도}}}''' ||<#FFFFFF><:> '''1673~1728'''|| ||<#175776><:> '''{{{#FFFFFF 자/호}}}''' ||<#FFFFFF><:> '''사상(士常)/모암(慕菴)'''|| [include(틀:-)] [목차] == 소개 == [[조선]] 후기의 문신. 붕당은 [[소론]]이며,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것으로 유명하다. == 생애 == 1673년(현종 14)에 태어나 1705년(숙종 31)에 과거를 급제하였다.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715년 이조좌랑[* 품계는 낮지만 실질 권력 관직이다.]에 임명된다. 이듬해 경상도, 강원도·평안도 관찰사[* 지금의 도지사]를 역임하다가, 1724년 [[영조]]가 즉위하여 소론이 실각하자 사직서를 낸다. 그러나 1727년 [[정미환국]]이 발생하여 소론이 다시 등용되고, 오명항도 [[이조판서]], [[병조판서]]에 차례로 임명된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영조는 오명항을 4도도순무사를 겸한 판의금부사로 임명하였고 난을 진압하게 한다. 문신이지만 병조판서를 역임했던 것으로 볼 때, 전략·전술에 능했나 보다. 이인좌가 정부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보낸 첩자와 자객을 모두 잡아냈고, 군사를 지휘하여 안성·죽산에서 반군을 격퇴, [[이인좌]]를 생포한다. 한달 여만에 난을 평정한 것이다. 부하 장수들이 잘못을 저질렀을땐, 꾸짖기도 했지만 다시 기회를 주어 충성심을 길러냈다. 군법은 엄격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병자호란]]이 끝난지 100여년이 지나 군기가 느슨해졌으니, 갑자기 엄격한 군율을 들이대면 원망만 늘 것'이라고 답했다. 이 후 난을 진압한 공로를 인정받아 1등 공신에 봉해졌고, 우찬성을 거쳐 [[우의정]]에 임명된다. 그러나 몇 달 뒤 숨을 거두고만다. == 같이 보기 == * [[이인좌의 난]] [[분류:조선/인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 (원본 보기) 오명항 문서로 돌아갑니다.